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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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때 7·4 계승 문구 DJ가 거부”

박근혜 대표 김정일 만남 뒷얘기 … 서울 답방 “적절한 시기에 가겠다”

  • <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입력2004-10-05 15: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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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회담 때 7·4 계승 문구 DJ가 거부”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당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7·4 남북 공동성명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문구를 ‘6·15 남북 공동선언문’에 포함시키자고 제안했으나 김대중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5월15일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 방문 결과를 공개한 바 있는 박근혜 한국미래연합 대표는 ‘주간동아’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기자회견장에서 못다 풀어놓은 김정일 위원장과의 대화 내용을 밝혔다.

    박근혜 대표에 따르면 김위원장은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자신의 부친인 김일성 전 주석과 박정희 전 대통령 통치기간 중에 체결된) 7·4 남북 공동성명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문구를 남북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에 꼭 넣고 싶었다. 남측에 이 문제를 먼저 제의했는데, 남측과 합의가 안 되어 넣지 못했다”고 말했다는 것.

    이것으로 볼 때 김위원장은 남북 정상회담이 부친의 유업을 발전시킨 성과물이라는 점을 부각하려 한 듯하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측은 ‘남북관계의 역사적 전기가 되는 새로운 출발점을 만들겠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남북 정상회담의 성격이 과거 정권의 유산을 계승하는 방식으로 규정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또한 한국의 개성공단 참여에 관심을 나타냈다고 한다. 김위원장은 “(개성공단에 참여)하겠다고 하더니 남쪽에서 아직 소식이 없더라”고 말하면서 개성공단 개발의 진척이 더딘 것을 아쉬워했다는 것. 그는 또한 한국의 인터넷 문화, TV 드라마에 대해 많은 관심을 나타냈는데 최근 즐겨 본 드라마는 ‘허준’이었다고 한다.



    김위원장이 한국 대선주자들의 지지율에 관심이 많다는 점은 박대표가 기자회견을 통해 이미 공개한 대목. 이와 관련해 박대표는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김위원장은 한국의 차기 정권이 6·15 남북 정상회담의 정신을 계승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김위원장의 답방과 관련해 박대표는 “김대중 대통령이 먼저 방북을 했고, 6·15선언문에 답방 약속도 있으니 이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면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식으로 질문을 던지자, 김위원장이 “적절한 시기에 가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박대표는 “김위원장 답변에서 약속을 지키겠다는 뉘앙스를 느꼈다”고 말했다.

    박대표는 자신의 방북 경위와 관련해 “북한은 수년 전부터 북한을 방문한 여성계 지도자 등 남측 인사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방북 요청을 해왔다. 이번에 내가 방북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전하자 북한측은 처음엔 잘 믿으려 하지 않았다. ‘북한에 온다’는 확인서를 보내달라고 요청해 보내주었다”고 설명했다.

    박대표는 김정일 위원장과 상시적 대화창구를 갖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박대표는 “중국 베이징의 ‘조선경제인트레이닝센터’(박대표가 이사로 재직중인 ‘유럽코리아재단’이 북한 지원을 위해 UN개발기구와 협력해 설립 예정인 기구)와 북한의 ‘범태평양조선경제추진위원회’ 사이에 연락망이 개설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박대표가 향후에도 남북관계의 ‘메신저’ 역할을 하게 될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김위원장은 “부모님과 사별한 후 고통을 많이 겪은 것으로 안다”면서 박대표를 위로했다고 한다. 또한 박대표를 수행한 북측 인사는 박대표에게 “‘겉은 어머니, 속은 아버지를 닮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는 것. 박대표는 “그 말은 한국의 한 신문 기사에 들어 있는 문장과 똑같은 표현이어서, 북한측이 나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일성의 아들과 박정희의 딸의 첫 만남은 북한의 극진한 환대 속에 마무리됐다. 박대표는 “남북 양측 정치인 사이의 신뢰 구축은 남북관계 발전에서 중요한 일”이라면서 이번 방북 결과에 만족해했다. 그러나 자신의 방북에 대한 한국 내 반응에 대해선 아쉬움을 나타냈다. 박대표는 “김위원장이 나를 통해 우리측에 전달한 내용 중엔 금강산댐 공동조사, 이산가족 상설 면회소 설치 등 국민들이 원하는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한국 정부는 이런 기회를 적극 이용해야 하는데 아직은 ‘조치할 게 없다’는 등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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