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0

2002.01.31

한인 8명, 몽골 경찰에 폭행당했다

호텔서 연행 후 무차별 구타·몸 수색 … 연행 사유 안 밝히고 사과 ·피해보상도 '감감'

  •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입력2004-11-09 16: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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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인 8명, 몽골 경찰에 폭행당했다
    몽골 거주 교민을 포함, 한인(韓人) 8명이 지난 1월4일 연행 사유조차 모른 채 몽골 특수경찰에게 무차별 폭행당한 뒤 불법연행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남성들로 이중 일부는 한때 풀려났다가 주(駐)몽골 한국대사관에 신변보호를 요청한 뒤에도 다시 경찰에 끌려가 폭행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주간동아’의 단독취재 결과 밝혀졌다. 또 1월18일 현재 몽골 경찰당국은 폭행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외교통상부(이하 외교부)에 의해 확인됐다. 이번 사건은 중국의 한국인 마약사범 처형, 영국 한인 여대생 피살ㆍ실종 사건 등 최근 잇따른 일련의 재외국민 피해에 뒤이은 것이어서 적잖은 파문이 예상된다.

    한인 8명, 몽골 경찰에 폭행당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폭행당한 한인들은 몽골 현지 교민 2명과 한국인 여행객 6명. 이들은 모두 1월4일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시내의 보야지 호텔에서 경찰에 연행됐다. 검정 복면을 쓰고 기관단총과 권총, 곤봉으로 중무장한 몽골 경찰특공대원 10여명이 갑자기 호텔에 들이닥친 건 이날 새벽2시30분(현지시각). 당시 A씨(42) 등 교민 2명은 이 호텔 지하 한국인 소유 단란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고, 여행객인 30대 남성 6명은 몇 시간 전인 1월3일 오후 항공편으로 몽골에 입국한 뒤 객실에 투숙중이었다.

    몽골 경찰은 다짜고짜 한인들에게 총구를 들이대 위협한 뒤 주먹과 곤봉, 군화발로 마구 폭행하고 오리걸음까지 시킨 후 울란바토르 시내의 한 경찰서로 끌고 갔다. 경찰서에서도 한인들은 구타를 당하며 몸 수색과 소지품 검사, 지문채취, 사진촬영 등 갖가지 조사를 받고 10시간 뒤쯤 풀려났다.

    한인 8명, 몽골 경찰에 폭행당했다
    그러나 압수당한 여권을 되찾으려 경찰서 밖에서 대기중이던 C씨 등 여행객 6명은 4시간 뒤 다시 경찰서로 잡혀들어가 폭행당했다. 이중 일부는 피까지 토했다. 불법연행에 격분한 교민 A씨가 신변보호를 요청하러 한국대사관(대사 최영철)으로 달려간 사이 또다시 일이 벌어진 것. 이날 A씨와 함께 술을 마시다 연행됐던 교민 B씨(49ㆍ안경점 경영)는 재(在)몽골 한인회 관계자들과 함께 이날 밤 9시쯤 대사관측과 면담을 가졌으나 “현재 몽골경찰에 연행 경위를 알아보고 있다. 경찰에선 연행 사유가 따로 있다고 하니 일단 몽골법을 따르면서 사태 추이를 지켜보자”는 답변만 들어야 했다.



    한인들이 이처럼 ‘가혹행위’를 당한 까닭은 뭘까. 연행은 정당한 것이었을까. ‘주간동아’는 1월16일 한국대사관에 연행 사유를 문의했지만, “공식적인 취재 채널을 외교부 영사과로 해달라. 한인들이 연행당한 건 지난해 12월 말 몽골 현지에서 발생한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고 답했다.

    ‘사건’의 개요는 뭘까. 재몽골 한인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몇몇 교민들간에 분쟁이 빚어진 재산권 관련 민사소송을 둘러싸고 한인들간에 불미스런 폭력사건이 발생했다는 것. 그 결과 교민 D씨가 경찰에 구속돼 사건은 일단락됐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번 불법연행이 이뤄졌다는 것. 이에 대해 대사관측은 연행된 8명 가운데 여행객 6명은 D씨를 만나러 온 한국 후배들로 모두 한국에서 전과가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조사 차원에서 연행됐을 것”이라 말했다. 이들은 72시간 구금된 뒤 1월7일 석방됐으나, 이날 자진해서 몽골을 황급히 떠난 것으로 밝혀졌으며 한국에선 아직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한국에 전과기록이 있다고 해서 무작정 폭행하고 영장없이 구금해도 되는가. 더욱이 한인들은 연행 당시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았다. 현행범도 아니고 불법무기를 소지하지도 않았다.” B씨는 “더 큰 문제는 무고한 사람들을 불법연행했다 죄가 없어 석방한 뒤까지도 연행 사유를 알려주지 않는 몽골 경찰의 일방적 처사”라며 “이는 인권침해 행위”라고 목청을 높였다. B씨는 현직 한인회 사무총장. 게다가 함께 폭행당한 A씨는 10여 년 전 몽골과의 수교 직후 건너간 태권도사범으로 자신의 태권도 제자 등 몽골 경찰 내부에도 지인(知人)이 많은 몽골의 ‘한국인 유지’로 통한다. 때문에 이번 사건을 쉽게 납득하기 힘든 교민들의 분노는 클 수밖에 없다. 피해 교민들은 현재 진상규명위원회를 꾸려 몽골당국과의 적극적인 피해보상 협의를 대사관측에 강도높게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 1월17일 외교부 영사과 관계자는 “한국 교민이 외국 경찰, 그것도 특수경찰에 의해 폭행ㆍ구금된 것은 이번이 최초“라며 “현재 한국대사관을 통해 문제해결을 모색중”이라고 답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대사관측은 사건이 발생한 1월4일 몽골 경찰청장과 면담을 갖고 “무고한 사람이 연루됐으니 사건 경위를 파악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몽골 경찰은 “가혹행위 유무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가 이틀 뒤 대사관측에 “가혹행위는 없었다”고 해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대사관측은 1월8일 몽골 외무성 차관과의 면담에서 “한국 교민의 신변문제에 각별히 신경을 써달라”고 요구했다고 외교부는 밝혔다. 하지만 대사관측이 외교부 영사과로 보낸 공문엔 일단의 한국인들이 폭력을 모의한다는 첩보가 있어 연행했다고 밝힌 것으로 돼 있을 뿐, 몽골당국은 불법연행 및 가혹행위 여부에 대해 1월18일 현재까지도 명백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 피해자 보상문제 역시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한인들에 대한 몽골 경찰의 무례는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우형민 재몽골 한인회장(48)은 “몽골 경찰은 심심찮게 ‘행패’를 부려왔다”고 전한다. 2년 전에도 몽골에서 한 40대 한국남성이 무고하게 경찰에 끌려가 3일 가량 구금됐다 풀려난 적이 있으나 대외적으론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 당시 여행객으로 몽골의 친지를 방문하러 갔던 이 남성은 한 몽골인에 의해 이름이 비슷한 한인 불법인력송출업자로 몰렸었다. ‘주간동아’가 외교부에 확인한 결과 이는 사실로 밝혀졌다. 우회장은 또 “교민들이 몽골 경찰에게 뺨을 맞는 일도 잦다. 예전엔 이런 일에 대해 대사관측의 대응이 상당히 미온적이었지만, 얼마 전 중국의 한국인 마약사범 처형사건 파문이 있은 탓인지 이번엔 대사관측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몽골은 한국과 인종ㆍ문화적 유사성을 지녔지만, 사회주의국가여서 ‘왕래할 수 없는’ 나라였다가 1990년 한국과 수교했다. 양국간 교역량도 많아 한국은 5위권 내에 드는 몽골의 주요 교역상대국. 한인들의 투자도 활발하다. 지난해 11월 현재 몽골의 한국 교민 수는 665명. 러시아(6595명), 중국(4303명)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지금은 더 늘어나 700명을 넘어선 것으로 한인회측은 밝힌다. 한국에 체류중인 몽골인도 1만5000명을 웃돌 정도로 많지만, 이들의 90% 이상이 불법체류자다.

    이런 밀접한 관계에 놓인 몽골에서 영문도 모른 채 무차별 폭행당한 한인들이 아무런 사과나 피해보상을 받지 못하는 선례를 남기면 유사 사례가 재발할 수밖에 없다는 게 교민들의 주장이다. 교민들은 “몽골 경찰이 미국인이나 일본인에게 함부로 대하는 걸 들어본 적조차 없다”고 불만을 표한다. 이에 대해 외교부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겠지만, 몽골이 국가적 자존심을 내세울 경우 단시일 내 해결되긴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몽골(Mongolia)은 ‘용감한’이란 뜻을 지닌 국명. 용감하다 못해 ‘인정사정 없는’ 몽골 경찰의 과잉수사 방지를 위한 우리 정부의 후속조치를 교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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