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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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민주화의 시험대 로리 베린슨 재판

96년 반정부조직 연루 혐의로 무기징역… 당시 정치적 상황 탓 공정성 의심 ‘재심 기회’

  •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 imsphoto@yahoo.com >

    입력2005-02-22 14: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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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루 민주화의 시험대 로리 베린슨 재판
    26세의 미국 여성 로리 베린슨은 군사법정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의회를 점령해 인질극을 꾀하려 한 무장조직에 연루된 혐의 때문이었다. 변호사의 반대신문도 거부당했고, 재판관들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무장조직의 만일에 있을 보복을 두려워 한 이른바 ‘얼굴 없는 법정’이었다. 이즈음 미국 법정에서 벌어진 얘기가 아니다. 지난 1996년 1월 페루에서 벌어진 얘기다.

    뉴욕 출신으로 M.I.T 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했던 로리가 당시 ‘좌익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낙인찍힌 ‘투팍 아마루 혁명운동’(MRTA) 요원들을 도운 혐의다. 그 재판을 둘러싼 국제적인 압력으로 지난 3월20일 다시 재판이 열렸다. 그녀가 풀려날 가능성은 크지만, 낙관하기는 이르다. 로리 재판은 후지모리 퇴진 이후 페루 민주화의 시험대로 보인다.

    ‘얼굴없는 법정’에 선 26세의 미녀

    로리가 관련을 맺었다는 투팍 아마루 혁명운동(MRTA)은 지난 96년 12월 페루의 수도인 리마 시내의 일본대사관을 점거해 그곳에서 일본왕 생일 축하연 참석자들을 인질로 삼고 무려 126일 동안 페루 보안군과 대치한 적이 있다. 감옥에 갇혀 있는 동료들의 석방을 요구하던 이들은 후지모리의 강경 진압으로 14명 모두가 현장에서 사살됐다. 14명의 MRTA 무장요원들이 일본대사관에 억류된 인질 71명과 맞바꾸자고 제시한 434명의 명단에는 로리 베린슨도 들어 있었다. 페루 특수부대의 기습이 있기까지 여러 달을 끈 협상 끝에 최종 제시된 20명의 명단에도 그녀의 이름이 보였다.

    당시 후지모리 정권은 두 개의 반정부 무장조직인 ‘빛나는 길’(Shining Path)과 MRTA의 잔여조직원들을 체포하느라 혈안이 돼 있었다. 그런 분위기 아래서 진행된 로리 베린슨 재판은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었다. 무기징역을 받은 로리는 반정부 무장조직원들을 수용하는 안데스 산맥의 야나마요 감옥에서 젊음을 보내야 했다.



    실낱 같은 희망밖에 없었던 그녀에게 지난 3월20일 서광이 비추었다. 재심이 열린 것이다. 로리에 대한 재심은 그녀 부모의 적극적인 구명활동과 미국의 압력, 페루 정치환경의 변화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이번에는 군사법정이 아니라 일반법정이다. 그러나 로리의 부모는 정권교체는 되었지만 사법부의 면모가 거의 그대로인 채 치러지는 재판을 걱정하고 있다.

    페루 사법부는 후지모리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을 얻어왔다. 선관위에 소속된 대법관 3명은 후지모리 정권의 2인자이자 비밀정보기관 총책인 몬테시노스와 만나 지난해 5월 후지모리의 3선을 가져온 말썽 많았던 대선 결과를 선관위가 잘 처리해준다는 조건으로 봉투를 받아 챙기는 모습이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드러나 충격을 준 바 있다.

    기소내용에 따르면, 로리 베린슨은 MRTA가 인질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자를 사칭하고 페루 의회 안에 들어가 보안체계를 미리 살펴보았다는 것이다. 로리는 MRTA를 위해 자신의 이름으로 집을 빌려 안전가옥으로 쓰도록 한 혐의도 받고 있다. 현재 복역중인 MRTA 요원들 가운데는 그녀가 MRTA의 페루 의회 점거모의를 전혀 몰랐다고 증언하는 이도 있지만, 검찰이 내세우는 MRTA 증인은 그녀가 여러 모로 MRTA와 깊은 관계를 맺었다고 말하고 있다. 95년 11월 그녀의 집을 덮친 페루 수사요원들은 8000점 가량의 무기와 3000개의 소형 다이너마이트를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그녀는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체포됐다.

    리마시 동쪽 루리간초에 있는 산 후안 감옥에 설치된 법정에 선 로리 베린슨은 “나는 아무런 죄가 없다”고 주장했다. 담당검사는 “로리가 MRTA 멤버는 아닐지라도 그들에게 협력해 반테러법을 위반했다”며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페루 민주화의 시험대 로리 베린슨 재판
    필자가 지난해 여름 후지모리의 무리한 3선 연임에서 비롯된 페루의 정치위기를 취재하러 갔을 때 놀랐던 것은 극심한 빈부 격차였다. 5인 가족 기준으로 월소득 300달러가 못미치는 빈곤층이 2700만 인구의 절반을 넘는다. 리마 시내 부자들은 예전에 서울의 동빙고동 같은 호화주택에 살면서 마이애미 해변으로 휴가를 떠나는 반면, 가난한 이들은 변두리 판자촌에서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간다. 이들 대부분이 농사를 짓다가 지주의 횡포에 견디다 못해 막연한 희망을 품고 도시로 옮겨온 인디오(총인구의 45%)와 메스티소(인디오와 백인의 혼혈로 인구의 37%)다. 특히 리마시 외곽 비타르테 지역은 온통 판잣집들로 들어차 있었다. 페루의 좌익 게릴라들은 바로 이런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총을 들고 나섰다는 주장을 펴왔다.

    로리 베린슨은 80년대 후반 M.I.T 대학 재학 시절부터 중남미 좌익운동에 관심을 가져온 것으로 알려진다. 그녀는 미국의 엘살바도르 사태 개입에 비판적이었다. 그래서 인권-종교단체 등 비정부기구(NGO)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88년부터 엘살바도르-나카라과에서 가난한 현지주민들을 돕고 실종자들을 찾는 일, 그리고 정치망명자들을 도와주는 일을 거들었다. 92년 엘살바도르에 휴전협정이 맺어진 이후로도 그곳에 머물던 로리가 페루로 간 것은 94년이었다. 그녀는 진보적인 잡지인 ‘Modern Times’ 와 ‘Third World Viewpoint’에 페루의 빈민에 관한 기사를 보내곤 했다.

    로리가 체포될 당시 페루 텔레비전은 “국민의 절대다수가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상황을 걱정하는 것이 범죄라면, 나는 그 벌을 기꺼이 받겠다. 페루에는 양민들을 죽이는 제도화된 폭력이 있고, 어린이들을 굶주려 죽게 만들고 있다”고 격앙된 얼굴로 주먹을 쥐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을 방영한 바 있다. 안데스 산맥 자락에 있는 테러범죄자 수용소인 야나마요 감옥으로 이송된 로리는 처음 3년 동안 고산병으로 건강이 나빠진 뒤 저지대에 있는 소카바야 감옥으로 옮겨졌다.

    그녀의 부모는 “5년 전 딸의 재판이 정치적으로 이뤄졌고, 따라서 로리는 희생양”이라고 주장한다. 둘 다 뉴욕시립대 교수였던 로리의 부모는 딸의 구명운동에 전념하기 위해 학교를 사직했다. 그들은 전 미국 검찰총장 람세이 클라크를 법률고문으로 위촉하고 페루 군사법정은 국제적으로 인정된 공정한 재판의 룰과는 거리가 멀다는 주장을 펴면서 활발한 구명운동을 벌여왔다.

    로리에게 무기징역이란 중형이 선고된 뒤 클린턴 행정부는 당시 후지모리 대통령에게 재심을 명령해주도록 압력을 가했으나, 후지모리는 “이것은 페루의 주권에 관한 문제”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대선에서 후지모리와 맞서 이른바 인디언 바람을 일으켰던 알레한드로 톨레도도 유세과정에서 로리 베린슨의 석방문제를 거론했다. 당선되면 로리 사건을 재심하도록 하겠다는 얘기였다. 그는 오는 4월8일로 예정된 대선 레이스의 선두주자다.

    지난 ?선거를 통해 집권한 후지모리는 2대 국정과제를 선언했다. 하나는 천문학적인 인플레를 잡아 경제안정을 이루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좌익 무장조직들을 검거해 치안을 확보한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는 둘 다 성공했다. 인플레를 잡았고 그가 테러범이라 부르던 좌익 게릴라들을 잡아들였다. 가혹한 반테러법 아래 구성된 특별군사법정은 테러범들에게 중형을 선고하기 일쑤였다. 이 바람에 단순히 편의를 제공한 사람들도 좌익 동조자로 몰려 5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후지모리 집권 말기에 구성된 한 특별위원회는 재심을 통해 지금껏 1000명 가량의 죄수들을 풀어주었으나, 로리는 심사대상에도 끼지 못했다.

    4월8일 대선을 코앞에 둔 페루는 후지모리 정권 당시 2인자이자 정보총책이었던 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가 남긴 비디오테이프 때문에 어수선한 상황이다. 이 테이프 속에는 98년 1월 몬테시노스가 외무장관 에두아르도 페러와 만나 로리 베린슨 재판을 다시 열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장면도 나온다. 군사재판에서 중형을 선고한 데 대한 국제적 비난, 특히 미국 쪽의 압력을 피하기 위해 재심을 열어 10∼15년 정도로 형기를 낮추는 문제를 상의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로리 베린슨 재판은 미국과 페루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어온 게 사실이다.

    3월 중순 페루 정부는 대사관 인질사건 진압 때 사망한 MRTA 요원 14명의 시체를 파냈다. 후지모리 정권이 이들을 즉결 처형했는지를 법의학적으로 가려내기 위해서다. 이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후지모리와 관련 책임자들은 살인죄로 기소될 수도 있다. 페루의 인권단체들은 현재 페루감옥에 수감된 ‘제2, 제3의 로리’가 수백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후지모리 정권의 마구잡이식 좌익 검거 바람에 휩쓸린 희생자들이다. 로리 재판을 계기로 페루에 참된 민주화의 꽃이 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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