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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송수권의 풍류 맛기행 | 제주 꿩탕

담백한 맛… 꿩 한 마리 풀코스

  • 시인 송수권

담백한 맛… 꿩 한 마리 풀코스

담백한 맛… 꿩 한 마리 풀코스
제주에는 1만8000 신(神)이 산다. 부락마다 신이 살고 집집마다 신이 산다. 심지어는 뱀신앙까지 있다. ‘꿩메밀 손칼국수’로 유명한 ‘한라성’(漢拏城·064-732-9041)은 돈내코(서귀포시 상효동)에 있는데 거길 가려면 표선면의 토산리를 지나게 된다. 토산리는 집집마다 뒷곁에 뱀집이 있었고 처녀가 시집을 가도 뱀신이 따라온다는 속설이 은근슬쩍 전해오는 동네다.

제주는 바람 많기로 유명한 곳. 영등달은 바람이 많아 영등할미가 딸을 데리고 오는 달이다. 부뚝마다 조왕신이 살고 영등할미 강신(降神)하는 날은 산에서 붉은 흙을 따오고 댓가지에 삼색 헝겊을 매단 기를 달기도 한다. 또 영등 큰 굿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는 우리나라 어촌마을의 일반적 풍습이기도 하다. 집집이 수수엿을 고아 치성 드리면 영등할미가 옥황상제께 올라가 이 세상 일 고해 바칠 때 입이 오그라 붙어 고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주는 바람이 많은 대신 물이 귀하다. 비가 와도 다공질의 현무암(화산석)으로 금방 흘러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신(집추녀) 물과 참받이 물을 받아 쓰는 ㅈ·냥정신도 볼 수 있다. 참받이물은 때죽나무에서 흐르는 물이 1급수인데 몇 년이 가도 맑아지고 썩지 않는다. 제주를 여행할 때마다 늘 느끼는 감정인데, ‘동의보감’에는 때죽나무 진딧물집을 화상에 붙이면 즉효라고 했다. 이는 병들지 않게 하는 무슨 특효성분이 때죽나무에 있는 듯싶어 흥미롭다.

그러나 한라산에도 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곳이 있다. 돈내코다. 정방이나 천제연 폭포도 물이 마르는데 돈내코는 물이 마르지 않아 백중날 이 계곡의 원앙폭포에서 물을 맞으면 신경통이 낫는다는 풍습이 예로부터 있어 왔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여름 휴양지며 야영장, 청소년 시설, 유스호스텔, 피크닉장, 야외공연장 등 시민공원으로 조성되고 있다.

담백한 맛… 꿩 한 마리 풀코스
돈내코는 멧돼지나 꿩, 노루 등이 내려와 물 마시는 코지(길목)로서 옛날에는 사냥터로도 악명이 높았던 곳이다. 그 입구에 한라성(한승희·35)이 있다. 이름과 달리 으리으리한 성(城)이 아니라 납작집으로 꿩 사육장이 겨우 딸려 있다. 산속의 죽죽녀(竹竹女) 같은 미인 한승희씨가 조리한 손칼메밀국수로 떠낸 꿩탕이 단연 일미다. 무채와 미나리가 끓는 동안 생치회(꿩 앞가슴 살)를 들고 그 다음 맛보는 연한 살코기의 샤브샤브야말로 그 담백한 맛이 또한 일품이다. 꿩 뼈로 끓이는 ㅁ·밀국수도 담백한 맛으로는 으뜸이다.



‘꿩 대신 닭’이란 말도 있지만 원래 꿩고기는 담백한 맛으로 닭고기보다는 우리 몸 안에 청기(淸氣)를 불어넣어 정신을 쇄락하게 하는 게 특징이다. 돈내코의 맑은 물소리에는 역시 탁기가 아닌 꿩고기가 합을 이루는 것은 상식이다. 떡국에 꿩고기를 넣었던 조상의 슬기도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분위기가 된다. 꿩만두가 바로 그것이다.

또 돈내코는 식물분포가 다양하고 한란의 자생지로도 유명하다. 공자가 말한 난향유곡(蘭香幽谷)이란 군자나 선비의 풍모와 인격을 이름인데 군자나 선비가 취할 음식도 따로 있음이 분명하다. 율곡 이이가 평생 쇠고기를 먹지 않았음도, 이 맑은 음식의 청기(淸氣)만을 취하고 싶었던 까닭이리라. 보리밥(냉성)에다 풋고추(열성), 그리고 된장(콩담백)에다 물만밥이면 체온의 자양분은 평성(平性)만을 얻는 것으로도 우리의 기와 성품에 충분하다.

그런데도 현대인은 왜 본성(本性)이 아닌 동물사료를 먹인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을 염려하는 것일까. 본성을 뒤집을 때는 천하 그 어떤 공물도 살아남지 못한다. 이것을 논어에선 유물유칙(有物有則)이라 한다. 이는 곧 천기를 누설하는 일이다. 그러니 몸도 마음도 타고난 성품을 누려 영양을 섭취하라고 식경(食經)은 가르친다. 이것이 곧 인지식성(人之食性)인 까닭이다.

소암(素菴) 현중화(玄中和)가 이 난향유곡을 찾고 꿩 물을 즐겼음도 알 만하다. 제주 음식에도 정구불식(正拘不食), 이마불식(二馬不食)이란 금기가 있다. 정월에 개고기를 안 먹고 이월에 말고기를 안 먹는다는 뜻이다. 암꿩은 산란기에 맛있다. 그러나 조신하라. 몸을 상할까 두렵다. 천하의 본성으로 음식의 맛과 멋을 따르는 것이 풍류다.





주간동아 2001.04.05 278호 (p98~98)

시인 송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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