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7

2002.03.28

소리에 묻어난 여인의 향기

  • < 강헌 / 대중음악 칼럼리스트 > authodox@empal.com

    입력2004-10-22 15: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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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에 묻어난 여인의 향기
    조동진 사단의 보석 같은 퓨전 보컬그룹 ‘낯선 사람들’이 단 2장의 앨범을 끝으로 망각의 늪에 빠져버렸지만 한 사람의 신예 여성 보컬리스트가 그 영롱한 울림을 되살리고 있다. 이 그룹 출신으로 슈퍼스타에 등극한 이소라의 뒤를 이어 솔로로 재등장한 차은주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올해 벽두 ‘봄여름가을겨울’의 컴백 앨범으로 기지개를 편 동아뮤직은 이제 차은주라는 득의에 찬 카드를 내민다. ‘알 수 없어요’로 공식 솔로 데뷔를 선언한 차은주는 아이들(idol) 댄스그룹들이 답보상태에 머무는 동안 다시 ‘듣는’ 음악의 반격을 개시했다.

    이 알찬 앨범의 프로듀서는 역시 막강 동아군단의 스타일리스트였던 ‘빛과소금’의 장기호다. 그가 보스턴 버클리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와 지휘봉을 잡았다. 플레이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앨범의 사운드 기조가 감이 잡힌다. 역시 장기호 특유의 투명하고 깔끔한, 과잉 장식적 요소를 비상하게 제거해 버린 톤 컬러가 지배한다. 현 음악시장의 실세인 SM레이블의 ‘보아’가 일본 오리콘 차트의 정상을 점령했다는 기사가 현해탄을 넘어 전해지는 시점에 이 땅의 FM 라디오에서는 전대의 맹주였던 동아뮤직의 신예가 자신의 매력을 고요하게 펼치는 상황이 참으로 교묘하다.

    마치 독백같이 정교하게 조각된 ‘그댄 알잖아요’가 앨범의 커튼을 스르륵 올리면, 기타리스트 한경훈이 제공한 ‘그대의 꿈’이 인상적인 키보드 인트로와 함께 느리고 그윽하게 다가온다. 빛과소금의 동료인 박성식이 제공한 4, 5번 트랙, ‘슬픈 사랑’과 ‘미련’은 80년대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처럼 드라마틱하다. 바로 이 앨범의 감정적인 분수령을 이루는 대목이다. ‘슬픈 사랑’이 흔한 러브 발라드의 상투성을 극복한 뜨겁고 격정적인 청신함의 프레이즈라면, ‘미련’은 빛과소금 전성기의 유연하고도 세련된 퓨전 쿨한 리듬 감각이 자유롭게 표출된다. 이런 다양한 음악의 표정을 차은주는 마치 포스트모던한 건물의 창에 비치는 햇살처럼 산뜻한 톤과 안정된 기교로 맵시 있게 조리한다.

    들국화와 김현식, ‘시인과촌장’과 ‘어떤 날’로 빛났던 동아레이블의 전설이 이 여성 뮤지션의 호흡으로 다시 시작된다. 브라보 동아! 브라보 음악 그 자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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