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9

2002.04.11

‘체육복표 게이트’ 개봉 박두?

타이거풀스 로비·사전 내정설 의혹 무성 … 고위층 친인척, 정치권 인사 연루 거론

  • < 윤영호 기자> yypungho@donga.com

    입력2004-10-26 15: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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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육복표 게이트’ 개봉 박두?
    지난해 가을 무렵 재계 서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한 재벌 그룹 정보팀에 비상이 걸렸다. 그룹 총수가 ‘타이거풀스(정확한 명칭은 타이거풀스인터내셔널·이하 TPI)에 대해 조사해 보고서를 올리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 정보팀은 그룹 총수가 무엇 때문에 TPI에 관심을 갖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저 총수를 만족시킬 만한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모든 역량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던 것.

    정보팀 관계자들은 조사 과정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TPI의 실질적 오너 역할을 하는 송재빈 대표와 이 그룹 총수가 서울 S고 동문 사이라는 점을 알게 된 것. 정보팀 관계자들은 이를 근거로 ‘송대표가 그룹 총수에게 동문 관계를 이용해 뭔가를 부탁했고, 이를 들어줄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TPI에 대한 조사를 지시한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정보팀 관계자들의 추측이 맞았는지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송대표가 34세의 젊은 나이에 사업을 일으킬 수 있었던 데는 S고 동문들이 큰 힘이 됐다는 점이다. 특히 2000년 말 체육복표사업 수탁 사업자로 선정된 스포츠토토㈜는 S고 동문들의 도움 없이는 설립이 불가능했을 정도. 스포츠토토는 TPI의 자회사다.

    작년 말 현재 TPI 지분 12.83%를 갖고 있는 1대 주주 밸류라인벤처 권상훈 사장은 송대표의 S고 6년 선배다. 삼보컴퓨터가 TPI 주주로 참여한 것 또한 이홍순 부회장이 S고 선배인 것과 무관치 않은 듯하다. 김각중 경방그룹 회장의 아들인 김준 ㈜경방 전무도 송대표와의 친분이 계기가 돼 TPI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체육복표사업이란 스포츠 경기의 승패나 점수를 맞힌 사람에게 상금을 지급하는 일종의 베팅게임이다. 축구가 생활의 일부로 자리잡은 유럽 등에서는 일반화된 게임이어서 일각에서는 체육복표사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 ‘김대중 정권 마지막 이권 사업’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TPI는 체육복표사업자로 선정된 이후 두 가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예상과 달리 체육복표사업이 부진하다는 점과 TPI와 관련된 각종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사업자 선정과 관련한 ‘로비설’ ‘사전 내정설’ 등은 그런 의혹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다.



    ‘로비설’은 최근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송대표가 S고 동문 등 ‘드러난 커넥션’을 이용해 체육복표사업을 위한 기반을 마련한 다음 ‘드러나지 않은 커넥션’을 이용해 사업권을 따냈다는 게 ‘로비설’의 핵심이다. 송대표의 로비 대상으로 거론되는 사람은 현 여권 고위층 친인척 A씨와 정치권 인사 B씨와 C씨. B씨와 C씨는 한때 현 여권 실세로 통하는 K씨 캠프에서 일한 적이 있다.

    ‘로비설’을 제기한 사람은 현 정권 초기 고위층 측근이었던 C씨의 운전기사를 지낸 천모씨. 천씨는 최근 경실련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송대표가 A, B, C씨의 도움을 받아 체육복표사업권을 따낸 후 이들에게 TPI 주식과 현금을 제공했으며 이들은 차명으로 TPI 주식을 관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A씨와 C씨는 미국 유학 시절 만나 알고 지냈으며 송대표는 B씨 소개로 C씨를 만나 C씨를 통해 A씨에게 청탁했다는 주장이다.

    C씨는 이에 대해 “천씨가 회사 공금 횡령 등으로 해고된 뒤 3월25일 회사 비리를 폭로하겠다며 6억원을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허위 사실을 퍼뜨리고 있다”고 반박했다. C씨는 또 “천씨에 대한 수사 과정에 천씨가 전과가 많다는 사실도 드러났다”면서 “한마디로 천씨 주장은 난센스”라고 강조했다.

    송대표도 3월29일 TPI 주총이 끝난 직후 기자와 만나 “체육복표사업자 선정 과정을 보면 그런 얘기가 터무니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대표는 다만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작년 4월 무렵 B씨 소개로 C씨를 두세 차례 만난 적은 있지만 그때는 이미 체육복표사업자 선정 작업이 끝난 후였다”고 해명했다. “B씨는 어떻게 알게 됐느냐”는 질문에 송대표는 “(장인과) 같은 선산 김씨”라고만 답했다.

    송대표가 민국당 김윤환 대표의 사위라는 점도 호사가들 입에 오르내렸다. 김대표의 조카 김모씨도 TPI에서 해외사업본부장을 맡고 있다. 이에 대해 김윤환 대표는 “현재 국민체육진흥공단의 각종 규제 때문에 체육복표사업이 부진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뒤를 봐주는 ‘실세’가 있다면 그런 규제 하나 해결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송대표 주장대로 국민체육진흥공단이 2000년 말 체육복표사업자를 선정하면서 공정성과 투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야당인 한나라당 등에서 사업자 선정 과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자 시민단체 인사들에게 선정 과정을 감시하게 하는 등 사전에 잡음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를 취한 것.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 관청인 문화관광부 관계자들이 언론의 ‘로비 의혹’ 보도에 펄쩍 뛰는 반응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의혹은 여전히 남는다. 무엇보다 체육복표사업자 선정 이전부터 TPI 주식이 장외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된 배경이 의문이다. 2000년 10월 무렵 TPI 관계자로부터 액면가 5000원인 주식을 2만7000원 정도에 인수하라는 제의를 받았다는 한 인사는 “당시 회사 관계자는 사업권 획득을 기정사실처럼 말했고, 사업권을 따면 주가가 8만원대까지 치솟을 수 있다며 투자를 권유했다”고 밝혔다.

    체육복표사업자 선정 이후 TPI 관계자들이 보인 반응도 또 다른 의혹 대상이다. 이들은 체육복표사업자 선정 과정에 대해 누군가에게 귀띔을 받은 듯 “한때 상당히 위험했었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한국전자복권 컨소시엄이 강력한 경쟁 대상으로 부상했던 사실을 두고 하는 얘기다. 한국전자복권 김현성 대표는 ‘이용호 게이트’와 관련해 현재 중국에 도피중이다.

    그동안 TPI 관련 첩보는 국가정보원이나 검찰 등 사정당국에서도 상당 부분 수집한 것으로 보인다. 사정당국 한 관계자는 “체육복표사업자 선정 이후 TPI 관련 정보가 상당히 많이 올라온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 가운데는 앞에서 언급한 A씨 관련 내용까지 있다는 것. 검찰의 움직임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런 의혹 때문일 것이다. 체육복표사업이 과연 또 다른 게이트의 시작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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