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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은 지금 개 도둑과 전쟁중

최근 5개월 새 사육농가 피해 속출… 특수올가미·수면제 이용해 순식간 싹쓸이

  • < 최영철 기자ftdog@donga.com >

농촌은 지금 개 도둑과 전쟁중

농촌은 지금 개 도둑과 전쟁중
요즘 충북 청원군의 개 사육농가들은 밤이 두렵다. 이미 수백 마리의 개들이 밤만 지나면 소리도 없이 사라지기 시작한 지도 벌써 5개월째. 개 도둑과의 전쟁이 계속되면서 농가들은 하나둘씩 자포자기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청원군 남이면 사동리 유모씨(42)는 지난 5월4일 새벽 자식처럼 길러온 개 70마리를 감쪽같이 도난당한 후 허탈한 심경으로 일손을 놓았다. 종견과 모견(새끼 낳는 개) 등 70만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개들에서 고깃개까지, 피해액은 모두 2500만원에 달했다. 인근 지역의 개 도난 피해를 익히 들어오던 터라 도난 당일에도 오전 1시까지 자체 순찰을 돌았지만 개 도둑은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본 듯 순찰이 끝난 새벽시간 동안 순식간에 일을 해치웠다.

하지만 유씨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해마다 복날을 전후해 신문 가십난에서나 간간이 볼 수 있던 개 도둑이 올 들어서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전국의 개 사육장을 ‘싹쓸이’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 동네를 헤집고 다니며 ‘백구’를 낚아채는 아마추어들이 아니라 즉석 도축시설을 갖춘 특수설계 차량까지 몰고 다니는 전문 절도단이 설치지만 이들을 잡았다는 소식은 감감하다. 경찰이 개청 이래 처음으로 ‘개 도둑 비상 경계령’을 전국에 내릴 정도면 이미 상황이 갈 데까지 갔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청원군은 이 가운데서도 사태가 가장 심각한 지역의 하나. 올 들어 개를 집단적으로 도둑맞은 개 전문 사육농가만 10여 곳에 달한다. 유씨의 사례 외에도 강내면 사인 2구의 황모씨(36)가 지난 2월20일 80마리의 개를 도난당한 것을 포함해 강내면에서만 도합 5곳, 가덕면에서도 3곳의 개 전문 사육농가가 피해를 입었다. 피해액도 대부분 수천만원대. 남이면 비룡리 이모씨(52)는 지난 3월14일 무려 4000만원대(100마리)의 개를 도난 당했다. 지난 97년 버스 운전사 생활을 그만두고 3년 동안 애지중지 사육한 개들이었다. 개들을 몽땅 털린 그는 농약 운반 차량을 품앗이로 돌며 근근이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개 도둑은 청원군 인근 지역인 충북 옥천지역과 군대 ‘짠밥’이 많아 개 사육 농가가 밀집한 논산 등 충청권뿐만 아니라 영양`-`안동 지역 등 경북 북부 오지 마을까지 ‘마수’를 뻗쳤다. 지난 3월21일 영양군에서는 하루 밤새 영양읍 무창리 오모씨(50) 농가 축사에 키우던 개 6마리가 없어진 것을 비롯해 인근 화천리 김모씨(59), 하원리 박모씨(74), 감천리 김모씨(53) 등 모두 4가구의 개 50여 마리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트럭에 도축·냉장 시설도 구비

역시 개 절도단의 규모 면에서는 서울 지역에 개고기를 공급하는 수도권의 피해가 가장 크다. 소비량이 많은 만큼 개 사육농가도 많기 때문이다. 지난 3월30일 경기도 포천경찰서에서 체포한 개 절도단의 경우 3월 한달 동안 남양주와 포천, 연천, 강원도 철원 일대 농가에서 304 마리의 개를 훔쳤다. 밝혀진 피해자만 10여 명에 피해액은 1억200만원. 하지만 경찰은 그들이 절도에 사용한 트럭에 개 도축시설과 냉장실이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잡힌 즉시 도살되어 팔린 개가 1000여 마리에 이를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개 도둑이 기승을 부리면서 개 도둑의 절도 방법도 더욱 지능적이고 대담해지고 있다. 종전의 개 도둑이 소시지나 햄, 닭고기로 유인하는 고전적 수법을 사용한 데 반해 요즘은 서부영화의 카우보이들이 쓰는 특수 매듭 올가미에서 수면제, 마취제까지 동원하고 있다. 포천 지역에서 붙잡힌 절도단이 개발한 개 잡이 올가미의 경우 개 목에 일단 올가미를 씌우면 개가 움직일수록 매듭이 조여들어 숨이 막힌 개가 꼼짝없이 따라오도록 제작되었고, 청원군 지역에는 수면제를 물에 섞어 바닥에 뿌리는 방법을 썼다. 땅에 묻은 물을 무조건 핥는 개의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농촌은 지금 개 도둑과 전쟁중
지난 4월12일 개 20마리를 도난당한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 이모씨(47)의 피해 사례는 개 도둑들이 이제 남의 이목 같은 것은 아예 염두에 두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개 도둑들은 이씨의 사육장 입구가 외길이고, 이마저 차량으로 막혀 있자 축사 뒤편 중앙고속도로 갓길에 차량을 세우고 1km나 되는 과수원을 통과해 개들을 고속도로까지 끌고 간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씨는 “과수원에 개들을 유인한 소시지와 햄이 떨어져 있었다”며 “설마 차량 운행이 많은 고속도로에서까지 이런 일을 벌일지는 상상도 못했다”고 놀라워했다. 경기도 포천 경찰서 이영만 형사계장은 “개들이 개 도축업자나 개장사가 다가오면 몸에 밴 냄새 때문에 겁을 먹고 꼬리를 내리거나 제대로 짖지도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짖는다 해도 대부분의 축사가 인가에서 떨어져 있는데다 사육농가와 분리된 곳이 많아 도난 사실을 알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왜 유독 올 들어 개 도둑이 극성을 부리는 걸까. 이는 소 도둑이 지난해부터 완전히 모습을 감춘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충북 청원군의 한 이장은 이를 한마디로 “소 도둑이 모두 개 도둑이 되었다”고 잘라 말했다. 시쳇말로 개가 소보다 돈이 된다는 이야기다. 지난 99년 이전까지 청원군 지역은 각 언론이 보도한 소 도둑 극성 기사의 피해 사례로 등장한 단골 지역. 지난해 3월의 구제역 파동과 9월의 유럽지역 광우병 파동으로 쇠고기 가격이 폭락하고, 소비가 급감하면서 소 도둑이 사라진 것은 물론, 이 지역의 소 축사는 모두 개 축사로 바뀌었다. 개 사육농가 황모씨(52)는 “지난 99년 봄 400g 1근에 2000~3000원에 출하되던 개고기 값이 지난해 복날을 전후해 6000~7000원까지 오른 후, 비수기인 지난해 겨울을 지나 올 봄까지도 가격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데 소 키울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복날 한철 먹는 보신탕이 구제역 파동 이후 계절에 관계없는 사철탕으로 자리잡을 정도로 수요가 폭증하였지만 공급량은 여전히 모자라 올해 복날에는 8000~ 9000원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며 “올 들어 개 도둑이 설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월드컵과 아시안 게임이 있는 내년에는 ‘보신탕 혐오식품 논란’의 재연으로 개고기 수요가 급감할 것이기 때문에 올해가 개고기 장사의 ‘대목’이라는 것.

축산물 유통을 책임진 농협도 개고기의 쇠고기 대체효과를 부정하지 않는다. “개고기가 법적으로는 축산물에 들지 못하지만 분명 쇠고기와 돼지고기의 소비 대체효과를 내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하지만 개는 아직 축산물로 법의 통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도축과 유통이 비위생적이고 단속대상이 되지 않는다”(축산유통과 김성호씨). 농협의 통계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올 1/4분기 한우 판매량은 4만3500t으로 지난해 1/4분기 5만4400t보다 20% 가량 급감한 반면, 지난해 구제역과 광우병 파동을 거치며 개 사육 수는 지난 99년 186만 두에서 2000년 204만 두로 10% 늘어났다.

“소는 한 마리만 없어져도 난리가 나는 경찰이 개 한두 마리 없어지는 건 별 대수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한 마리당 30만원에서 40만원을 호가하는 데 말입니다.” 충북 청원군의 이모씨(58)는 개 사육농가가 전국적으로 8만 가구에 이르는데 개를 축산물로 인정하지 않는 정부를 원망한다. 개가 축산물로 인정받지 못하니 수사도 미진하고 경찰이 개 도난사고를 쉬쉬하기에 급급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부 차원의 대책이 없는 한 올 여름 ‘견공’(犬公)들과 그 주인들의 수난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주간동아 2001.06.07 287호 (p54~55)

< 최영철 기자ftdog@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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