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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늑대 피하려다 호랑이 만났다

신건 국정원장 ‘對北’보다 ‘內治’ 주력 전망 … 野 “여당 프리미엄 커질라” 긴장

  • < 김 당 기자 dangk@donga.com >

야당, 늑대 피하려다 호랑이 만났다

야당, 늑대 피하려다 호랑이 만났다
만년 차관. 신건(辛建·60) 신임 국가정보원장에게 그동안 따라다닌 별명이다. 91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92년 광주고검장, 93년 법무부차관 등 차관급을 역임한 지 10년 만에 장관급인 국정원장에 발탁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신씨는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에도 역시 차관급인 국정원 차장을 잠시 맡았다가 그 뒤로도 4·13 총선 공명선거대책위원장-부정선거진상조사위원장 같은 ‘궂은 일’만 맡아왔다.

국정원장을 맡기 직전의 경력도 지난해 10월 민주당 ‘중간 당직자 인사’에서 임명된 ‘법률구조자문단장’이었다. 말이 법률구조자문단장이지 신씨는 주 3, 4회 정도 당사에 출근해 당에서 벌여 놓은 송사의 뒤치다꺼리를 묵묵히 해왔다.

물론 그동안 장관 하마평에는 누구 못지않게 여러 번 올랐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 조각 때는 박상천 원내 총무에게, 99년 5·24 개각 때는 김태정 검찰총장에게, 그리고 김태정 장관이 ‘옷로비 사건’으로 낙마했을 때는 현 김정길 법무장관에게 고배를 마셔야 했다. 특히 김대중 정부 조각 때는 본인도 법무부장관을 강력히 원했고 김대통령도 신씨를 일찌감치 낙점했으나, 주변에서 슬롯머신 사건 의혹 등을 제기하는 통에 조각명단 발표 직전에 박상천 의원으로 교체한 것으로 전해진다.

슬롯머신 사건이 터진 때는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인 93년 5월. 당시 김영삼 정부 초기의 서슬 퍼런 사정 국면에서 이 사건으로 슬롯머신업계의 대부 정덕일-덕진 형제와 박철언 의원, 엄삼탁 병무청장, 이건개 대전고검장이 구속되고 신건 법무차관과 전재기 법무연수원장이 옷을 벗었다. 제8대 중수부장 출신인 당시 신건 차관은 중수부 후배 검사들에게 조사를 받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지난 97년 5월 정씨 형제는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권 인사들과 교분이 두터운 형 덕중씨가 92년 대선 당시 민자당 김영삼 후보에게 10억원 가량을 선거자금으로 지원했다고 폭로했다. 일반적으로 93년 슬롯머신 사건은 그동안 개혁과 사정을 명분으로 김영삼 대통령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인 박철언 의원 등을 제거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그 사건의 불똥은 신씨에게도 옮겨 붙었다. 당시 검찰 주변에서는 슬롯머신 사건을 검찰 내 파워게임의 산물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



정씨 형제는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김현철씨를 축으로 청와대 박모, 김모씨, 홍인길 총무수석, 대검 김모씨, 김기섭 안기부 기조실장 등 6인방이 수사에 적극 개입해 신건 차관-전재기 연수원장-이건개 고검장 등 유력한 검찰총장 후보를 제거했다”고 주장했다.

바로 그런 사정 때문에 신씨는 이번 개각에서도 법무부장관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씨가 몸담고 있는 세계 종합법무법인의 한 변호사는 “신차관은 평소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는 평생을 검사 생활을 했고 차관까지 역임했는데 무슨 권력욕이 있겠느냐’는 말을 자주 해왔다”면서 “다만 법무장관이 되면 검찰의 정치적 독립과 수사능력 제고에 족적을 남기고 싶은 욕심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를 법무부장관으로 기용할 경우, 오는 5월 임기가 끝나는 박순용 검찰총장 후임으로 유력한 신승남 대검차장과 지역이 겹치는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신씨의 국정원장 기용에 대해 국정원 직원들은 반기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가 국정원 차장직을 떠날 때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신씨가 국정원을 떠난 때는 99년 6월4일. 당시 천용택 국정원장은 원장으로 부임한 지 열흘 만에 나종일 1차장, 신건 2차장, 문희상 기조실장 등 정치인-검찰 출신 국정원 수뇌부를 전면 교체했다. 천원장과 육사 동기(16기)인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당시 마지막 주례 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차장들의 유임을 건의했다. 그러나 이 건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국정원에서는 당시 신차장에 대해 아쉽다는 반응이 많았다.

차장 시절 그를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이 무엇보다도 높이 사는 것은 조직과 일에 대한 그의 열정이다. 차장 시절 그를 모셨던 국정원의 한 간부는 “일단 일을 시작하면 늘 그 자리가 마지막 공직이라고 생각하고 물불을 안 가리고 끝을 보는 분”이라며 “신원장이 기용되면서 국내 정보활동이 강화될 것이라는 말들을 하지만 그보다는 국내외 활동을 통틀어 조직에 활력이 붙을 것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 말했다.

신원장의 기용으로 국내 활동이든 해외 활동이든 그만큼 국정원의 ‘일’이 많아질 것이라는 데는 별로 이의가 없는 듯하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대목은 새로 구축된 신건 원장-김은성 2차장 라인업이다. 두 사람은 이미 차장-대공정책실장(국내정보수집-분석)으로서 호흡을 맞춰왔다. 김은성 차장은 이미 지난 1월 업무조정을 통해 기존의 국내정보 수집-분석 업무의 분장을 수집 2개단-분석 2개단 체제에서 수집 3개단-분석 1개단 체제로 수집 업무를 강화했다. 국내정보 수집활동이 강화되면 정치권, 특히 야당과의 마찰 소지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김대통령이 신건 국정원장을 기용한 것을 우려하는 시각이 없지 않다. 더구나 신원장과 김차장은 모두 전북 출신이다. 자칫 잘못하면 야당의 ‘정치공세’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신원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를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라고 말한다. 그가 국정원 국내보안 담당 2차장(당시는 안기부 1차장)으로 부임하면서 무엇보다도 강조한 것은 ‘도청 없는 안기부’와 ‘가혹행위 근절’이었다. 그러나 그가 소신을 갖고 수사를 지휘했던 ‘총풍(銃風) 사건’(97년 대선 전 판문점 총격 요청 사건)은 이른바 ‘총풍 3인방’과 한나라당의 ‘고문에 의한 조작’ 주장으로 빚이 바랬다. 신씨는 98년 10월 ‘총풍 수사’를 지휘하던 때 기자에게 “한나라당의 고문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그 뒤로 총풍 3인방의 고문 주장과 수 차례의 재판부 기피신청 등 한나라당의 정치공세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한성기 장석중 오정은 3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IMF 경제 위기 상황에서 (야당에 대한) 북풍수사는 부담이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를 앞에 놓고 보면 지금 당장 아무리 수사 결과로 나라가 혼란스럽다 해도 수사의 정도를 가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 4년 뒤에 대통령 선거가 있는데 그때 가서 북풍이 불지 마라는 법이 없다. 나는 역사 앞에 선다는 심정으로 총풍사건을 수사했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임동원 국정원장에 대해서 줄곧 사퇴를 주장해왔다. ‘간첩 잡는 기관’의 책임자가 공개적으로 ‘간첩 두목’과 만나는 것은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는 이유였다. 반면에 여당 또한 ‘임동원 국정원’이 ‘대북’에 주력하다 보니 국내정보활동의 ‘여당 프리미엄’이 전혀 없다는 볼멘소리를 해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신건 국정원장 체제는 ‘국내’보다 ‘대북’에 주력해온 국정원 업무를 ‘내치’ 쪽으로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야당은 ‘늑대’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셈이다.





주간동아 2001.04.05 278호 (p16~17)

< 김 당 기자 dangk@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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