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7

2001.11.01

‘南南 갈등’ 뺨치는 ‘北北 갈등’ 있다

북 군부 “관광대가금도 못 받는데 또 뭘 들어주나” 불만 고조 … 조평통·아태는 주눅, 남북대화 차질

  • < 김 당 기자 > dangk@donga.com

    입력2004-11-16 14: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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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南南 갈등’ 뺨치는 ‘北北 갈등’ 있다
    불과 1년 전 일이다. 당시 일부 언론은 김대중 대통령의 권유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1년 10월20∼21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리는 제9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옵저버 자격으로 참석해 외국 정상들과 정상회담을 갖고, 이는 북한이 국제협력체제에 편입되는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김위원장의 두 번에 걸친 상하이 방문은 이런 장밋빛 보도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위원장이 참석할 것이라던 APEC 정상회의는 여전히 테러 지원국 리스트에 올라 있는 북한에게는 다소 껄끄러운 ‘반테러 선언’을 채택하고 폐막했다.

    불과 1주일 전의 일이다. 10월 중 남북관계 캘린더는 이미 개최한 제1차 금강산관광 활성화를 위한 당국간 회담(10월3∼5일)을 비롯한 여러 당국간 회담과 실무접촉 그리고 민간교류 행사 등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가운데 북한이 금강산 개최를 고집하고 있는 6차 남북 장관급회담(10월28일) 말고는 모두 10월중 남북관계 일정표에서 지워질 운명에 처해 있다. 북미관계에 이어 남북관계마저 짙은 먹구름이 드리운 것이다.

    南 비상경계조치 관련 北 전례 없이 강경입장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 근본적으로는 북미관계의 경색 탓이다. 전임 클린턴 정부 시절 북미관계는 양국 최고 지도자의 특사들이 상대국을 교차 방문하고 클린턴 대통령이 북한 방문을 검토하는 단계까지 진전되었다. 그러다 보수적인 공화당 부시 행정부 등장으로 대북정책 검토라는 냉각기가 왔고, 최근에는 전대미문의 테러 대참사로 미국의 아프간 보복전쟁이 북미관계는 물론 남북관계까지 얼어붙게 하는 교착 국면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교착 국면이 반드시 북미관계의 경색과 ‘테러와의 전쟁’ 때문만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북한 당국이 최근 이산가족 교환방문을 일방적으로 연기한 것이 그 불길한 징조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이하 조평통)은 지난 10월12일 대변인 담화를 통해 10월16일로 예정된 4차 이산가족 상봉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아프간 공습으로 남측이 전군에 비상경계령을 내리는 등 삼엄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어 순조로운 대화와 내왕이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지난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으로 남북관계 정상화의 물꼬가 터진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 국면에 들어간 것은 이번을 포함해 모두 세 번. 첫번째 국면은 지난해 10월로 당시 2차 이산가족 교환방문 후보자 명단 교환 등 남북 교류 및 회담 일정이 연기되었다. 당시 북측은 그 사유로 ‘내부 사정’을 들었다. 그러나 조명록 특사의 방미에 이은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으로 북미관계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이어서 ‘전문 일꾼’이 부족한 북한으로서는 대미 관계 개선에 전념하느라, 이산가족 교환방문 업무에는 여력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되었다.

    두 번째 국면은 북한이 올해 3월13일로 예정한 제5차 장관급회담 참석을 돌연 연기한 데서 비롯되었다. 당시 북한 당국은 연기 사유로 ‘여러 가지 사정’을 들었을 뿐 구체적인 사유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대북정책 검토’를 끝낸 부시 공화당 행정부가 여전히 대북 강경 입장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에 대한 불만의 연장선에서 남북관계가 영향을 받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결국 둘 다 북미관계의 경색이 남북관계의 교착을 가져온 것이다.

    ‘南南 갈등’ 뺨치는 ‘北北 갈등’ 있다
    그런데 이번 세 번째 경색 국면은 구체적인 사유를 대지 않았던 두 번의 경우와 달리 북측이 ‘남조선의 정세’ 때문이라고 사유를 적시해 남북관계를 흔들고 있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물론 북한이 이산가족 교환방문 무기한 연기의 트집을 잡은 ‘남조선 정세’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아프간 전쟁에 따라 취해진 비상경계조처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나 10월12일 조평통 담화에 이어 10월20일 조평통 서기국이 발표한 ‘보도 제811호’는 남북간 힘겨루기가 간단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우선 조평통 보도는 남한에서 비상경계조치를 취한 것과 관련하여 지난 10월12일 북의 원칙적 입장을 밝히는 조평통 대변인 담화에 이어 10월18일 장관급회담 북측 김영성 단장 명의의 전화통지문을 보냈다고 전제하고 “담화와 통지문에서 최근 남측이 취하고 있는 비정상적인 긴장조성 행위에 대해 엄중시하고 북남 대화를 진전시켜 나갈 것에 대한 적극적인 입장을 밝혔으나, 남측은 우리의 정당한 발기와 주장에 아무런 호응도 보이지 않고 도리어 북남관계 발전과 민족의 단합을 위한 우리측의 성의에 비방중상으로 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조평통은 “남측의 부당한 처사와 관련하여 근원적으로 문제를 해부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제하고 “(이와 같은) 위험한 사태를 조성한 장본인은 다름 아닌 남측”이며 “대화 상대방인 우리를 걸고 전군과 경찰에 비상경계조치까지 취하면서 민족 내부에 대결 분위기를 조성한 책임도 바로 남측에 있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전과 달리 남측의 책임을 분명히 적시한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원인 제공과 남한의 비상경계조치가 갖는 불가피성에도 북한 당국이 이처럼 전례 없이 강경하게 나오는 배경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 주목할 대목은 ‘북북(北北) 갈등’ 시각이다. 정세현 국정원장특별보좌역(전 통일부 차관)은 최근 북한이 강경하게 나오는 배경과 관련해 “우리 사회에는 남남 갈등이 있지만, 북한에도 북북 갈등이 일어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고 밝혀 관심을 끈다. 정세현 특보에 따르면 대남 관계개선 문제와 관련해 군부와 조선 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김용순 위원장) 사이에 상당한 갈등이 있으며 “금강산을 개방했으나 달러가 안 들어오고 있지 않느냐”는 군부 주장에 밀려 조평통과 특히 아태평화위는 잔뜩 주눅 들어 있다는 것이다.

    ‘南南 갈등’ 뺨치는 ‘北北 갈등’ 있다
    제5차 남북장관급회담 기간중인 지난 9월15일 금강산에서 있은 현대와의 접촉에서 북측이 관광대가 미수금 문제를 집중 거론한 것도 이를 반영한다. 당시 현대-아태 면담록에 따르면 북측 송호경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은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에게 “우리 해당기관들에서는 관광대가가 제대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데 무슨 문제를 또 해결해 주느냐고 항의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밝혀 북한 내부 갈등이 만만치 않음을 내비쳤다.

    지난 9월 나온 조평통 성명 때만 해도 북한 내부적으로 상당히 갈등이 있지만, 남쪽과의 협력밖에 길이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미국 본토에 대한 테러로 조성된 전쟁 국면과 남측에서 조성된 남남 갈등으로 더 이상의 실리(쌀 지원 등)를 챙길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남북관계를 가름하는 변수는 크게 육로관광을 포함한 금강산관광사업 활성화 문제와 미국의 아프간 전쟁이다. 두 현안 모두 북한 군부의 군심(軍心)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우선 지난 6월 현대아산이 애당초 합의한 관광대가금을 몇 달째 제대로 내지 못한 가운데 현대아산-아태평화위는 금강산 육로관광과 관광특구 지정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그러나 지난 10월 초 열린 제1차 금강산관광 활성화 당국간 회담에서 양측이 쟁점에 대한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한 것은 육로관광 도로 개설을 통해 비무장지대(DMZ)가 ‘무장해제’ 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군부의 강경 기조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지가 공개석상에 몇 달째 나타나지 않는 김용순 비서의 숙청설을 보도한 것도 이런 관측과 무관하지 않다. 이 신문은 당시 안기부 출신의 북한 문제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최근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하면서 북한 내 온건파들의 입지가 좁아졌고 금강산 관광사업의 책임자인 김용순 비서가 지난해 현대에게서 예정됐던 관광대금을 받는 데 실패했다”며 이 두 가지 사안이 그의 숙청과 관련이 있음을 시사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기사가 나온 후인 지난 8월8일 아태평화위 대변인 명의로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가 금강산 관광사업을 가로막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성명을 낸 것이다.

    아태평화위 대변인은 당시 성명에서 “미국이 지금과 같이 계속 금강산 관광사업을 집요하게 방해하고 나선다면 그 모든 후과(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소 엉뚱해 보이는 비난 성명이 나온 배경에 대해 당시 정부측은 “북측이 6월8일 합의서를 통해 2개월 이내에 금강산 관광특구를 지정키로 약속한 뒤 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부담감에서 이 같은 성명을 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그보다는 미국 정부가 자국의 보수 언론을 통해 금강산사업 흔들기와 아태평화위와 군부의 갈등을 부채질하는 민군(民軍)간 이간질에 나섰다는 인식에서 아태평화위 대변인 성명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南南 갈등’ 뺨치는 ‘北北 갈등’ 있다
    향후 남북관계를 결정지을 또 다른 변수는 아프간을 상대로 한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과 이로 인한 ‘남한의 정세’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당국자는 과거 군부 독재정권 시절 외국 언론에 비친 남한 이미지는 늘 화염병이 난무하는 ‘데모와의 전쟁’이었다고 말했다. 때문에 교포들은 금방이라도 독재정권이 무너질 것 같은 생각을 갖기도 했지만 텔레비전에 비친 화면과 실제 현실은 달랐다면서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요컨대 북측이 이산가족 교환방문을 갑자기 연기한 것은 ‘수세적 방어’행위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 언론은 아프간 전쟁을 중계방송하고 있다. 그런데 북측 이산가족 교환 방문단이 남한에 와서 최첨단 유도탄 같은 정밀타격무기와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전략·전술 폭격기들이 아프간을 초토화하고 난민들이 수백만 명 발생하는 광경을 아무런 제약 없이 텔레비전으로 지켜본다고 생각해 보라. 북한 주민들은 물론 당국자들도 겁나게 되어 있다. 김정일은 본인 말로도 남한 텔레비전을 즐겨 본다고 했다. 김정일도 겁나게 되어 있다. 그런 상황에서 주민들을 100명이나 남한에 보내는 것은 내키지 않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 국면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것일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핫라인을 가동하는 것. 이와 관련해 임동원 대통령외교안보통일특별보좌역의 핫라인이 가동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상대역인 김용순 비서가 군부의 견제를 받고 자중하느라 라인이 가동되지 않고 있어 임동원 특보 라인의 가동은 현재로선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아프간 전쟁이 끝나 ‘남한의 정세’가 호전될 때까지 휴지기를 갖고 쉬는 게 좋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갖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북이 이산가족과 태권도시범단 교환이라는 민간행사는 연기하면서도 장관급회담 등 당국간 회담은 예정대로 추진하자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 따라서 우선 다른 회담은 연기하더라도 제주도에서 개최한 전례가 있어 장소(금강산)가 문제될 것이 없는 장관급회담만큼은 응해 북의 진의를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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