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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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극우 태풍’ 갈수록 기승

이탈리아·덴마크 등 이어 ‘불·독’도 우파 득세 전망 … 정당끼리 공동 네트워크도 추진

  • < 최재한/ 베를린 통신원 > redrot@hanmail.net

    입력2004-10-05 1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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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의 ‘정치적 우향우’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 불과 1년 사이에 이탈리아 덴마크 포르투갈 프랑스(대선) 네덜란드의 정권이 우파 정당으로 교체되었다. 앞으로 실시될 프랑스와 독일의 총선에서도 우파가 우세할 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된다.

    이 같은 우파의 득세와 함께 눈에 띄는 중요한 변화가 있다. 바로 극우세력이 정치세력화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9·11 테러 이후 유럽에서 확산된 반(反)외국인 정서와 민족주의 의식을 등에 업고 본격적인 정치세력으로 등장했다. 일각에서는 1930년대의 히틀러나 무솔리니가 부활할 위험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극우 정당인 자유당(FP)의 성공이 그 대표적인 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국민의 59%는 오스트리아로 이주한 외국인들이 범죄 발생률을 높이고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하이더가 이끄는 자유당은 이런 여론을 등에 업고 집권 사민당의 외국인 이민정책을 맹렬히 공격한 결과, 국민당과 함께 우파 연정을 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탈리아에서도 무솔리니 파시스트의 후신인 민족동맹(AN)이 연정에 참여해 극우세력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있다.

    급기야 지난 4월21일 실시된 프랑스 대선에서는 장 마리 르펜이라는 파시스트가 시라크 현 대통령과 함께 결선 투표에 오르는 최대 이변이 연출되었다. 르펜은 1972년 창당한 극우 정당 민족전선(FN)을 이끌고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16.9% 득표로 2위를 차지해 극우세력의 화려한 부활을 예고했다. 베트남과 알제리 전쟁에 참전했던 르펜은 한때 나치의 노래들을 발표하는 사업을 했고 유대인 대량학살을 제2차 세계대전 와중에 일어난 아주 사소한 일로 치부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런 전력을 가진 그가 프랑스 국민에게 호소한 것은 반이민법를 제정하고 법적 질서를 강화하자는 것이었다. 르펜은 또 유럽 통합과 세계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언급하며 유로화 사용을 중단하고 유럽연합에서 탈퇴할 것을 암시했다. 테러의 위험성이 계속 커지는 상황에서 외국인 유입을 억제하고 감옥을 확대하자는 그의 주장은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주민들의 안전의식에 호소하는 전략은 독일 함부르크나 네덜란드 로테르담과 같은 국제적 항구도시의 지방선거에서도 성공을 거두었다. 외국인들의 왕래가 빈번한 이들 도시에서 극우 정당들은 범죄와의 전쟁을 무기 삼아 상당수의 득표를 얻어 현재 시정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로테르담 선거에 처음으로 참가한 극우 정당 리스트당(LPF)은 무려 35%의 득표를 기록했다. 최근 피살된 핌 포르토인이 당수였던 리스트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5월15일 실시된 네덜란드 총선에서 전국적 정당으로 성장했다. 총 150개 의석 중 26석을 얻어 제2당으로 약진한 것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 리스트당은 기민당 주도의 우파 연정에 참여할 것이 확실시된다.

    극단적 동물보호주의자에 의해 살해된 핌 포르토인은 칼럼니스트이자 사회학 교수였다. 동성애자이기도 했던 그는 ‘배가 가득 찼다’는 말로써 외국인 이민을 반대했고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 이슬람은 후진적 문화’라는 논리로 반아랍 정서를 자극했다. 반면 네덜란드의 집권 좌파 연정은 이민과 치안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선거에서 참패했다.

    네덜란드 선거에서는 다른 유럽연합 회원국들과 달리 경제적 변수가 직접적 변수는 아니었다. 네덜란드는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실업률도 문제되지 않는다. 따라서 네덜란드의 선거 결과에 따라 앞으로 실시될 유럽 국가들의 선거전략으로 이민 규제 법안이나 이민자의 사회통합 정책 등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의 9·11 테러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분쟁은 유럽연합 내 극우 정당들의 약진을 가능케 한 또 하나의 요인이다. 테러의 위험이 더욱 커지고 반유대, 반아랍 민족주의 정서가 팽배한 상황에서, 극우 정당들은 이 같은 의식을 고취해 국민적 지지를 확보해 나가고 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외국인이 높은 실업률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논리가 먹혀드는 실정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극우 정당들이 주장하는 반이민정책들은 어떠한 사회정책보다도 힘을 얻고 있다. 사실 극우 정당들이 새로운 정책이나 경제 프로그램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오히려 기존의 사회민주주의 정부들이 제공한 정치적 자유 속에서 자신들의 발언권을 강화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극우 정당들이 한두 국가의 수준을 벗어나 유럽 전역에 공동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려 한다는 데 있다. 벨기에 플라망블록(VB)에서 오스트리아의 자유당에 이르는 극우 대중주의의 인터내셔널은 공개적으로 더욱 강력하게 결집하고 있다. 이들은 차기 유럽의회 선거에 공동 후보를 내세울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유럽 내 사회민주주의의 보루인 독일과 영국의 총리 슈뢰더와 블레어는 유럽연합 내 극우 정당들의 움직임에 공동으로 대응하기로 합의했다. 유럽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공간에서 이민과 범죄는 경제 활성화와 함께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의제로 부상했다. 슈뢰더의 표현대로 “미움과 증오의 세력이 (건전한) 정치적 환경을 독살하고 있다.” 과연 유럽에서 극우 파시스트 정당들이 대중주의에 편승해 유럽 정치판을 좌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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