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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권력’에 백기 … 복지부 울고 싶어라

의료계에 휘둘리다 잇단 수가인상… 의보재정 위기에도 눈치보기 급급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

‘의사권력’에 백기 … 복지부 울고 싶어라

‘의사권력’에 백기 … 복지부 울고 싶어라
의약분업과 의보통합을 추진하면서 예측하지 못한 부작용과 문제점이 야기된 데 대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물러난다.”

3월21일 건강보험재정 파탄 위기에 대한 문책으로 7개월여 만에 전격 경질된 최선정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이 말은 이번 사태의 본질이 ‘정책의 실패’보다 ‘행정(정책집행)의 실패’에 있음을 시사한다. 의약분업의 당위성을 부정할 순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당연히 이번 사태 후 대두된 ‘책임론’의 한가운데서 ‘동네 북’이 된 건 보건복지부다. ‘준비 덜 된 의약분업’ 강행에 앞장섰던 여당마저도 ‘복지부 난타’에 팔을 걷어붙일 정도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의약분업 강행-의보수가 인상-보험재정 파탄으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에서 잇따른 수가인상을 ‘유도’한 의료계에도 일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태의 원인 중 하나는 의료계 지도부의 ‘전문가 권력’에 유약한 복지부가 내내 휘둘린 때문이라는 것.

“보험재정 위기는 복지부와 의료계의 ‘합작품’이다. 명백히 이번 사태의 1차적 책임은 양자에 있다.” 국민건강권 확보를 위한 범국민연대(이하 건강연대)의 한 관계자(현직 의사)는 “수가인상 대신 의약분업에 따른 비용증가를 재정위기 원인으로 모는 정부의 분석엔 의료계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정략적 의도가 숨어 있다”고 잘라 말한다.

건강연대 분석자료에 따르면 정부측 추계인 올해 건강보험 예상적자분 4조4350억원 중 1조8219억원이 지난해 7월 의약분업 시행 후 단행된 세 차례(2000년 7월1일 9.2%, 9월1일 6.5%, 2001년 1월1일 7.08%)의 과도한 수가인상으로 발생한 것이며, 이는 극단적 집단폐업으로 일관한 의료계를 무마하기 위한 ‘일방적 퍼주기’식 인상에 기인한다는 것. 또 이런 단기고율 인상이 최근 5년간 가뜩이나 재정불균형 상태가 심각했던 보험재정에 ‘치명타’를 날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자료는 복지부가 4조여원 ‘누수’ 원인으로 내세운 △의약분업 영향 △왜곡된 의료구조 해소를 위한 수가 현실화 △본인부담금 조정 △약제비 증가 등은 사태의 원인을 언뜻 의약분업 실시의 영향으로만 오판하도록 ‘포장’한 엉터리라고 꼬집고 있다.



자료는 그 이유로 지난 99년 11월(9.0%)과 2000년 4월(6.0%) 이미 두 차례의 수가인상을 통해 의약분업으로 인한 의료기관과 약국의 소득 손실을 보전해 줬으므로 2000년 7월 이후의 수가인상은 ‘합리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또 2001년 1월의 수가인상은 보험가입자단체 대표들로 구성된 건강보험 재정운영위가 수가를 동결토록 한 결의를 무시한 채 복지부가 의료계와의 ‘약속 지키기’에만 급급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보험재정 위기를 뻔히 알았던 복지부가 ‘부당하고 근거 없는’ 수가인상을 해준 것은 결국 의약분업의 한 축인 의료계의 ‘막강 파워’에 굴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건강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또 의료계 2차폐업 후인 2000년 9월의 수가인상은 ‘불법’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수가를 보험공단 이사장과 의약계 대표자간 계약으로 정하도록 한 건강보험법 절차를 무시하고 복지부가 의료계 압력에 밀려 수가인상을 서둘렀다는 것. 이와 관련, 국회 보건복지위 김홍신 의원(한나라당)이 ‘주간동아’에 제공한 건강보험공단 국정감사 속기록(2000년 10월)도 ‘2000년 7월1일부터 6개월 동안은 건강보험법 시행 당시의 의보수가를 적용토록 돼 있고 해당기간 중 별도의 수가인상은 보험법 부칙 11조의 개정이 전제돼야 하지만, 의료계 폐업 등 ‘새로운 상황’의 발생으로 추가인상이 불가피했음’을 명시하고 있다. 또 시민단체 대표가 ‘불법인상’건으로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12월 위헌결정에 필요한 심판정족수(6명)에 미치지 못했다는 이유로 심판청구를 기각하긴 했지만, 내용상으로는 위헌(재판관 9명 중 위헌의견 5명, 기각의견 4명) 결정이 내려진 것이나 진배없다는 것이 시민단체의 입장이다. 때문에 이들은 대폭적 수가인상이 정책집행을 왜곡한 주원인이 분명하므로 비용절감 차원에서 수가를 전면 재조정하고 수가산정 근거가 되는 병원경영상태의 투명성 제고방안을 시급히 마련하라고 촉구한다.

그러나 복지부 보험정책과 관계자는 “보건의료환경 개선을 위해 2002년까지 단계적으로 수가를 현실화하겠다는 지난해 8월 관계부처장관회의의 결정에 따른 것이므로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역시 펄쩍 뛰고 있다. 의협 김방철 보험이사는 “시민단체의 주장은 맹목적으로 의약분업 시행을 외쳤던 자기 책임을 면피하고 의료계를 재정 파탄의 주범으로 모는 ‘마녀사냥’에 다름 아니다. 수가인상은 의약분업 후 철폐된 기존 약가마진 보전과 분업 시행으로 인한 처방-조제료 신설에 따른 당연한 조치”라며 시민단체의 주장을 반박했다. 의협의 공식 입장도 “재정 파탄의 주범인 정부와 정치권이 재정 정상화를 위해 의료계를 매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료계의 이런 항변도 ‘4조여원의 행방’과 관련해서는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시민단체가 복지부와 함께 의료계를 사태의 ‘공범’으로 지목한 것도 추가소요액 4조여원의 상당부분이 결국 의료공급자인 의약계로 흘러들어갔다는 데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 비록 의협이 “과잉진료는 일부 의사에 국한된 현상이며 의협에 자율징계권이 없는 현 상황에서 이를 제어할 방법은 없다”고 답변하고 있지만,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건강보험공단이 833개 의료기관과 약국을 실사해 3800여 건의 진료비 부당청구를 적발하는 등 보험재정 누수가 공공연한 사실이므로 의료계의 ‘도덕성’을 따질 여지는 충분하다는 것. 3월22일에도 의사 86명과 약품회사 직원 69명이 의약품 관련 비리로 입건됐다.

‘의사권력’에 백기 … 복지부 울고 싶어라
의료계에 대한 비판의 수위는 높다. 3월21일 기자회견을 통해 “의보수가 인상이 산재-자동차보험의 국민 추가부담까지 늘렸다”고 밝힌 민주노총 손낙구 교육선전실장은 “진료량과 진료명세 허위청구를 검증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의료계의 입김이 작용해 제기능을 못하는 판에 건강보험제도의 근본 개혁 없이 다시 수가를 올려 재정적자를 메우려는 정부의 시도는 또 한번 의료계의 ‘독점적 이익’을 대변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병희 교수(보건사회학)도 “수가인상 후 진료서비스의 질이 과연 나아졌는지 의문”이라며 “강경 폐업으로 의료계가 고율의 수가인상을 받아낸 것은 복지부가 의료계에 끌려 다녔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3월22일 여당은 의보재정 대책안으로 지역의보 국고지원율을 연내 50%(현재 33%)로 늘리고 과잉진료 및 부당청구를 불러온 현행 진료항목별 수가제를 대체할 새 수가제도로 질병군별 진료비를 미리 정하는 포괄수가제와 적정량을 초과하는 진료-조제행위에 대해 진료비 지급을 삭감하는 차등수가제를 도입한다는 고육책을 내놨다. 복지부도 “의료기관 실사를 강화할 계획”이라 밝히고 있다.

그러나 김재정 의협회장은 같은 날 한 인터넷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수가 조정안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으며 정부가 이를 추진한다면 의료계도 가만있지 않겠다”는 초강경 의사를 내비쳐 수가 재조정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의협 내 청년의사모임인 의민추(의협민주화추진운동본부)역시 “주사 조제료 지급으로 ‘약사 달래기’에 나서 보험재정을 고갈시킨 정부 정책의 허구를 드러내겠다”며 ‘주사제 조제료 부당이익금 반환청구소송’까지 준비중이다. 하지만 어디에도 의료계가 이미 현실화한 국민 고통을 분담하거나 이번 사태에 대해 ‘연대보증’을 서겠다는 공식 발표는 없다.

보험재정 절감대책은 과연 의료계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복지부가 의보통합과 의약분업을 추진하며 두 명의 장관을 퇴진시키면서까지 고스란히 지켜온 것이 국민건강이 아니라 의료계의 ‘자중자애’(自重自愛)였다는 비난을 피할 유일한 방책은 ‘정책은 결과로 평가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빨리 깨닫는 일이다.



주간동아 2001.04.05 278호 (p44~45)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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