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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경선정국 … ‘權心’은 어디로

권노갑씨 귀국 앞두고 ‘하와이 구상’에 관심 고조 … 이인제 고문 공개 지지는 ‘일단 멈춤’

  •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與 경선정국 … ‘權心’은 어디로

與 경선정국 … ‘權心’은 어디로
행사에 참석하려면 일정을 앞당겨 귀국해야 합니다.” 1월18일 미국 하와이 권노갑 전 민주당최고위원 아들의 자택. 전당대회를 앞두고 급거 하와이로 간 민주당 이훈평 조재환 의원과 김태랑 전 의원 등은 권 전 위원에게 조기 귀국을 요청했다. 이들이 말한 ‘행사’란 1월20일 열린 이인제 고문의 대선 출정식.

듣고 있던 권 전 위원이 잠시 뜸을 들이다 “그렇게 하지…”라며 짤막하게 답했다. 이들 3인의 원래 귀국 예정일은 21일. 공교롭게도 바깥에 나가 있는 동안 이고문의 대선 출정식이 있었던 것. 권 전 위원의 내락을 받은 3인은 19일 급거 귀국, 다음날 ‘행사’에 나란히 참석했다. 이들의 출정식 참석으로 당 주변에 나돌던 권노갑-이인제 이상기류설은 일단 고개를 숙였다.

그렇지만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이인제 고문의 대선 출정식이 20일로 잡혀 있었는데도 이들은 외유를 강행했다. 그러면서도 당초 일정을 변경해 중도 귀국했다. 그 며칠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과정에 권 전 위원과 이고문의 최근 관계를 유추할 수 있는 실마리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김홍일 의원 전화로 ‘양갑’ 화해 강조

우선 이훈평 의원 등의 외유는 급작스럽게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동교동 한 인사는 “권 전 위원이 부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 주변에서는 “권 전 위원의 핵심 측근들이 의도적으로 출정식 날짜를 비켜 외유에 나선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동교동 구파와 이인제 고문 양 진영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조기전대론이 사실상 확정된 지난 1월 초 이고문측은 대세론 확산에 심혈을 기울였다. 김대중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통한 이미지 관리도 전략 중 하나였다. 이고문은 “국민의 정부 인사정책은 실패했다”고 DJ의 인사정책을 문제 삼았다. 동교동 인사들은 그런 이고문을 예사롭지 않게 보았다. DJ에 대한 차별화란 곧 동교동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

얼마 지나지 않아 동교동의 우려는 사실로 드러났다. 이고문 주변에서 동교동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하는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각종 비리의혹이나 현 정권의 인사정책 실패에 대한 비판 여론이 동교동계와 겹쳐 있고 이런 부정적 이미지가 경선과 대선에서 이고문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동교동계에 대해 부담을 갖는 눈치를 보인 것. 이고문측 한 관계자는 “권 전 최고위원이 공개적으로 이고문을 지지하고 나서는 문제는 좀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고문 진영에서는 “경선 때까지만 권 전 위원의 동교동과 손잡고 그 이후는 일정 거리를 둬야 한다”는 한시적 제휴론도 제기됐다.

이런 분위기를 동교동 인사들이 모를 리 없다. 동교동 한 인사는 “이고문측의 움직임은 빠짐없이 하와이로 전달됐다”고 한다. 이를 전후해 동교동 인사들이 이고문 진영에서 슬금슬금 발을 빼는 모습을 연출하고 “이고문을 포스트 DJ로 삼는 것을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먼저 김옥두 전 사무총장이 “(경선과 관련한 동교동 입장은) 정해진 것이 없다”며 바람을 잡고 나섰다. 동교동 인사들이 하와이로 향한 것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김방림 의원은 이고문측의 출정식 참석 종용에 다른 일정을 이유로 일본행을 고집했다고 한다.

이고문 진영은 이런 기류를 눈치채고 권 전 위원과 그의 측근 3인방이 머물고 있는 하와이로 전화를 걸었다. 결국 3인방은 권 전 위원과 논의 끝에 출정식 참석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렇지만 권 전 위원을 참석시키려던 이고문측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돌아온 3인방의 반응도 제각각이다. 김태랑 경남도지부장은 “(동교동 입장을) 미리 정리할 필요는 없다. 의도적으로 정리하면 사단이 생긴다. 국민의 지지를 받는 사람을 지지하겠다는 것이지 이고문을 지지하겠다는 말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 주장은 하와이에서 권 전 위원과 3인방이 나눈 대화의 핵심으로 이고문을 지지하던 당초 분위기와 다소 거리가 있는 대목이다.

지난 15일 “대권과 당권 모두에 출마하겠다”는 한화갑 고문의 입장 표명도 권 전 위원과 동교동에 새로운 기류를 불어넣었다. 동교동계 내부에서 “한고문의 당권 선회를 조건으로 동교동계가 단합해야 한다”는 단일대오론이 형성된 것. 하와이에 머물고 있는 권 전 위원과 한고문 사이에 비밀접촉도 이뤄졌다. 두 인사는 지난 1월 중순 전화를 주고받았다. 독감에 걸린 권 전 위원을 위로하는 병문안 성격의 전화였지만 핵심 내용은 ‘귀국 후 회동’ 문제였다. 한고문은 전화통화에서 “할 얘기가 많다. 들어오면 한번 찾아가겠다”고 회동을 제의했고 권 전 위원은 “그러자”며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와이 3인방’은 한화갑 고문과의 타협 문제에 대해 “만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만나느냐가 중요하다” “서로 욕심을 버리고 순리에 따르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말을 주고받았다고 한 참석자는 말했다. 과거와 달리 뭔가 새로운 변화를 엮어낼 수도 있다는 분위기였다는 것.

김홍일 의원도 ‘양갑’ 화해 기류에 다리를 놓았다. 미국 UCLA 대학병원에서 중추신경 계통의 수술을 받은 김의원은 수술 직후 하와이에 있는 권 전 위원에게 전화했다. 권 전 위원이 먼저 전화했으나 연결이 안 돼 김의원이 다시 전화한 것. 이 통화에서 김의원은 ‘양갑’ 두 사람의 화해를 강조했다고 한다. 김의원이 “아저씨, 당이 어렵다. 동교동 역할이 중요하다. 한고문과 다시 하나로 뭉쳐야 하지 않느냐. 이제 믿을 사람이라곤 아저씨밖에 없지 않느냐”고 했다는 것. 출국 전 “방문을 걸어 잠그고 두 분이 결정하고 나왔으면 하는 심정”이라던 김의원의 속내가 고스란히 권 전 위원에게 전달됐음은 물론이다. 권 전 위원은 김의원의 전화를 받고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권 전 위원과 한고문이 대타협에 나선다면 민주당 경선 정국은 전혀 새로운 상황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당장 한고문과 이고문의 입장 조율이 당면 과제로 등장한다. 이인제 대권-한화갑 당권이란 화두가 등장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양갑의 타협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동교동계 한 인사는 권 전 위원과의 통화 내용을 공개하며 “한고문이 정식으로 협조를 요청하면 권 전 위원이 거절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와서 한고문이 현실을 직시하고 당권으로 돌아선다 해도 우리는 한광옥 대표를 지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일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인제 고문과 한화갑 고문의 병립도 생각처럼 쉬워 보이지 않는다. 이고문이 회견에서 “한고문도 가장 훌륭한 지도자의 한 분으로 함께 단결하고 힘을 합쳐야 한다는 생각을 접어본 적이 없다”고 평가했지만 그동안 쌓인 앙금의 두께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더구나 한고문에 대한 이고문의 자세는 생각보다 경직됐다. 이고문은 한고문이 “지방선거 결과가 좋지 않으면 후보를 교체해야 한다”는 강경 자세를 보인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만약 한고문이 당 대표가 되고 그가 후보교체를 주장할 경우 파급력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게 이고문 진영의 판단이다.

양측은 지난해 말부터 전당대회 시기를 놓고 물밑 접촉을 해온 문희상 의원-박범진 전 의원 라인이 화해와 협력의 여지를 탐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공통분모를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권 전 위원은 이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안고 25일 귀국할 예정이다. 귀국과 동시에 그의 하와이 구상은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하와이에서 권 전 위원을 만났던 한 인사는 “미리 카드를 꺼내놓고 방향을 정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권 전 위원이 조급하게 입장을 표명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와이를 방문했던 한 인사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워야지 억지로 뭘 만들려면 안 된다는 것이 권 전 위원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0년 연말 외유를 떠나면서 던진 ‘순명(順命)론’과 같은 맥락이다. 민주당 경선 판도에 새 변수가 등장할 것인지 주목된다.



주간동아 320호 (p16~18)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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