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9

2002.04.11

昌, YS에게 정말 백기 들었나

‘盧風’에 놀라 PK 지분 인정 분위기… 대선국면 지지율 올리기 묘책에 고심

  •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4-10-27 13:5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昌, YS에게 정말 백기 들었나
    昌의 ‘주가’(株價)는 바닥을 쳤다.” 한나라당 ‘당 화합과 발전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3월30일 집단지도체제 도입을 확정하자 이회창 총재 측근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당내 비주류와 소장파의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당내 갈등을 봉합한 것은 이총재의 수확이다.

    예정대로라면 한나라당은 5월9일 대통령 후보를 선출한다. 이어 ‘당권’을 대표하는 최고 위원들이 선출되어 ‘당권-대권 분리’ 형태가 완결된다. 이총재의 지지율 하락이 주로‘한나라당 내분’에서 비롯된 만큼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는 전망이다. 이총재 측근 인사들은 “민주당보다 더 민주적인 한나라당을 만들었으니 ‘제왕’ 꼬리표를 떼는 부수 효과도 올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3월의 악몽’이 4, 5월에도 계속 이어질 가능성은 여전하다. 한나라당 대선 가도에서 중요한 향후 한 달여 동안 이총재의 ‘기상도’를 가늠할 주변 정황을 추적했다.

    YS 부활하다?

    昌, YS에게 정말 백기 들었나
    한나라당 경남도지사 후보 공천을 신청한 권영상 변호사는 이회창 총재와의 독대 내용을 기자에게 공개했다.

    3월28일 한나라당 총재실에서 1시간여 동안 이어진 자리에서 이총재는 권변호사에게 “김혁규 지사를 합의추대 형식으로 재공천해 주어야 하니 공천 신청을 포기해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 권변호사에 따르면 이총재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요청해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총재의 단도직입적 요구여서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 김혁규 진영’으로부터 “YS에게 잘 보이려고 민주 절차(경선)까지 포기한다”는 비판이 나옴직하다.



    이런 기류 속에서 민주계였던 김무성 한나라당 총재 비서실장은 상도동을 방문했다가 YS로부터 “배신자”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 YS 측근이 이 사실을 언론에 흘려 공개 망신까지 주었다는 점은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이 사건 직전에도 이총재는 YS를 붙잡기 위해 경남 창원까지 달려갔지만 YS는 “배신자” 운운했다. 그럼에도 이총재의 ‘대(對) YS 창구’인 서청원 의원은 상도동을 방문해 다시 한번 화해를 요청했다. 한나라당 부산시장 후보들은 YS의 환심을 얻기 위해 우르르 달려가는 모습을 보였다.

    “민주화 세력이 연합해야 한다”(박종웅 의원) “DJ와 YS는 화해해야 한다”(김혁규 지사)등 YS 측근 인사들은 부산·경남(PK)의 노무현 열기에 기름을 붓고 한나라당 민주계의 이탈을 부추기는 듯한 말을 흘리고 있다. PK 지역의 노무현 돌풍에 힘입어 YS는 고자세가 됐다. 반면 이총재는 YS에게 정치적 실익(경남지사 자리)을 내주면서도 대접은 못 받는 상황이다.

    그러나 ‘대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총재의 정체성 문제다. 이총재의 일관된 정치개혁 캠페인은 ‘3김 청산’이었다. 사정이 급박해졌다고 당 지도부가 청산 대상 중 한 명에게 일방적으로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자 ‘자기모순’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 경남의 A의원은 “YS가 정치적 실익만 얻은 뒤 노무현 쪽으로 돌아서면 그때는 속수무책이다. 지금도 이총재에게 공공연히 적대감을 드러내는 YS를 어떻게 믿느냐”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총재가 전혀 다른 ‘대 YS 전략’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지금까지 YS에게 보여온 저자세는 ‘예우할 만큼 해줬다’는 명분 축적용 아니냐는 의미다. 김혁규 지사에게 실제로 공천이 돌아갈지, 공천을 준 다음 어떻게 대응할지 더 지켜봐야 한다는 당내 인사도 많다.

    다음은 A의원이 말하는 지방선거 전략. “이총재는 YS와 타협하지 말고 PK 지방선거에서 ‘진정한 3김 청산’을 구호로 내걸면서 ‘YS-노무현-민주당 연합군’과 정치생명을 건 일전을 치루는 ‘사즉생’(死卽生)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오히려 PK 유권자들에게 ‘감동’을 주어 확실한 한나라당 편으로 만들 수 있다.”

    PK를 잃으면 이총재의 대선 승리는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총재는 현재 PK의 핵심 변수인 YS 세력을 무력화하지 못했으며 그렇다고 YS 세력과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있지도 못하다. 정작 ‘텃밭 간수’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부산일보의 울산 여론조사 결과 노무현 후보는 52%대 35%로 이총재를 압도적으로 앞섰다. 노후보는 지난 3월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후보직을 걸고 영남 지역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한 곳이라도 승리하도록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인제 후보측은 이 기사를 ‘스크랩’해 두고 있다. 그러나 노후보가 염두에 둔 곳이 울산이라면 실현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선거 결과는 각 당이 누구를 시장 후보로 내느냐에 달렸다. 한나라당 후보로는 박맹우 울산시청 국장이 유력하다. 민주당은 박씨보다 중량감 있는 ‘깜짝 놀랄 후보’를 내겠다고 밝혔다. 특히 울산에서 인기 높은 민주노동당이나 송철호 인권 변호사가 노후보와 우호적이라는 점이 관심을 끈다. 민주당이 민주노동당이나 송변호사와 전략적으로 연대하는 데 성공한다면 울산에서 민주당이 승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대구시장 선거에서도 난기류가 흐르고 있다. YS 정권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한 김용태씨가 후보 신청을 했다가 철회했다. ‘반(反) YS 정서’가 강한 대구에서 “한나라당 지도부는 YS에게 잘 보이려고 TK까지 갖다 바치려 했느냐”는 반발이 나왔다.

    윤영탁 의원은 “김 전 실장이 당비 400만원만 날렸다”며 혀를 찼다. 조해녕 전 시장이 출마를 선언하자 이원형 의원은 “뭘 한 게 있다고”라며 반발했다. 문희갑 현 시장은 한나라당과 ‘원수지간’이 됐다. 만약 그가 검찰의 비자금 조사에도 불구하고 ‘정치생명’을 유지하게 된다면 대구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을 매우 괴롭힐 것으로 관측된다. 게다가 광역·기초단체장 후보 탈락자들의 반발로 인한 일부 시·군 단위 정치세력의 한나라당 이반 조짐은 영남 지역 전반에서 감지되고 있다. 공천 후유증 최소화는 이총재의 무거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민주당 경선 전에 노무현 후보는 김윤환 민국당 대표를 찾아갔다. 김대표측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노후보가 ‘저도 영남후보입니다’고 말하자 김대표가 ‘그래 너도 영남후보 맞다’고 답했다는 것. 김대표는 지금 노후보가 TK에서도 통할지 연구중이다.

    昌, YS에게 정말 백기 들었나
    수개월 전부터 최고위원 경선을 준비해 온 한나라당 김일윤 의원은 경선 판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선출직 일곱 자리를 놓고 서울에서 최병렬 김기배 박명환 서청원, 경기에서 김문수 안상수, 대전에서 강창희, 강원에서 함종한(원외), 대구에서 강재섭, 경북에서 김일윤, 부산에서 김진재 박관용 정형근, 경남에서 하순봉 박희태, 비례대표 중 김정숙 임진출 의원이 출마를 준비중이라는 것. 김일윤 의원은 “출마자들은 당 민주화에 기여하겠다는 생각으로 경선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영탁 의원은 “경선 출마 후보들과는 악수할 때도 분위기가 결연하다”고 전했다. 최고위원 9명이 참여하는 최고위원회는 국회 상임위 위원장단 임명, 국회의장단 임명, 주요 당직자 임명, 지역구 공천, 비례대표 선정, 당 예산 집행 최종 결정권 등을 행사하게 된다. 그야말로 거대 정당 막강 권력의 ‘계보 보스’로 뛰어오를 기회가 된다. 2004년 17대 총선 공천의 최종 결정권을 갖는다는 점도 무엇보다 매력적이다.

    최고위원 경선에선 그동안 당운영에 소외돼 온 수도권-비주류 세력의 도전이 거세질 것임은 당연하다. 경선에 출마하는 한 의원측은 “이미 상대 의원 캠프에서 돈을 뿌리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총재측은 최고위원 경선이 과열·혼탁으로 흐르는 것을 차단하고 ‘친(親) 이회창계’ 인사가 대표 최고위원이 되도록 유도한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수도권 한 의원은 “이총재가 당권 투쟁의 소모전을 최소화할지는 더 지켜볼 일”이라고 말했다.

    5월 초 지지율 회복할까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는 “거대 정당의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면 대체적으로 지지율이 반등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확정되는 5월9일 직후 봇물처럼 터질 여론조사에서 이총재의 지지율은 최소한 민주당의 확정 후보와 박빙이 될 정도는 올라줘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기 위해선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의 흥행 성공이 필수적인 요건이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회의론이 팽배하다. 승자가 뻔한 싱거운 게임에 국민이 관심을 갖겠느냐는 것이다.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서도 이총재는 5월 초까지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싶겠지만 현재로선 확실한 ‘재료’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한나라당 내홍이 진정되자 미래연대 공동대표 오세훈 의원은 당 주류 인사들에게 “그동안 미안했다”며 사과하고 다녔다. 이를 지켜본 영남 지역 B의원은 당 지도부를 성토했다. “미래연대 386의원들 중 상당수는 서울의 한나라당 텃밭 지역구에서 공천받은 덕에 거저 당선되지 않았나. 그게 다 이총재 덕분이었다. 그걸 잘 알기 때문에 오세훈 의원이 사과하러 다닌 것 아니냐. 이총재 측근들은 뭘 했기에 총재가 어려울 때 그런 의원들 하나 설득하지 못해 사태를 이 지경까지 끌고 온 것인가.”

    한나라당 C의원 비서관은 이렇게 말했다. “최고위원 경선을 준비하며 전국의 대의원, 당원들을 만나보니 집단지도체제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더라. 대의원, 당원 뜻에 따르는 것이 민주 정당인데 당 지도부는 왜 소수의 비주류에게 휘둘렸는지 모르겠다.”

    이총재가 몇 번이나 주춤하다 마지못해 집단지도체제를 수용한 듯한 모양새도 전략 부재로 거론된다. ‘자택 창가에 서서 고뇌하는’ 모습을 보인 이인제 의원보다도 이미지 전략이 뒤떨어진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한 의원은 “또 민주당에 지면 20~30년 동안은 정권을 찾지 못한다. 총재 측근들은 이런 절박함을 느끼지 못한다. 측근의 집중력이 떨어지고 방향이 자꾸 틀리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동안 각 분야 엘리트들로 완벽하게 ‘라인 업’ 된 것으로 알려졌던 한나라당 싱크탱크 그룹에 대해 당내에서 회의적 시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