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8

2002.06.13

어른 뺨치는 ‘유아 명품족’

맞춤 이유식에 옷은 최고급 브랜드… 인형·완구도 1백만원 넘는 수입 제품만

  • < 구미화 기자 > mhkoo@donga.com

    입력2004-10-12 13: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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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 뺨치는 ‘유아 명품족’
    자녀교육 때문에 최근 서울 강남구 개포동으로 이사한 김희정씨(35)는 이웃으로부터 딸의 돌잔치 얘기를 듣고 화들짝 놀랐다. ‘공주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부모는 고급호텔의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렸다는 것. 생일용 ‘구찌’ 정장은 50만원, 사진 촬영용으로 따로 구입한 ‘데이비스찰스’ 드레스는 35만원을 줬다. 신발은 ‘시모네타’에서 18만원을 들여 샀고, 사진과 비디오 촬영은 전문 스튜디오에 200만원을 주고 맡겼다고 했다.



    돌잔치는 고급호텔 레스토랑 통째로 빌려

    일부 고소득층 부부 사이에 불고 있는 명품 육아 바람이 심상찮다. 최근 어린이용 해외 명품에 대한 관심은 해외 여행에서 돌아오며 기념품 명목으로 사들여 오던 수준에서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가며 국내에 없는 브랜드를 구입하는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부모들의 ‘열성’을 반영하듯 인터넷에는 각종 수입 아동복, 이유식 등 육아 관련 사이트가 수백개에 달한다.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대 아동용품을 구입해야만 아이가 특별해지는 것인지는 의문스럽지만, 제 자식을 남다르게 키우고 싶은 부모의 욕심은 상식적인 적정선을 넘어선 듯 보인다.

    아기의 건강 및 성장과 직결되는 이유식은 한동안 월 50만원 가량이 드는 미국산 액상 씨밀락이 유행했으나 최근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배달해 먹는 이유식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 아기21(www.agi21.com), 아기밥(www.agibob.co.kr), 베베쿡(www.bebecook.com) 등에서는 일주일 단위로 신청을 받아 이유식을 매일 배달한다. 일반 이유식 비용은 단계별로 일주일에 1만5000원에서 7만원 정도지만 수십만원대의 맞춤 이유식도 있다.



    압구정동에서 소아과를 운영하는 전문의와 전문 영양사가 식단을 짠다는 ‘아기밥’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는 ‘먹는 것에도 명품이 있음’을 강조한다. 이 사이트의 명품 이유식에 단계별로 붙은 이름도 노블, 엘레강스, 럭셔리 클래스.

    1개월 단위로 제공되는 노블 클래스는 영양 상담을 거쳐 알레르기, 변비, 저신장, 저체중 등 개인의 신체상황을 고려해 식단을 작성한다. 5개월 전후의 아기는 월 34만3000원 정도 들고, 유아식의 경우 80만원이 넘는다. 아토피성 피부질환을 앓는 등 특이체질 아기를 위한 엘레강스 클래스, 럭셔리 클래스는 아로마테라피를 이용한 마사지 등과 병행되는 것으로, 상담 결과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20만원 이상을 예상해야 한다. 이런 고급 맞춤 이유식의 경우 의사가 직접 방문하는 왕진 서비스, 방문 마사지 서비스가 제공된다.

    ‘아기밥’의 장서영 팀장은 “엘레강스 클래스나 럭셔리 클래스는 특이체질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치료 목적이 강하다”고 했다. 그러나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은 만큼 주고객은 강남과 서초, 분당 지역에 몰려 있다고. 장팀장에 따르면 현재 일반 이유식을 이용하는 가구는 900가구 정도, 맞춤 이유식을 이용하는 가구도 30가구나 된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기 때문에 얼마 입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십만원짜리 아동복을 서슴없이 구입하는 젊은 엄마들도 많다. 이들을 겨냥해 지난해부터 서울시내 유명백화점들은 유아 및 아동복 매장을 오일릴리키즈(프랑스), 샤리템플(일본), 휠라키즈(이탈리아), 레고키즈(미국) 등 외국 브랜드로 채우기 시작했다.

    지난 5월20일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에 있는 오일릴리키즈 매장을 찾은 30대 주부 세 명. 빨강, 노랑 등 주로 따뜻한 색 계열의 꽃무늬 위주의 디자인이 특색인 이 매장에서 두 명의 주부가 유아복 하나를 구입하는 데 쓴 금액은 각기 40만원 정도. 이들은 “애를 둘 셋씩 키우는 것도 아니고 딱 하나인데, 예쁘고 좋은 것 입히고 싶은 건 당연한 것 아니에요?”라며 반문한다.

    사정이 이렇자 국내 업체들도 유아를 위한 명품 브랜드를 선보이고 있다. ‘꼬즈꼬즈’라는 아동복을 만들어온 탑스어패럴은 2년 전, 유럽 황실 이미지의 귀족적인 감각을 내세운 고가 브랜드 `모크(MOCH)를 선보였다. 탤런트 황신혜에 이어 최근엔 채시라와 그녀의 딸을 모델로 하는 모크의 30만원대 민소매 원피스는 공단을 소재로 맞춤 제작하는 것으로 제작 기간이 보름 정도 걸린다. 이 밖에도 수입 원단을 소재로 한 35만~50만원 선의 의류상품을 내보이고 있다. 백화점 매장에서 이 회사의 아기 침대 겸용 유모차의 가격은 330만원. 영국의 장인들이 직접 손으로 작업했다는 이 고가 유모차에 쌍둥이 손자를 앉히고 유유히 쇼핑하는 노인도 있다.

    그러나 좀더 특별한 것을 원하는 엄마들은 백화점에 들어온 브랜드로 만족하지 못한다. 아직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해외 명품의 베이비라인을 인터넷으로 찾아내 구입하고 있는 것. 부모들의 이러한 열의를 겨냥해 최근에는 수입 유아복을 판매하는 인터넷 사이트가 부쩍 늘었다.

    어른 뺨치는 ‘유아 명품족’
    버버리, 프라다, 구찌, 아르마니, DKNY 등 해외 고가 브랜드의 유아복을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어린왕자’(www.petitprince. co.kr)를 운영하는 구영란씨는 “해외 명품만 고집하는 사람이 많은 데 반해 아직까지 명품 브랜드의 베이비라인이 들어오지 않은 점에 착안해 인터넷으로 수입 의류를 판매하게 됐다”며 “지난해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 하루가 다르게 수입 유아복 판매 사이트가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번 이용한 고객은 다시 찾는 일이 많고, 고객들 대부분이 이미 브랜드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어 오히려 “유럽에는 이런 게 새로 나왔던데 왜 소개하지 않느냐”며 재촉하는 고객도 있다고 했다.

    이탈리아산 인형 브랜드인 세비&트루디는 강남의 주부들에게는 익히 알려진 것으로 알레르기 방지 처리가 되어 있는 봉제인형의 가격이 보통 20만∼30만원 선. 몸집이 큰 고릴라인형은 150만원이고, 500만원짜리 곰인형도 있다. 세비&트루디 매장을 운영하다 현재는 미국산 원목 완구와 유럽산 봉제인형, 목각인형 등을 판매하고 있는 토이톤(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김정욱 사장은 “외제 승용차를 타고 와 이것저것 알아서 100만원어치를 선물 포장해 달라며 현금으로 계산하고 나간 뒤, 운전기사가 들어와 물건을 가져가는 일도 종종 있다”며 “수입 완구 중에는 폭력성을 배제하고 교육적 효과를 높인 제품이 많지만 지나치게 높은 가격으로 특정 부류만 겨냥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어른 뺨치는 ‘유아 명품족’
    아이들을 위한 놀이용품도 세발자전거 수준이 아니다. 수입 자동차 브랜드 BMW에서 나온 어린이용품도 있다. 아이가 페달을 밟아 운전하는 BMW Z3 페달카는 BMW의 Z3 스포츠카를, 주니어 바이크는 BMW의 R 1100 GS 모터사이클을 축소한 것으로, 어렸을 때부터 고급 승용차에 길들여지고 있는 셈이다. BMW코리아의 권상윤 과장에 따르면 10만원대에서 40만원대의 어린이 자동차는 매월 평균 10~20건 정도 판매되고 있으며 어린이날 즈음해서는 40∼50건 정도가 나갔다고 한다.

    이런 명품 육아 유행에 대해 이화여대부속유치원 이기숙 원장은 “유아기 때 가장 좋은 옷은 마음껏 뛰어놀기에 편한 옷”이라며 “브랜드를 인식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에게 수십만원대 수입 의류를 고집하는 것은 부모들간의 경쟁으로 위화감을 조성할 뿐이다”고 했다. 또 “부모의 지나친 욕심이 아이에게 오히려 스트레스를 줄 수 있으며 이러한 스트레스는 집중력을 떨어뜨려 아이가 자칫 산만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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