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8

2002.06.13

월드컵 열기 누구 편이냐

유권자 반응 냉담 지방선거 ‘최악 투표율’ 기록할 듯… ‘16강 진출이 변수’ 여야 계산 분주

  • < 박주호/ 국민일보 정치부 기자 > jhpark@kmib.co.kr

    입력2004-10-11 15: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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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컵 열기 누구 편이냐
    6·13지방선거가 중반에 접어들었다. 1만명이 넘는 후보들이 표심을 찾아 골목을 누비고 있지만 유권자들은 430g에 불과한 ‘피버노바’(월드컵 공인구)에만 관심을 집중한다. 언론은 ‘한국 16강 진출 유력’ ‘검은 대륙 돌풍’ ‘F조의 서바이벌 게임’ 등등 자극적인 보도로 유권자들을 TV 앞에 묶어둔다.

    ‘3홍 게이트’도 주춤… 野 “불씨 살려라”

    이번 선거는 대선을 불과 6개월 앞두고 치르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대통령 후보를 유세 최전방에 내세워 사실상 대선 전초전이나 다름없다. 여론조사에서만 나타났던 부산·경남에서의 ‘노풍’(盧風)이 표심을 통해 드러나게 될 뿐 아니라 광역의원 비례대표 선출에 처음으로 정당명부제를 실시해 투표를 통해 유권자들의 정당 지지도가 표출된다.

    더구나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선거 초반 ‘깽판’ ‘양아치’ 등 특유의 거친 입담으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공격, 관전자인 유권자 입장에서는 역대 어느 선거보다 볼거리가 많아졌다. 61세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38세의 민주당 김민석 후보가 벌이는 ‘서울 혈투’는 세대간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자민련의 충청권 사수 여부, 민주노동당 해방구가 된 울산 등 유권자의 이목을 끄는 변수도 역대 어느 선거보다 많다.

    그럼에도 표심은 싸늘하다. 유권자들의 정치 불신이 일차적 원인이겠지만 무엇보다도 월드컵 광풍이 선거 열기를 뒤덮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정치권은 월드컵과 지방선거의 함수관계 및 변수로 투표율, 한국의 16강 진출 여부, 대통령 차남 홍업씨 수사 및 여권의 비리의혹 사건 등 세 가지를 꼽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그리고 선관위는 이번 선거의 투표율이 전국 단위 선거로는 사상 처음으로 50%를 밑돌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선관위가 선거에 앞서 실시한 유권자 여론조사에서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응답한 사람은 42.7%에 불과했다. 6월1일 인천 옹진군수 선거 합동연설회에는 청중이 10여명밖에 모이지 않아 후보들이 합의해 연설회를 취소하는 일도 벌어졌다.

    투표율이 낮으면 한나라당이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모든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노후보는 20∼30대, 한나라당 이후보는 50대 이상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이는 서울의 이명박-김민석, 경기의 손학규(한나라당)-진념(민주당) 대결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20∼30대의 투표율 저조는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지난 98년 6·4 지방선거에서 20대와 30대의 투표율은 34.2%와 56.5%로 50대 77.6%, 60대 75.2%에 비해 많게는 두 배 정도 낮았다. 2000년 4·13 총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민주당은 젊은층의 투표율 제고에 비상이 걸렸다. 민주당은 선거 막판 젊은층의 월드컵 열기를 투표 열기로 연결짓기 위한 캠페인에 당력을 집중시킬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인터넷을 통한 젊은이들의 정치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높아 젊은층의 투표율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높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노후보가 연일 거친 말투로 한나라당 이후보를 공격하는 이면에는 젊은층을 투표장에 끌어내기 위한 계산된 전략이 숨어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투표율이 낮으면 유리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분석에 반론을 내놓고 있다. 한 당직자는 “젊은이들이 꼭 민주당만 찍는다는 근거가 무엇이냐. 투표율이 낮으면 오히려 민주당의 조직력과 자금력이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월드컵 열기 누구 편이냐
    한국팀은 6월4일과 10일 각각 폴란드 미국과 예선경기를 치른다. 투표일은 13일이기 때문에 한국의 16강 진출 여부가 어느 정도 가려진 상태에서 선거가 치러진다. 정치권에서는 한국의 16강 진출 가능성이 밝을 경우 젊은이들이 투표장에 대거 몰려가 투표율이 높아지고, 반대의 경우 실망한 젊은이들이 투표를 외면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른바 ‘16강 진출=민주당 유리’라는 등식이다.

    그러나 이 같은 추론은 아직까지 경험적으로 판명되지 않은 단순 추측에 불과해 무리한 억측이라는 반론이 많다. 특히 한나라당은 이 같은 전망에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한 당직자는 16강 진출 전망이 밝으면 민주당이 유리할 것이라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 대해 “그렇다면 우리 당이 한국이 16강 진출을 못하도록 기도라도 해야 한다는 말이냐”며 항의하기도 했다.

    ‘홍업씨 수사‘ 월드컵 열기에 주춤

    김홍업 아태재단 부이사장의 비리의혹 사건이 갖는 폭발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보이지만 일단 월드컵 열기에 수사가 주춤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선거의 최대 이슈를 부정부패로 잡았던 한나라당의 전략에 빨간불이 켜졌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월드컵 개막 직전 ‘정쟁 중단’을 놓고 또 다른 정쟁을 벌인 것도 홍업씨 수사와 관련이 있다.

    민주당은 선거구도를 노-창(노무현-이회창) 대결로 끌고 가기 위해 “한나라당이 부정부패 척결을 말할 자격이 있나”라며 자격론을 들고 나왔다. 노후보는 “이번 선거는 DJ 대 이회창의 대결이 아니라 노무현 대 이회창의 대결”이라며 “검찰 내 친(親) 이회창 세력이 있다”고 검찰을 공격했다. 홍업씨 수사의 선거 쟁점화를 막아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한나라당은 이른바 ‘3홍 게이트’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달 말 검찰이 홍업씨 수사를 월드컵 이후로 연기할 움직임을 보이자 검찰청 항의방문을 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고, 끝내 이명재 검찰총장으로부터 수사를 예정대로 하겠다는 다짐을 받아놓았다. 이후보는 유세에서 “한국 축구를 보면 감독을 잘 뽑아야 한다. 우리는 4년 전 감독을 잘못 뽑아 나라가 엉망이 됐고, 대통령 친인척 측근 아태재단 3형제의 권력비리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해 축구와 부정부패를 연관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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