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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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정책 무슨 비밀 들켰기에…

국정원 과장 정보 누설사건 의혹 … 왜 ‘로버트 김 사건’처럼 확대 못했나

  •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기자 > hoon@donga.com

    입력2005-01-17 15: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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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볕정책 무슨 비밀 들켰기에…
    남북 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느닷없이 터져 나온 국가정보원 대북전략국 종합과장 안모씨(40) 파면 사건이 한-미간에 미묘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국정원에 따르면 안과장의 해임 사유는 그가 한국계 미국인으로 미 CIA에서 일하는 윤모씨와 십여 차례 접촉했는데도 그같은 사실을 국정원에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씨가 맡은 대북전략국 종합과장은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을 수립하는 핵심 요직이다. 이 자리에는 국정원의 첩보수집관(IO)과 공작관(工作官)들이 물어온 대북 ‘첩보’(information)가 한데 모인다. 첩보는 분석과 판단을 거쳐 엄선한 후 ‘정보’(intelligence)로 변모하는데, 이러한 대북 정보도 종합과로 취합된다.

    국정원으로 들고 나는 대북 첩보와 정보를 모두 살펴볼 수 있는 자리가 바로 대북전략국 종합과장인 것이다.

    이러한 일을 하기에 종합과는 당연히 내근부서로 분류된다. 내근부서 근무자는 원칙적으로 외국 정보기관원이나 언론사 기자, 정치인 등 외부인과의 접촉이 금지되어 있다. 불가피하게 이들을 만났을 때는 만난 사실과 그들과 나눈 이야기를 ‘접촉보고서’에 적어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안씨는 미 CIA 요원인 윤씨를 만나고도 접촉보고서를 올리지 않았다.

    안씨 해임 사실이 알려지자,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즉 ‘안씨가 금품을 받고 미국 CIA에 우리의 기밀을 유출한 것이 아닌가’ ‘우리 정부는 안씨와 접촉한 미 CIA 요원에 대해 추방 조치를 내려야 한다’ 등등 정제되지 않은 의견이 분출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단순 정보는 넘어갔는지 몰라도 기밀은 넘어가지 않았다” “윤씨가 금품에 매수된 것은 아니다” “미 CIA 요원에 대해 추방 조치를 내리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등의 의견을 보였다.



    그렇다면 안과장 해임 사건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속사정을 살펴보려면 올 3월13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3월13일 전후만 해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5월 서울 답방설이 무성했다. 그런데 바로 이날 일본에서 발행된 요미우리(讀賣) 신문이 ‘남북한은 5월로 예상되는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맞춰 평화선언을 발표하기로 합의하고, 그동안 수차례 선언 초안을 교환했다’고 보도했다. 요미우리는 이러한 정보를 제공한 뉴스원(源)을 미 행정부 관리로 밝히며, 남북평화선언에는 남북한군 감군 등을 포함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햇볕정책 무슨 비밀 들켰기에…
    남북평화선언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처하자”고 주장해 온 북한의 주장과 맥을 같이하는 측면이 있다. 평화선언은 평화협정보다 구속력이 훨씬 약하지만, 평화선언을 계기로 남북한이 평화협정 체결로 치닫는다면 한국전쟁과 정전협정 당사자 자격으로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시켜 온 미국의 위상이 흔들린다. 평화협정을 체결할 경우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때문에 요미우리는 남한 정부가 평화선언문 작성과 관련해 미국 행정부와도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요미우리의 보도는 국정원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남북평화선언문 문제는 사실 여부를 떠나 지극히 예민한 사항이다. 국정원은 감찰실을 동원해 누설자 색출에 나섰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그 후 감찰실은 감찰 범위를 넓혀 미국 정보기관원을 만나는 인물을 추적했다. 여기에 걸려든 사람이 안과장이라는 것.

    안과장은 행시(28회) 출신으로 해운항만청과 통일부에 잠깐 근무하다 안기부로 옮겼으며 안기부에서는 승승장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시 출신이라 해도 만 40의 나이에 국정원 과장(3급 부이사관)에 오르는 것은 매우 어려운데, 그는 그 나이에 요직 중의 요직인 종합과장 자리를 차지했다.

    안과장과 접촉한 미 CIA의 윤씨는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공군 복무를 마친 뒤 미국에 건너가 미국 시민권자가 된 이민 1세대. CIA에 입사한 그는 98년 3월부터 1등 서기관 타이틀로 주한 미 대사관에서 근무하였다. CIA의 화이트 요원으로 서울 근무를 시작한 것이다. 99년 안과장은 CIA 본부 등을 둘러보는 미국 단기연수에 참여했는데, 이때 안과장 팀을 안내한 이가 바로 윤씨였다. 이로 인해 두 사람은 가까워졌고, 연수가 끝난 후에도 자주 만났다. 이처럼 두 사람이 교분을 나누는 와중에 요미우리의 특종보도가 터진 것이다.

    국정원 감찰실은 안과장이 윤씨를 만나는 장면을 사진 촬영함으로써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확보하고, 이를 토대로 안과장을 해임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8월4일 CIA는 이 사건이 한-미 갈등으로 비화하는 것을 피하려는 듯 한국 근무 시한이 끝나가는 윤씨를 미국으로 불러들였다.

    이번 사건은 96년 9월25일 미국에서 일어난 로버트 김(한국명 金采坤, 62) 사건을 연상시킨다. 이민 1세대로 미국 시민권자인 로버트 김씨는 미 해군정보국(ONI)에서 컴퓨터 전문가로 20여 년 근무하던 중, 주미 한국 해군무관 백동일(지난 1월 전역) 대령을 만나, 미 해군 기밀이 수록된 자료를 건네주었다가 FBI의 감시망에 걸렸다. FBI는 로버트 김이 백대령에게 유출한 기밀 문건을 확보했지만, 안과장 사건에는 이러한 물증이 없다는 차이가 있다.

    로버트 김 사건이 백대령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겼듯, 안과장 사건도 윤씨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된 것 같다. 때문에 윤씨는 안과장 구명을 위해 나름대로 뛰었는데, 이 과정에서 안과장 파면 사실이 야당 정보위위원들에게 알려졌다. 야당 정보위측이 이같은 사실을 기자들에게 흘림으로써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번 사건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국정원 원장까지 나서서 사건이 한-미간 마찰로 확대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햇볕정책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클린턴 정부 때까지만 해도 북한 핵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미사일은 미국, 재래식 무기는 한국이 협상한다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그런데 지난 2월 출범한 부시 행정부는 6월6일 북한과의 협상 재개를 선언하며 ‘미국은 북한의 재래식 무기 분야를 놓고 북한과 협상하겠다’고 밝혀 김대중 정부를 당혹스럽게 했다. 지난 5월29일 하와이에서 열린 대북정책조정그룹회의(TCOG)에서도 미국은 북한의 재래식 무기 분야를 북한과의 협상 의제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다.

    TCOG에 참여한 한 소식통은 “미국이 북한의 재래식 무기 분야도 미-북간 협상 의제로 삼겠다고 한 것은 김대중 정부를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 변화에 놀란 한국은 지난 6월21일 김동신 국방장관을 미국에 보내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에게서 북한의 재래식 무기는 한국과 미국이 모두 북한과 협상한다는 약속을 받고 돌아왔다. 이처럼 대북문제를 둘러싸고 한-미간 이견이 있는 상황에서 안과장 사건이 발생하자 국정원은 미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사건의 확대를 막으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한 소식통은 “요미우리 보도에 대해 국정원이 예민하게 반응한 것은 남북문제에 대해 국정원이 미국에 뭔가 숨겨야 할 것이 생겼다는 뜻이 된다. 반대로 미국은 한국이 어떤 의도를 갖고 햇볕정책을 추진하는지 들여다봐야 할 필요가 생겼다. 이러한 긴장 관계 속에서 안과장 해임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을 긴장시켜서는 안 될 처지다 보니, 이 사건을 로버트 김 사건 수준으로 확대시키지 못하였다.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불확실한 지금 햇볕정책은 북한을 대화 무대로 나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한-미 관계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북한의 옷을 벗기는 햇볕이 아니라 동맹관계만 녹이는 햇볕이 될까 우려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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