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7

2001.11.01

재미와 전문성이 ‘속에 꽉’

  •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입력2004-11-16 16: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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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와 전문성이 ‘속에 꽉’
    “통조림 없어요?” “다 나갔는데요.” 난데없이 서점에서 통조림을 찾는 사람들. 여기서 통조림은 먹는 ‘캔’이 아니라 책 이름이다. 얼핏 봐선 단행본인지 잡지인지 정체가 모호한 이 책은 ‘프로젝트 409’라는 회사가 발간하는 문화 무크지.

    99년 발간을 시작해 지금까지 9권이 나온 이 책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조용한 돌풍을 일으키며 세력을 확장해 가고 있다. 발행 부수가 많은 것도 아니다. 정기구독 6000부를 포함해 매번 2만 부 정도만 찍고 있다. 그러나 ‘단군 이래 최대의 불황’이라는 출판동네에서 성공을 거둔 몇 안 되는 책으로 꼽히는 이유는 뭘까.

    “요즘 젊은 사람들이 책 안 본다고들 하지만, 나가 보면 정말 볼 만한 책이 없어요. 어려운 건 너무 어렵고, 영상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보기에 딱딱하고 지루한 게 대부분이죠.”

    재미와 전문성이 ‘속에 꽉’
    ‘통조림’ 디렉터 이명호씨(42)는 잡지의 가벼움과 전공서적의 전문성을 결합해 새로운 개념의 문화 무크지를 탄생시켰다. 이런저런 잡다한 내용을 담는 게 ‘잡지’의 의미지만, ‘통조림’은 한 권에 오직 한 가지 주제만 파고든다. ‘001호 다이어트, 002호 키치문화, 003호 섹스매뉴얼(임신과 피임), 004호 얼굴, 005호 벌레, 006호 만화’ 하는 식이다. 가장 최근에는 009호 ‘한국의 미’(상권) 편이 나왔다. 내용에 앞서 파격적이고 개성적인 편집이 먼저 눈길을 끈다. 어디서도 볼 수 없던 재미있고 신기한 책의 모양새가 젊은 세대의 감성과 상상력을 자극함은 물론이다.

    “젊은이들의 문화를 대변하는 책인 만큼,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문법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겉은 대중잡지처럼 재미있게, 속은 전공서 뺨치게 튼실하게’ 만들자는 것이 우리 생각입니다.”



    만화를 주제로 다룬 6호 ‘절대만화’편에는 ‘졸라 절믄 만화가의 막대머근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책 전체에 걸쳐 B급 정신으로 무장한 언더그라운드 만화작가들의 무정부주의적 감성과 톡톡 튀는 독창성이 생생하게 살아 숨쉰다. 그런가 하면 7호 ‘심리학’편에서는 프로이트와 라캉을 논한다. 그러나 절대 목에 힘주고 어렵게 얘기하지 않는다. ‘인생사 첫 끗발이다!’ ‘잊혀지지 않는 첫 경험’ ‘바람둥이 식별 테스트’ 같은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재미와 지식이 한꺼번에 손에 잡힌다.

    재미와 전문성이 ‘속에 꽉’
    “만나면 연예인 얘기밖에 안 하는 대학생들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어요. 적어도 프로이트와 라캉이 무슨 얘길 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기획한 거죠. ‘한국의 미’는 우리의 사라져 가는 문화재를 찾아나선 건데, 산골마을마다 찾아다니느라 사진촬영에만 1년이 걸렸어요. 만들고 나니 관광공사에서 자료 의뢰가 들어오더군요.”

    이씨는 젊은이들을 위해 만든 책인데, 이젠 전문가들도 찾는 다고 말한다. 이 잡지에는 ‘마감’이 없다. 마감에 맞춰 서둘러 발간하기보다 하나를 만들더라도 제대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자는 것이 이들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언제 책이 나올지 몰라 애태우는 독자도 적지 않다.

    “책이 잘된다고 무조건 많이 찍고 싶진 않아요. 대기업에서 판권을 사겠다고 제의해 왔지만 책의 성격이 변질될까봐 안 팔았어요. ‘통조림’이란 이름으로 딱 100권만 만들 겁니다. 그 정도면 젊은이들의 문화에 대해 웬만큼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아요.”

    팀원들은 대부분 홍대 미대 출신으로 이씨의 학교 후배들. 광고계에 오랫동안 몸담아 오면서 한국광고대상을 3회나 수상한 이씨는 출판과 인터넷으로 눈을 돌려 신세계를 개척하고 있다. 그의 꿈은 우리 만화계에 영화 ‘쉬리’ 같은 대박을 만들어내는 것. 잡지만화는 일본이 1등이지만, 디지털만화로는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고 그는 말한다. 젊은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이들의 새로운 도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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