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1

..

‘축구 사랑’ 금메달감 … 효창운동장 단골들

10여명 매주 출근하다시피 … 대학팀 감독도 자문하는 ‘진정한 축구 마니아’

  • < 황일도 기자 > shamora@donga.com

    입력2004-11-01 15:5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축구 사랑’ 금메달감 … 효창운동장 단골들
    볕은 따뜻하지만 마음껏 축구를 즐기기에는 아직 바람이 차갑다. 2002 한국 춘계실업축구연맹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효창운동장. 경기가 한창이지만 관객은 50명이 채 안 된다.

    관람석보다 더욱 썰렁해 보이는 경기장 가운데서 25번 공격수가 골을 향해 슛을 날린다. 골키퍼의 손을 비껴 그물에 꽂히는 공.

    “진작 좀 저렇게 하지. 25번이 기량은 되는데 공을 너무 오래 갖고 있어. 공간 만들 생각을 못해. 차두리가 배재고 다닐 때 꼭 저랬거든. 경신하고 준결승할 때던가, 패스 안 한다고 감독한테 혼나던 게? 하긴 히딩크도 그건 못 고치는 모양이던데.”

    본부석 맞은편에 모여 앉은 열 명 남짓한 중년 남자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온갖 옛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효창운동장과 인연 맺은 지 40년이 넘었다는 황규성씨(65). 1960년 효창운동장 개장 기념으로 열렸던 유고슬라비아 대표팀 초청 경기의 기억이 그에게는 아직 생생하다.

    “4대 1로 졌지만 잘했다고들 했어. 개장 때만 해도 효창운동장이 대단했어요. 국내 최초의 천연잔디 축구전용구장이었으니까. 주변이 온통 허허벌판이었지만 축구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는 성지였거든.”



    요즘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경기장을 찾는다는 황씨는 한국전쟁 전까지 중학교에서 선수생활도 했다. 스카우트 하겠다고 나선 고등학교도 있었지만 생계를 염려한 부모의 반대로 꿈을 접었다. ‘효창운동장 동지’들과 함께 꼬박꼬박 경기장을 찾는 것은 그런 아쉬움 때문이다.

    “프로경기는 잘 안 봐. 돈만 생각하고 몸을 사려. 어떻게 하면 눈에 띌까 싶어 죽기 살기로 덤비는 고교축구, 실업축구가 진짜 재미지.”

    ‘축구 사랑’ 금메달감 … 효창운동장 단골들
    한창때는 30명 가까이 모이곤 했던 마니아들은 ‘효창축구사랑회’라는 모임도 만들어 형편이 어려운 선수들에게 장학금을 주기도 했다. 이제는 10여명으로 줄었지만 경기가 끝난 후 운동장 옆 해장국집에서 나누는 소주 한잔의 재미는 여전하다.

    “지금 잘 나가는 선수들, 다 고등학교 때 우리가 찍었던 친구들이야. 열심히 뛰지만 선배들한테는 거칠었던 이천수, 매너가 영 꽝이었던 고종수, 승부욕이 강했던 최용수, 다 여기서 처음 빛났다니까.” 스카우트 철이 되면 ‘묻힌 진주’를 찾는 대학팀 감독들이 자신들을 찾아 의견을 묻곤 했다는 황씨의 회고담에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효창운동장과의 인연이 깊기로는 곽덕문씨(71)도 빠질 수 없다. ‘삼락이, 회택이가 모두 내 후배’라는 곽씨는 요즘도 6시에 일어나 손기정 공원으로 조기축구를 하러 나간다. “목욕탕에 가보면 내 허벅지 굵기가 다른 친구들 두 배는 되지.” 고희를 넘긴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젊어 보인다는 말에 유쾌해진 곽씨가 슬슬 얘기를 풀어낸다.

    “박종환이가 서울시청 감독할 때니까 대충 20년 전이지. 그때만 해도 한 경기에 2000~3000명씩은 들었어. 지금은 선수 가족 빼면 20~30장이나 팔리나.”

    그렇지 않아도 줄어들던 ‘효창 식구들’이 급격히 준 것은 IMF사태 때. 살기 팍팍해진 시절 축구장을 떠난 옛 동지들은, 경제가 나아졌다고 매스컴에서 떠들어대도 돌아오지 않았다.

    곽씨는 아들을 통해 축구의 꿈을 이루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대학 때까지 선수생활을 했던 아들은 결국 상무팀에 들어가지 못해 축구를 접었다. 아들과 함께 뛰던 서정원 김도훈 이민성 같은 선수들의 활약을 지켜보며 마음이 아렸던 것도 이곳이었다. “부모들만 등골 빠지지. 돈 밝히는 코치들 만나면 더 힘들고….”

    이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옆에 있던 곽씨의 초등학교 동창 이완주씨(71)가 “뭐 그런 소릴 하느냐”며 버럭 역정낸다. 외부인에게 축구계의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자신들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은 없어도 축구계에 대한 사랑은 여전하다.

    이씨가 가장 서운한 것은 5000원이나 되는 입장료. “자주 오는 사람은 좀 깎아주면 안 되나. 어차피 시에서 운영하는 건데 무료면 또 어떻고. 그래서 사람들 더 오면 그게 축구 발전 아니냐고.” 운동장을 세 번 뜯어고치면서 인조잔디도 새것으로 바꾸었고 우레탄 트랙도 뜯어냈지만 예전이 더 좋았다는 게 이씨의 말이다.

    나이 든 팬들만 효창운동장을 찾는 것은 아니다. 서울 영등포 전자상가에서 자영업을 하는 박성기씨(38)와 신득원씨(38)는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여의도에서 함께 공을 찬다. 계속된 황사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닷새째 경기장을 찾았다.

    ‘축구 사랑’ 금메달감 … 효창운동장 단골들
    “다들 16강을 떠들어댑니다. 궁금한 건 그 사람들 가운데 효창에 와서 실업축구 경기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거죠.” 박씨가 서운함을 털어놓자 신씨가 말을 잇는다. “월드컵 기간에는 다들 몰려갈 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그런 건 잘하잖아요. 그러다 끝나면 또 깨끗이 잊어버릴걸요.” 월드컵 붐 조성이 더디다고 걱정할 게 아니라, 당장 ‘주말에 효창운동장 가기 운동’이라도 벌이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축구협회에 보내는 신씨의 충고다.

    70년대 박스컵이 열리던 때만 해도 효창운동장은 여성 관중에게는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가뜩이나 적은 관중 가운데 젊은 여성을 찾기란 더욱 어려운 일. 그래서 “짬이 날 때면 늘 56번 버스를 타고 운동장을 찾는다”는 두 사람의 젊은 ‘여성 효창 마니아’ 임화순씨(19·고려대)와 홍진희씨(19·적십자간호대)는 더욱 반갑다.

    “야구보다는 축구가 한결 낫죠. 축구는 경기가 중단되는 일이 없잖아요. 눈을 뗄 수 없어 더 박진감이 넘쳐요.”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이나 실업경기가 있는 날이면 효창운동장을 찾곤 했다는 두 사람은 수다 떨며 우정을 다지는 데는 축구 관람만한 이벤트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내리쬐는 햇볕이 미리 바른 선크림을 뚫고 살갗을 ‘익게’ 만들지만, 탁 트인 운동장을 바라보며 스트레스를 푸는 재미는 어두컴컴한 극장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

    “축구 시즌이 됐으니 더 자주 올 거예요. 시설이 낡긴 했지만 그래서 더 정겹거든요.” 장마철에 우산 쓰고 축구 보는 재미는 또 얼마나 좋은지 아느냐고 물으며 웃는 두 사람. 그들은 다시 반세기의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효창운동장을 찾을 미래의 ‘효창 지킴이’였다. “주말에 가족이랑 김밥 싸들고 소풍 삼아 와보세요. 봄이잖아요.”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