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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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캠프 돌격대장 ‘특보’가 떴다

후보 흠집내기 등 탁월한 입심 여론 주도… ‘무차별 폭로전’ 비판 목소리도

  •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4-11-01 14: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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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 캠프 돌격대장 ‘특보’가 떴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이인제 후보의 ‘노무현 죽이기’ 작전에 ‘실탄’을 제공해 준 사람은 김윤수 언론특보였다. 노무현 후보 본인보다 더 흥분하면서 반격에 나선 사람은 노후보 캠프의 유종필 특보였다. 민주당 경선은 노무현-이인제 후보의 양자대결이면서 한편으로는 유종필 대 김윤수라는 ‘특보 대리전’으로 전개되고 있다.

    최근의 언론 노출 빈도는 후보와 특보가 거의 반반이다. 비록 본선이 아닌 예선전이라고 할지라도 대통령선거와 관련해 특보들의 종횡무진 활약상이 매스컴에 연일 생중계되어 이처럼 여론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적은 없었다. ‘참모는 그늘에서 조용히 일한다’는 정치권의 전통적 관념을 깬 이들 특보에게 시선이 모아지는 것은 당연지사.

    김윤수 vs 유종필 장외 대결 치열

    대선 캠프 돌격대장 ‘특보’가 떴다
    이인제 후보는 4월12일 한 갈비집에서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은 르윈스키와의 열 차례 성관계 중 아홉 차례는 증거를 남기지 않았지만 단 한 번, 옷에 흔적을 남겼다”면서 추가폭로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후보의 발언을 들은 이상 이후보 캠프의 의원이나 참모진을 상대로 ‘흔적의 구체적 내용’을 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른다”는 답변만 돌아오던 찰나, 단서를 제공해 준 해결사는 김윤수 특보였다. 그는 “우리는 노무현 후보의 사생활, 친인척 관련 자료들을 갖고 있다”고 처음으로 밝혔다. “예를 들어 노무현 후보의 형이 국세청에서 퇴임할 때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명쾌하게 증명할 수 있는 문서를 확보해 두고 있다”면서 구체적 사례까지 들었다.

    이인제 후보의 ‘노무현 때리기 일지’를 보면 김특보의 눈부신 활약상이 쉽게 드러난다. △‘노후보는 DJ의 꼭두각시’ 주장의 근거가 된 연청 관계자 자필 진술서 △노후보의 언론 국유화 발언 논란 관련 일부 기자들의 증언 △노후보 장인이 한국전쟁 때 북한에 협력해 양민학살 현장에 있었다는 수사 기록 △‘악법은 안 지켜도 된다’는 울산 파업 현장 발언록 △‘재벌해체’를 주장한 국회 속기록 △주한미군 철수 서명 문서 등. 이 모두가 민주당 경선을 뜨겁게 달군 재료들이었다. 이들 자료의 수집과 배포를 주도한 사람이 바로 김윤수 특보. 이후보 캠프의 한 관계자는 “김특보가 언론 국유화 발언을 폭로하면서 노후보측을 향해 ‘나를 고발하라’고 외쳤을 때는 숙연한 느낌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김특보가 터뜨린 폭로 발언은 이 밖에도 전방위에 걸쳐 있었다. △요트 취미를 갖고 있다 △이인제 후보의 에쿠스 승용차보다 더 비싼 체어맨을 타고 다닌다 △자녀들의 이름을 마음대로 바꾸었다 △자주 이사를 다녔다 △4억원대 빌라에 산다 △노후보 부인의 학력이 위조됐다 등등 거의 하루 한 건꼴로 새로운 폭로가 김특보 입을 통해 나왔다.

    예를 들어 노후보 부인 문제의 경우 ‘부인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노후보의 인터뷰 기사를 본 뒤 사실 확인 작업에 들어가 ‘고교 중퇴’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김특보를 중심으로 노후보 관련 신문 기사 문구 하나까지 모두 검토하는 방대한 ‘저인망식 훑기 작업’이 수행되었다는 증거다. 이에 대해 김특보는 “노무현 후보가 뜰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노후보의 나이조차 몰랐다. 폭로는 타이밍이 중요한데 ‘노풍’이 분 이후 우리가 얼마나 밤잠 안 자고 노력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후보 캠프 관계자들에 따르면 경선 초기 김특보가 두각을 보이자 노무현 후보 관련 정보가 김특보에게 몰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김특보의 폭로 중 상당수는 김특보 본인이 발로 뛰어 얻은 것이라고 한다. 물론 ‘물량공세’로 나가다 보니 폭로 중엔 불발탄도 있고, 사실관계가 미처 확인되지 않은 것도 있다. 자연 비판도 많았다. 이에 대해 김특보는 “어차피 유권자들에게 검증받아야 할 대선후보 주변 문제를 조금 앞서 제기한 것이니 큰 차원에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그는 한 달 만에 유력한 ‘뉴스메이커’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요즘 기자들의 전화만 하루에 200통을 받는다고 한다. 건강을 염려해 휴대전화에 ‘전파 차단기’까지 설치했다. 노후보는 TV토론회에서 이례적으로 두 번에 걸쳐 김윤수 특보를 자신의 ‘저격수’로 지목했다. 김특보는 “난 노무현 지지자들의 공적이 됐다. 내 험담으로 인터넷이 도배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특보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내겐 노무현씨 파일을 담은 가방이 하나 더 있다. 하루에 한 건씩만 터뜨려도 아직 20일분이나 남아 있다.”

    유종필 언론특보는 노무현 후보 캠프의 ‘스토퍼’다. 그는 정면 대응하는 스타일이다. “노후보 부인의 학력은 고교 중퇴가 맞다. 인터뷰 답변 써줄 때 우리 캠프에서 착각한 것이다. 그래서 어떻다는 것이냐”라는 식이다.

    참모진이 탄탄한 이인제 후보와 비교했을 때 노후보측은 유특보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경선 국면에 새로운 돌발 이슈가 자꾸 터지니 일일이 노후보의 의사를 물어본 뒤 언론에 입장을 발표할 겨를조차 없었던 것도 한 원인이다. 유특보가 전한 노후보의 입장 중 일부는 유특보 본인이 판단해 말한 셈이다. 유특보도 이 점을 인정하는 듯 “노심(盧心)이 유심(柳心)”이라고 말했다.

    ‘말을 자주 바꾼다’는 의혹에서 노후보를 구출하기 위한 전략도 유특보의 위상을 높였다. 민감한 사안에 대해선 유특보가 먼저 대응한 뒤 그것이 먹히면 노후보도 같은 보조를 취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부에 비친 유특보는 2인자에 가깝다. 노무현 후보는 유특보와 관련해 “우린 죽이 잘 맞는다”고 평가한다. 최근 실시된 중앙일보의 대선주자 개혁-진보 노선 2차 조사에 노후보측은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것도 사실 유특보를 중심으로 한 참모진이 단독으로 결정한 일이었다.

    유특보는 여러 면에서 김특보와 비교된다. 김특보는 경기도-조선일보 출신인데 유특보는 전남-한겨레신문 출신이다. 김특보가 부산 리베라백화점 대표이사를 역임하는 등 비교적 중후한 포용 이미지를 갖고 있다면, 유특보는 노후보처럼 직설적이고 솔직한 이미지를 보인다.

    “노무현 후보 형의 국세청 퇴임 문제가 향후 대선정국에서 거론될 듯하니 설명해 달라”고 유특보에게 요구하자, 그는 “우리도 잘 모른다. 후보에게 대놓고 묻기도 어려운 사안 아니냐. 그러나 직계도 아닌 방계 가족의 일이 거론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잘랐다.

    유특보는 요즘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편한 분을 모시고 큰일을 성공적으로 하고 있으니 매우 행복하다. 지금은 월급 한 푼 안 받고 자원봉사로 일하지만 솔직히 나중에 ‘스톡옵션’을 기대한다. 안 줘도 할 수 없지만….” 그다운 솔직한 말이었다.

    대선 캠프 돌격대장 ‘특보’가 떴다
    한나라당에서도 이회창 후보의 이병석 대변인, 최병렬 후보의 최구식 언론특보, 이부영 후보의 안영근 대변인 등은 새롭게 주목받는 참모진이다. 한나라당 한 의원은 특보라는 자리에 대해 “언제든 ‘팽’당할 수 있는 운명”이라고 했다. “대선주자와 너무 가까우면 내부 견제를 받아 밀려나고, 너무 멀면 수많은 참모진 중 한 명으로 이름뿐인 특보로 남게 된다. 양자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것이 특보다.”

    그러나 이런 진단은 예전의 정치 스타일에서 나온 관점으로 보인다. 최근 이인제 후보측은 정책대결과 폭로노선 지속 여부를 놓고 내부 혼선을 빚었다. 이때 김윤수 특보는 “난 폭로정치 그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민주당 경선에서 폭로전이 사라졌다. “대선주자는 가만히 앉아서 유능한 특보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레이건처럼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먹혀드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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