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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달동네에도 월드컵이 떴다

불행은 강슛으로 날려요!

은평구 ‘소년의집’ 축구선수들 … 어려운 사정에도 매년 서울대회 2~3회 우승

  •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불행은 강슛으로 날려요!

불행은 강슛으로 날려요!
6월2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 삼청각.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로 넓은 잔디마당이 시끌벅적하다. 이곳에 모인 초등학생들은 ‘소년의집’ 축구팀 선수들. 한국축구의 선전을 기원하는 ‘소망등’(所望燈)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한지와 도화지를 가위로 자르고, 자른 종이에 그림을 그려 넣고 응원문구를 적느라 아이들의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영어로 능숙하게 염원이 담긴 문구를 적어 넣는 학생들도 있다.

부모 잃은 ‘천사’들의 보금자리 소년의집(서울 은평구 응암동) 제1건물 현관엔 기도 학습 운동을 의미하는 3개의 상징물이 부착돼 있다. 기도로 정의와 사랑을 가르치고 학습으로 지식과 지혜를 일깨우며, 운동을 통해 건전한 정신과 신체를 갖게 한다는 것. 소년의집 아이들은 이런 세 가지 신조 아래 ‘어머니 수녀’에게서 모성을, 남자 교사에게서 부정을 느끼며 자란다.

소년의집 축구선수들에게 축구는 기도와 학습으로 배운 정의와 사랑, 지식과 지혜를 실천하기 위한 수양의 도구가 되는 셈이다. 원세실리아 수녀는 “비뚤어지기 쉬운 이곳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데 축구교육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축구 덕택인지 소년의집 축구선수들은 고아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밝고 또 맑다. 축구선수들 중엔 말썽꾸러기가 한 명도 없고, 학업성적도 뛰어나 선수 모두가 평균 80점 이상이라고 한다.

소년의집 축구팀은 여자 25명, 남자 25명으로 이뤄졌는데, 축구팀을 위한 별도의 예산이 없어 외부의 지원으로 어렵게 유지해 가고 있다. 일반 초등학교 축구팀과 비교하면 여건이 크게 떨어지는데도 남녀 축구팀 모두 서울지역 대회에서 매년 2~3회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전력을 갖추고 있다.

소년의집에서 축구선수가 되려면 일단 학업성적이 우수해야 하고, ‘엄마 수녀님’에게 ‘모범생’이란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곳에선 운동선수도 공부가 우선이고 운동은 그 다음이다. 6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윤경학 교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주변의 도움 없이 독립해야 할 아이들이니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소년의집 선수들은 부모를 잊고 산다. 부모에 대한 기억조차 없어 “엄마가 보고 싶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본 적이 없어 모르겠다”고 퉁명스레 답한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에게 축구에 관한 질문을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이 밝아진다. 미드필더 정상민군(12)은 “축구선수가 돼 행복하다”고 말한다. 후보선수인 김슬기군(12)은 “일단 주전이 목표고, 앞으로는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며 환하게 웃는다.

여자팀 선수 오은혜 김한얼 장서영양(이상 12세)은 다른 아이들보다 더 한국과 포르투갈의 경기가 기다려진다. 자신들이 직접 꿈에 그리던 월드컵 무대에 서는 날이기 때문이다. 공을 차며 외로움을 달래온 이들은 그라운드에 배치돼 경기운영을 돕는 월드컵 볼스태프(볼보이)로 뽑혔다. 무려 수백대 1의 경쟁을 뚫은 것이다.

유상철 선수를 가장 좋아한다는 은혜는 4월 서울시교육감배대회에서 득점왕에 오른 소년의집 최고의 스트라이커. 장래 희망이 선생님이라는 서영이는 학업성적이 최상위권에 드는 수재로, 한국과 프랑스 평가전에 골스태프로 나가 김병지 오빠를 눈앞에서 본 것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수영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모든 운동에 뛰어난 한얼이는 한국이 16강전에서 이탈리아를 물리치고 8강에 오를 것”이라며 수줍게 웃는다.

소년의집 축구팀 50명은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벌어지는 국가대표팀의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를 단체로 관람할 예정이다. 마음은 벌써부터 인천에 가 있는 소년의집 아이들.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상처 입은 ‘천사’들에게 축구와 월드컵은 희망을 북돋워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주간동아 2002.06.13 338호 (p26~26)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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