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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삶

“한국 모시는 최고의 섬유…세계인 입혀야죠”

인도네시아에서 빛난 ‘모시 박사’ 민영경

  • < 전원경 기자 > winnie@donga.com

“한국 모시는 최고의 섬유…세계인 입혀야죠”

“한국 모시는 최고의 섬유…세계인 입혀야죠”
미국 캘리포니아대 경영학과를 막 졸업한 한 교포 2세 여성이 있었다. 보수적인 이민 1세였던 그녀의 부모는 막내딸이 대학을 졸업한 후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가기만 바라고 있었다. 주말마다 ‘제발 만나서 차 한 잔만 마셔봐라’는 부모의 성화에 시달리던 그녀는 여름휴가 삼아 친구들이 많은 인도네시아로 여행을 떠났다. 지난 97년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인도네시아에 가자마자, 아시아 전체가 IMF 경제위기에 휩싸였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화폐가치가 10분의 1로 떨어지고 살인적 물가상승에 폭동이 일어나는 등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갔겠지만, 그녀는 그 상황에서 뜻밖의 기지를 발휘했다.

‘아무리 혼란스럽다고 해도 인도네시아는 천연자원이 많고 싼 노동력도 풍부한 나라야. 절대 이대로 망할 리가 없어.’ 그녀는 자신의 여행경비는 물론, 아버지에게서 빌린 돈까지 다 털어 인도네시아 화폐인 루피아를 사들였다. 그리고 그 돈을 주식에 투자했다. 이 ‘일생일대의 결단’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20대 초반의 처녀는 불과 몇 개월 만에 몇 백만 달러를 손에 쥔 백만장자가 되었다.

디자이너이자 사업가인 민영경씨(31)의 드라마틱한 성공 스토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것만으로도 저는 백만장자로 일생을 편안하게 살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죠. 가난에 시달리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일거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도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갑자기 불어난 자금을 들고 민영경씨는 적당한 사업거리를 찾아 나섰다. “평소에 미래 산업은 첨단 하이테크 산업이거나 자연자원을 그대로 이용한 천연소재 산업이 될 거라고 예측하고 있었어요.” 원래 섬유에 관심이 많았던 민씨는 후자를 사업소재로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가 주목한 섬유는 모시.



“모시는 고대 이집트에서 미라를 감는 천으로 사용되었을 만큼 고급 섬유죠. ‘중국풀(Chinese Grass)’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모시의 종류는 아시아권에만 150가지가 넘어요. 현재 세계시장의 90%는 가격이 싼 중국산 모시가 장악하고 있고, 또 일본 같은 경우는 정부 차원에서 ‘쇼와 빌리지’라는 모시재배촌을 조성해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죠.”

그러나 민씨는 150종류의 모시를 모두 살펴본 후, 가장 우수한 모시는 한국 모시라는 결론을 내렸다.

꿈의 20승 원사 생산 성공… 각국 상류층이 주요 고객

“한국 모시는 최고의 섬유…세계인 입혀야죠”
“모시의 특성은 질기고 가벼우며 우아하다는 점이죠. 한국 모시는 이 같은 특성을 골고루 갖추고 있어요. 손으로 직물을 짜는 데 익숙한 인도네시아인들을 교육시켜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한국 모시를 생산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민씨는 자카르타 인근의 ‘살락’이라는 산 중턱에 60만 평의 땅을 산 후, 100명의 현지인 농부를 고용했다. 이때부터 아무런 소득도 없이 연구와 개발, 교육에 땀과 자금을 쏟아붓는 고단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민씨는 현지인들에게 모시 재배와 직조 과정을 교육시키기 위해 인도네시아어부터 배웠다. 그리고 모시의 본고장인 한산에 가 모시풀 재배법과 껍질을 벗겨 손가락으로 훑고 쪼개어 실을 만드는 모시의 직조 과정을 일일이 전수받았다. 한국에서 모시 뿌리를 가져갈 때는 행여 상할세라 직접 포장해 아기처럼 안고 가기도 했다. 최고급 모시를 생산하기 위한 5년간의 아낌없는 투자가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한산에 계신 모시 전문가들을 인도네시아에 초빙해 교육을 맡겼는데 아무래도 언어 장벽 때문에 잘 안 되더군요. 그래서 인도네시아어를 아는 제가 모든 과정을 다 가르쳐야 했어요. 5년 이상 친구도 없이, 휴일도 없이 오로지 모시 재배와 연구에만 매달렸죠. 매일 산에서만 산다고 해서 ‘오랑우탄’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였어요.”

‘모시 박사’가 된 민씨는 결국 최고로 가늘고 섬세한 20승짜리 모시 원사를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 한국에서는 최고 1미터 높이까지만 자라는 모시풀도 인도네시아 현지 농장에서는 2미터 가까이 키워냈다. 그가 직접 보여준 20승 원사는 한국에서도 생산이 중단돼 오로지 기록에만 남아 있는 전설적인 모시. 말 그대로 ‘머리카락보다 더 가볍고 잠자리 날개 같은’ 꿈의 섬유다. 민씨는 ‘이 실로 옷을 만든다면 아마 박물관 같은 데에 전시될 만큼 기념비적 작품이 될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민씨의 노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모시와 명주를 합성해 잘 구겨지는 모시의 단점을 커버하는 데 성공하고 천연 염색 기법도 직접 개발했다. 고급스러운 느낌을 살리기 위해 고대의 여러 문양을 연구해 천 속에 짜 넣기도 했다.

이 같은 과정을 모두 거쳐 탄생한 민씨의 모시 숄은 시가 150만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는 명품 중의 명품. 천연 염색으로 낸 은은한 색감과 가볍게 흘러내리는 질감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모시(Moshee)’ 브랜드를 단 숄은 지난해 미국 뉴욕의 다카시마 백화점에 입점했고 프랑스 파리 컬렉션에도 선을 보였다. 파리 컬렉션에서는 겐조의 디자이너 등 쟁쟁한 패션 전문가들이 모시의 아름다움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용감했던, 아니 무모했던 민씨의 도전은 이제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난해 ‘모시’ 브랜드의 매출액은 180만 달러. 말레이시아와 브루나이의 왕족, 인도네시아의 메가와티 총리, 각국의 대기업 총수 부인 등이 그녀의 고객이다. 말레이시아 공주는 결혼식에 입기 위해 민씨에게 흰색 모시로 만든 웨딩드레스를 특별 주문하기도 했다. 현재 ‘모시’ 브랜드는 숄, 머플러 등을 주로 생산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드레스 셔츠 등 보다 다양한 품목을 제작할 계획이다.

“인도네시아에 300명의 생산 인력이 있는데, 이 인원을 2, 3년 이내에 2만명까지 늘릴 예정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아무래도 외국인이다 보니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을 느낄 때가 많아요. 장기적으로는 본사를 한국으로 옮길 생각이에요. 한국에서 제가 사업을 소개하면 ‘젊은 여자가 정말 기특하다’고 칭찬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참 뿌듯해요. 제가 한국인인 게 자랑스러울 뿐이죠.”

‘한국 모시의 우수성은 세계 어느 섬유에도 뒤지지 않는다. 우리 조상들은 정말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진 분들이었다’고 모시 자랑이 끊이지 않는 민영경씨. 그저 얌전해 보이는 이 젊은 여자의 어디에 그처럼 엄청난 결단력과 추진력이 숨어 있었을까. ‘꿈을 이루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사업적인 성공은 이제부터’라고 단단한 각오를 내보이는 민씨에게 ‘어떻게 그러한 성공이 가능했나’라는 우문을 던졌다. 그러자 민씨는 ‘이게 내 운명이다. 하지만 두 번 하라면 못할 것 같다’며 살포시 웃었다.



주간동아 2002.09.12 351호 (p58~59)

< 전원경 기자 > winni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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