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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도올 김용옥’과 문화권력

쪽박을 깨라! 그러면 바뀐다

  • < 조용준 기자abraxas@donga.com >

쪽박을 깨라! 그러면 바뀐다

쪽박을 깨라! 그러면 바뀐다
도올은 공자 강론-고은은 미당 비판 통해 가치 전복 시도… ‘도발적 해석’으로 사유의 새 지평 추구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부모를 만나거든 그들도 함께 베어라. 그 때에야 너는 절대로서 진정한 자유를 구가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와 선(禪)에 대해 조금의 관심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위와 같은 ‘돈오’(頓悟)의 극단적인 포효를 한 번쯤은 들었을 것이다. 선의 한 방법론으로서의 ‘돈오’는 죽어가는 자에게 쓰는 ‘용천혈의 대침’ 같은 찰나의 깨달음을 말하는 것으로, 흔히 뼈를 깎는 자기 훈련을 통한 깨달음인 점수(漸修)의 보완 개념으로 말해진다. ‘돈오’는 달마 이후 몇 대에 걸쳐 힘을 얻었고, 임제(臨濟)와 운문(雲門)은 ‘돈오’의 극이었다. 그리하여 운문은 “부처란 다름 아닌 똥 막대기”라면서 위와 같은 임제의 포효를 계승한다. ‘돈오적 발전’의 최후지경이다.

그러나 과거의 체제와 권위를 깨거나 극복함으로써 새로운 깨달음에 다가가는 ‘돈오’의 전통과 그것이 빚어내는 풍경은 현대에도 여전하다. 이를테면 도올 김용옥의 공자 강론과 고은 시인의 미당(未堂) 서정주 비판은 한국 인문학에서의 ‘돈오적 풍경’이자 ‘아버지 죽이기’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은 아닐까.

“나에게는 시무(詩巫)가 있어 여느 때는 멍청해 있다가 번개 쳐 무당 기운을 받으면 느닷없이 작두날 딛고 모진 춤을 추어야 하는지 모른다.” 시인 고은이 최근 신작 시집 ‘순간의 꽃’(문학동네 펴냄)을 내면서 말하는 저 시의 무당 기운은 ‘돈오적 전통’과 한치의 어긋남도 없다.



그런 고은은 ‘창작과비평’ 여름호에서 육친적인 정을 나눈 미당에 대해 “세상에 대한 수치가 결여된 체질” “역사의식으로서의 자아가 가능하지 않았다” “상대가 일제든 광복 이후의 집권세력이든 권력의 편에 존재함으로써 시인의 특장인 음풍농월의 가락 속에 일신의 안보를 유지했다”고 칼날을 꺼내들었다. 초기시 ‘자화상’에 대해서는 미당의 태생적인 노예 근성을 환기시키고, ‘귀촉도’ 역시 “황당무계한 작품”일 뿐만 아니라 “그 시집 안에 적지 않은 시들이 점액질의 언어기교밖에는 볼품이 없어 보인다”고 혹평한다.

고은과 미당의 관계는 어떠했는가. “나는 70년대 이전까지의 미당을 시인부락의 추장으로 여겼고 그것을 좀더 웅변으로 장식함으로써 그를 ‘또 하나의 정부’라 말한 적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고향’에서 떠나야 할 가차없는 자기 변모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와 나 사이는 차츰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서로 원경(遠景)이 되었다. 유신 말기를 지나 80년대에 들어서자마자 내 안의 어느 내장에도 미당은 들어 있지 않았다.”

쪽박을 깨라! 그러면 바뀐다
물론 고은의 미당 비판은 문단에 적지 않은 파장을 낳았고, 이제는 고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간에 대한 이해도 없고 시에 대한 이해도 없을 뿐만 아니라, 욕설보다 더한 악담으로 미당을 터무니없이 폄하하고 자기를 세우려는 비열함이 가득하다”(평론가 이남호) “담론이 못 되는 도청도설(塗聽塗說)… 들어야 할 붓과 꺾어야 할 붓이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시인 이근배) 등.

어찌 되었든 이제 고은은 한때 자신의 조사(祖師)를 베었다. 그의 말처럼 미당은 “추억의 대상이기도 하고 단절의 대상이기도” 한 것. 논란이야 없을 수 없지만 고은은 자신의 마음속에 늘 존재한 부처를 베어냄으로써 또 다른 지평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도올 김용옥의 논어 강론도 그러하다. 도올은 단언한다. “나는 ‘論語’를 禪이라고 생각한다.” 도올의 생각은 이렇게 이어진다. “‘논어’는 시작도 끝도 없는 경구일 뿐이다. 그것은 계발의 단서일 뿐이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타인의 계발을 위하여 툭툭 던졌다. …그것은 무한한 논리의 시작이요, 끝이다. ‘논어’는 선사들의 말장난보다도 더 본질적으로, 더 일상적으로 인간을 대각으로 인도하는 禪語인 것이다… ‘논어’는 그냥 읽으면 아니 된다. 사도 바울 선생의 말씀대로 항상 마음이 새로워지는 깨달음의 체험이 있어야 한다. ‘논어’는 트랜스포메이션인 것이다… ‘논어’는 禪的인 大覺인 것이다.”

기실 논어를 논하는 도올의 태도는 그의 표현대로 재즈적이다. 하나의 주제를 수많은 변주(變奏)로 표현하고 해석하는 재즈처럼 기존의 화석화하고 박제화한 해석은 이리 뒤집어지고 저리 뒤집어진다. 어떤 때에는 깨달음을 위해 용맹정진의 파천황으로 치닫는 선사들의 파격이나 래디컬리즘을 보는 듯하다. 헤겔 철학보다 자신의 똥철학이 더 위대하며, 막스 베버를 한마디로 “개 같은 소리”라고 일갈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운문의 ‘돈오’다. “좌충우돌이 꼴사납다”거나 “엔터테이너(딴따라) 같다”는 도올에 대한 인상 비판의 상당수는 이런 ‘겉 모습’에서 나온다. 급기야 이런 인상 비판은 ‘소인배론’까지 낳았다.

그러나 도올이 좋아한다는 정자(程子)를 보자. ‘논어를 읽으매, 어떤 자는 읽고 나서도 전혀 아무 일이 없던 것과도 같다. 어떤 자는 읽고 나서 그 중의 한두 구절을 깨닫고 기뻐한다. 또 어떤 자는 읽고 나서 참으로 배움을 즐기는 경지에 오르는 자도 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읽고 나서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춤을 추고 기뻐 발을 구르는 자도 있다.’ 그리하여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手之舞之足之蹈之. 이것은 禪의 엑스터시오, 깨달음의 환희다. 이제 우리는 지적 희열에로의 기나긴 여행을 시작하자! 손으로 춤을 추고 기뻐 발을 동동 구르자!” 논어 강의실이 마치 록가수의 ‘하드록 카페’처럼 자유의지의 발산이 충만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논어에 대한 도올의 생각은 “논어는 트랜스포메이션”이라는 정의에 모두 담긴 듯하다. 논어는 결코 고착된 정형(定形)이 아니라는 것. 부처에 대한 대오각성이 오직 하나만의 정형이 아니듯, 사람마다 부처의 모습이 각기 다를 수 있다는 것. 따라서 도올은 일찍이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번역은 해석학적 행위(hermeneutic acts)다”고 누누이 강조하면서, 역사에 대한 카를 포퍼의 시선을 인용하였다. ‘일어난 사실 그대로의 역사라는 것은 없다. 역사에 대한 인간의 해석만이 존재하며 그 어느 해석도 최종적인 것이란 없다. 모든 세대가 자기의 역사를 자기식으로 꾸릴 수 있는 당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함재봉 교수(연세대)가 보는 도올이 꿈꾸는 인문주의 사회는 “다양한 신념과 신앙, 해석을 인정하고 동서양의 고전에 대한 ‘완전해석’을 바탕으로 엄밀한 토론과 논쟁 속에서 각종 교조주의를 경계하는 열린사회”다. 바로 이런 차원에서 도올 자신이 TV 강론을 돌연 중단하며 남긴 말 가운데 ‘문화권력’의 의미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저를 못 견디게 만드는 중요한 사실은 저 자신이 제 강의로 인하여 권력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권력구조 속에서 도올 김용옥이라는 인간이 소외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도올에 대한 학계의 주된 비판의 하나는 그가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문화권력’을 얻으려 노자나 공자를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김진석 교수(인하대)는 ‘사회비평’ 봄호에서 “고전의 정치적 남용이 특유의 매체중독증과 맞물려 권력지향적 양상까지 낳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도올은 위의 글에서처럼 자신의 강의에 대한 폭넓은 공감(그것이 대중적이라고 하더라도)이 권위와 권력을 얻는다면 그것이 곧 소외를 부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보인다. 그것은 바로 온고지신(溫故知新)에 대한 그의 해석과도 일치한다. 도올은 ‘도올 논어 2’에서 “온고지신의 악센트는 단연 신(新)에 놓인다”고 단언하며 “이는 ‘새 것의 창조’로 해석해야 하고, 이를 유교의 복고주의 수단으로 인용하는 해석이야말로 공자의 삶을 배반하는 어리석음”이라 주장한다. 새 것은 오래된 것에 있으며, 옛 것을 부수면 새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공자 강의를 통해 도올은 다산(茶山)도 무너뜨리고, 주자(朱子)도 쓰러뜨렸는지 모른다. 심지어 공자와 논어 자체를 베고 죽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런 ‘벰’과 ‘죽임’을 통해 공자와 논어는 다시 살아난다. 다시 생명력을 얻는다. 군자는 정말 ‘그릇처럼 국한되지 않는다’(君子不器). 니체와 하이데거도 “서양철학은 끝났다”고 외쳤고, 자크 라캉은 프로이트를 수없이 죽였지만 다양한 지적 흐름이 흘러드는 저수지이자 다시 흘러나오는 유수지가 되었다. 해체철학의 선봉 자크 데리다 역시 플라톤과 루소를 수없이 베었지만 사유의 지평을 거뜬하게 확장하고 재구축했다. 서양 철학에도 ‘아비 죽이기’의 전통은 튼실하다.

장 보드리야르는 말한다. “사상은 재난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도발이어야 한다. 죽음과 부정성을 말살하려는 현실을 뒤집어야 한다. 그 전복은 늘 인간을 배려하며 선과 악,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역전을 찾아야 한다.” 가치의 전복(顚覆) 없는 세상은 참으로 심심할 것이다.



주간동아 2001.06.07 287호 (p62~63)

< 조용준 기자abraxas@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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