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8

2002.06.13

대박 터뜨리고 경영권은 덤?

신세계백화점 정용진 부사장 재테크 구설수 … “사재 출연 결단의 보상으로 봐달라” 주장

  •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입력2004-10-11 15:5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대박 터뜨리고 경영권은 덤?
    ‘꿩먹고 알 먹는다’는 표현이 이처럼 딱 어울리는 경우가 또 있을까. 일반인에게는 탤런트 고현정씨의 남편으로 더 잘 알려진, ㈜신세계백화점 이명희 회장의 아들 정용진 부사장이 올 2월7일 자신이 최대 주주로 있는 광주신세계백화점㈜의 상장을 계기로 수백억원대의 돈방석에 앉게 된 것을 두고 하는 얘기다. 신세계측 설명대로라면 외환위기 직후 정부가 대주주 사재 출연을 권유한 데 따라 정부사장이 광주신세계의 유상증자에 참여했다는데, 이것이 뒤늦게 ‘대박’을 터뜨렸으니 말 그대로 일석이조였던 셈이다.

    그러나 회계 전문가들은 신세계측이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두었다고 분석한다. 정부사장이 정부의 대주주 사재 출연 권유 분위기를 틈타 상속세법과 증여세법의 허점까지 교묘히 이용해 광주신세계 지분을 ‘저가에’ 매입, 상장 이후 엄청난 평가차익을 올림으로써 경영권 승계 기반을 마련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이것이야말로 신세계측의 진짜 노림수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참여연대 조세개혁팀장 윤종훈 회계사는 “일부 기업주들의 경우 신설법인 설립→자녀 명의로 이 회사 주식 헐값 매입→`다른 계열사 지원을 통해 이 회사 기업가치 제고→`증권거래소 상장 후 시세차익 시현→`이를 종잣돈 삼아 주력계열사 지분 매집 등의 방법으로 편법적인 부의 축적과 경영권 승계를 이뤄왔다”고 소개했다. 정부사장의 경우도 이 수법을 원용해 경영권 승계작업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대박 터뜨리고 경영권은 덤?
    정부사장은 3월 말 현재 광주신세계백화점 주식 83만3330주(지분율 52.08%)를 보유하고 있다. 광주신세계의 5월31일 현재 종가는 6만4500원으로, 정부사장의 이날 현재 평가이익은 약 537억원이나 된다. 정부사장이 이 주식을 액면가 5000원에 취득한 점을 감안하면 약 496억원의 평가차익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광주신세계의 주가는 상장 이후 한때 장중 14만7500원(3월20일)까지 상승한 적이 있다. 이를 기준으로 한다면 평가차익은 무려 약 1187억원이나 된다.

    정부사장이 사재 출연 명목으로 광주신세계 유상증자에 참여한 것은 98년 4월23일. 당시 광주신세계는 제삼자 배정 방식으로 25억원의 유상증자를 결의, 정부사장이 유상증자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로써 정부사장은 광주신세계의 지분 83.33%를 보유한 1대 주주로 부상했다. 광주신세계 설립 당시 지분은 ㈜신세계백화점이 100% 보유하고 있었다. 이후 두 차례의 유상증자를 거치면서 정부사장의 지분은 현재의 52.08%로 줄었다.



    신세계측은 이에 대해 “정부사장이 현재 지분을 전혀 처분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엄청난 시세차익을 올렸다고 말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해명한다. 오히려 회사가 퇴출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정부사장이 사재 출연이라는 ‘아름다운 결단’을 내렸는데, 뒤늦게 이에 대해 보상을 받은 차원으로 봐달라고 주문한다. 한 관계자는 “정부사장이 출자금을 다 날릴 수도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사재를 출연한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피상적으로는 신세계측의 이런 설명이 설득력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럴듯한 논리로 과장 포장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선 정부사장이 유상증자에 참여한 98년 4월 무렵 광주신세계가 퇴출위기에 처했는지의 여부다. 회계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광주신세계의 감사보고서를 조금만 훑어봐도 이는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광주신세계의 성장과정은 한마디로 눈이 부실 정도다. 95년 8월 개점 이후 다음해 말까지 누적적자가 56억9000만원에 이르긴 했지만 개점 3년차인 97년부터 흑자로 전환한 데 성공, 98년에는 누적적자를 완전히 해소했다. 99년에는 무차입 경영 원년을 선포했고, 이어 2000년에는 순이익 102억원을 기록해 처음으로 현금 배당 20%를 실시했다. 작년엔 매출액 2874억원, 당기순익 173억원을 기록했다.

    광주신세계가 이처럼 단기간에 경영안정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초기 투자비가 400억원밖에 들지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는 금호건설로부터 임차한 건물에 백화점 매장을 개설함으로써 부지 매입비나 건물 공사비가 전혀 들지 않은 결과였다. 여기에 서울 백화점 업체로서는 처음으로 광주지방에 진출, 탄탄한 조직력과 영업 노하우 등을 강점으로 광주지방에 신유통 문화를 정착시킨 것도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물론 외환위기 직후였던 98년 상황에서는 이런 성공을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재 출연이 불가피했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개 1·4분기가 끝나면 그해 경영실적을 추산할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 이런 점에서 유상증자를 실시했던 98년 4월 말 무렵 ‘광주신세계 퇴출위기’ 운운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말한다.

    신세계측은 또 주거래은행인 광주은행의 증자 권고도 무시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97년 말 현재 누적결손금 23억원으로 자본금 5억원을 전액 까먹고 있는 데다 자본금 5억원의 회사가 2000억원 가까운 매출액을 올리고 있어 증자가 불가피하다는 게 광주은행측의 당시 입장이었다는 것. 기업의 돈줄을 쥐고 있는 주거래은행의 권고였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왜 굳이 정부사장이 증자에 참여했는지에 대한 해명은 되지 못한다. 정부의 사재 출연 권고는 부실경영에 ‘책임 있는’ 대주주를 겨냥한 것이었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말이다. 당시 신세계백화점 이사에 불과했던 그가 어머니 이명희 회장을 제쳐두고 자회사인 광주신세계의 부실경영에 책임을 지고 사재를 출연할 도의적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더 큰 문제는 당시 정부사장의 주식 취득가액인 주당 5000원이 적정하냐는 점. 신세계측은 “당시 모회사인 신세계의 주가가 1만원대여서 정부사장이 광주신세계 주식을 액면가에 취득한 것은 결코 낮은 가격이 아니다”고 설명한다. 또 비상장기업의 주식가치를 평가하는 근거가 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규정을 적용하더라도 정부사장의 취득가액 5000원은 무리가 없다고 말한다.

    당시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과거 3년간의 수익가치와 직전 사업연도의 자산가치를 기준으로 기업가치를 평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98년 4월 당시 광주신세계의 기업가치는 제로(0)나 마찬가지다. 95년 개점 이후 계속된 적자로 97년 말 현재 자본금 5억원을 완전히 잠식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부사장의 주식 취득이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문제가 안 된다고 해도 공정한 거래였는지에 대해서는 고개를 흔든다. 한 회계법인의 중견 공인회계사 S씨는 “상식적으로 당시 신세계가 광주신세계 지분을 정용진 부사장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판다고 했다면 객관적인 제3의 기관에 의뢰해 기업가치를 평가했을 것이고, 그때는 ‘미래의’ 수익가치 등을 감안해 주당 5000원보다 훨씬 비싸게 평가받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정부사장은 과거 ‘실적’을 토대로만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의 허점을 이용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고 비판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광주신세계의 기업가치가 낮은 시점을 택해 헐값으로 이 회사 주식을 대거 취득했고, 이 회사 상장 후 막대한 평가이익을 거둔 것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