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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주일의 관전 포인트①

영원한 앙숙 ‘잉글랜드- 아르헨’ 금요일의 혈투

‘죽음의 조’ 탈출 노린 최고의 황금 매치 … 양국 역사적 원한· 월드컵 악연 맞물려 ‘흥미 곱절’

  • < 장원재/ 축구칼럼니스트 > wjang50594@freechal.com

영원한 앙숙 ‘잉글랜드- 아르헨’ 금요일의 혈투

월드컵 역사를 보면 특정 국가간에 악연이다 싶을 만큼 뒤얽힌 경우가 많다. 대표팀에 대한 기대와 자부심, 축구에 쏟는 시민들의 열정 등에서 최고를 자랑하는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 두 나라 축구팬들은 자국의 대표팀이 세계 최강이라 호언하지만, 솔직히 역대 전적에서 자신들보다 반보 정도 앞선 나라들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예컨대 브라질이나 이탈리아, 독일 같은 경우가 그렇다.

여기서 비롯되는 두 나라의 열등감은 비슷한 입장의 호적수와 만날 때 매우 공격적으로 끓어오른다. 양국의 첫번째 대결은 1962년 칠레 월드컵 조 예선전(잉글랜드가 3대 1로 승리). 두 나라는 이후 세 번 더 겨루는데, 세 경기 모두 엄청난 시비를 낳았다. 늘 세계 최정상으로 가는 길목에서 부딪치곤 하는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 두 나라 사이에는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는가.

2002년 영국 언론의 선전포고

2002년 벽두,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소리 없는 총성이 대서양을 가로질러 불을 뿜었다. 먼저 방아쇠를 당긴 쪽은 영국 언론. 2002년 월드컵 숙명의 재격돌을 앞두고 영국의 일부 신문들이 복수(revenge)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전의를 불태우자, 아르헨티나 언론이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며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영국인들의 초점은 86년 8강전에서의 ‘신의 손’ 사건, 98년 16강전에서 베컴의 퇴장에 뒤이은 승부차기에서의 패배를 인정할 수 없다는 데 모아졌다. 마라도나의 ‘신의 손’은 명백한 핸들링 반칙이며, 베컴이 파울 당하고 엎드린 자세에서 시메오네에게 발길질한 것은 사실이지만, 시메오네가 고통을 호소하며 넘어질 만한 타격은 아니었다는 것이 골자였다.

아르헨티나는 베컴의 경우 발길질의 강도가 문제가 아니라 ‘비신사적 행위’가 문제였던 만큼 시메오네가 과장된 연기를 하지 않았어도 어차피 퇴장감이었다는 논리로 반박했다. 이튿날 그 경기를 보도하면서 영국 신문들이 ‘베컴, 집에 가!’(베컴, 백-홈!)라고 기사제목을 뽑은 것만 보아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느냐는 것.



또 마라도나의 신의 손은 명백한 오심이지만 아르헨티나 언론은 66년 8강전 당시의 이야기를 꺼내며 ‘피장파장’이라고 맞선다.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그 경기의 분수령은 전반 36분 서독인 주심 로돌프 크레이틀레인이 아르헨티나의 주장 라틴에게 꺼내든 레드카드. 심판에게 욕설을 했다는 것이 퇴장을 명령한 이유였는데, 조사 결과 라틴이 했던 말은 욕설이 아니라 “할 말이 있으니 스페인어 통역을 불러달라”는 요청이었다.

아르헨티나 언론은 잉글랜드 감독 램지가 기자회견장에서 발언했던 말도 문제 삼는다. “비교적 부진한 경기를 펼친 원인은 무엇이냐”는 유럽 기자들의 질문에 “우리는 짐승(animal)들과 경기할 때는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답한 것은 아르헨티나 국민 전체에 대한 모독이었다는 주장이다.

램지의 발언에 대한 남미인들의 복수는 4년 뒤 콜롬비아에서 벌어졌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 출전한 잉글랜드팀이 준비캠프를 차린 곳이 콜롬비아였다. 그런데 한 콜롬비아 보석상이 잉글랜드팀 주장 보비 무어를 절도혐의로 고발했다.

결국 보비 무어는 여러 가지 조사를 받고 일주일 후에야 선수단에 재합류할 수 있었다. 당사자도 아닌 콜롬비아가 왜 나서냐고 의아해할 사람도 있겠지만, 남미인들은 램지의 발언을 남미 전체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의 악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두 나라는 축구전쟁이 아닌 실제 전쟁을 벌였다.

1982년 월드컵 개막 전 최대의 화제는 포클랜드 전쟁이었다. 전쟁의 쌍방인 영국(잉글랜드)과 아르헨티나는 모두 본선에 진출했다. 과연 이들이 축구장에서도 맞대결을 펼치게 될 것인가를 놓고 세계 언론이 촉각을 곤두세웠다. 결론부터 말하면 양팀의 맞대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르헨티나가 개막전인 벨기에전에서 0대 1로 패하며 비틀거리더니, 2차 리그에서도 이탈리아와 브라질에 연달아 1대 2, 1대 3으로 패하며 무력하게 물러났다.

그러나 이 패배가 전쟁의 상흔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정부 발표를 굳게 믿고 자신들이 포클랜드 전쟁에서 승리한 줄 알았다. 그런데 각국 기자들이 거듭 “전쟁에 졌지만 축구에서 맞붙으면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묻자 뒤늦게 진실을 알았고, 억장이 무너져 도저히 경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경기 전날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숙소에 틀어박혀 문을 걸어 잠근 채 통곡했다고 한다.

86년 월드컵 - ‘신의 손‘논쟁

당시 마라도나는 측면에서 날아온 공을 손으로 밀어넣지 않았다. 문전 혼전중 수비수의 발에 빗맞은 공이 어설픈 곡선을 그리며 골문 쪽으로 날아갔고, 마라도나는 순간적으로 문전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공을 보고 달려나오는 잉글랜드의 골키퍼 피터 실튼을 마주보며 다소 어색하게 점프를 했다. 사실 마라도나는 공을 끝까지 시야에 넣지 못했다. 골키퍼의 서슬에 밀려 보호막 삼아 엉겁결에 팔을 쳐들었을 뿐이다. 당시의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면, 공중에 떠 있는 마라도나가 눈을 질끈 감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이 그의 팔을 맞고 골문 안으로 엉금엉금 굴러들어간 건 8할이 우연이다.

그러나 상황 직후 마라도나가 정당한 득점인 양 행세하며 골 세레머니를 펼쳐, 튀니지인 주심의 판단을 호도한 것은 두고두고 비난거리가 됐다.

2002년 6월7일. 두 나라는 이번에야 말로 정정당당한 승부를 펼칠 것인가.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전의 뜨거움에 비하면, 과거 지배자와 식민지 국가 간에 벌이는 스페인 대 파라과이전(6월7일 전주)이나, 쿠릴열도 북방의 섬들을 두고 영토분쟁을 계속하고 있는 러시아와 일본(6월9일 요코하마) 간의 한판 승부는 복수심 운운할 것도 없다. 홋카이도의 차가운 바다 속으로 뜨거운 눈물을 흩뿌릴 팀은 잉글랜드인가 아르헨티나인가. 숨을 죽이고 지켜볼 수밖에.





주간동아 2002.06.13 338호 (p10~11)

< 장원재/ 축구칼럼니스트 > wjang50594@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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