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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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은 듯 고운 ‘부용 꽃길’

천년 고찰 ‘영국사’ 초입의 승마·참나리 길마중…강선대·옥계폭포 등 피서지로 제격

  • 입력2005-09-21 11: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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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줍은 듯 고운 ‘부용 꽃길’
    지루한 장마철이 끝나고 삼복(三伏)의 불길 같은 햇살이 작열하는 이맘때쯤은 능소화 백배롱나무(백일홍) 부용의 곱디고운 꽃이 앞다투어 피어나는 철이다. 이 꽃들은 꽃잎이 유난히 탐스럽거니와 꽃빛도 아주 화사한 여름꽃이다. 그러니 한번만이라도 그 꽃을 눈여겨본 이들에겐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

    아득한 옛날에 원산지인 중국으로부터 건너온 이 꽃들은 주로 반가(班家)와 절집의 뜰이나 돌담 옆에 심어져 여름철 내내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기품을 한껏 뽐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 특히 중부 이북의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젊은이 중 십중팔구는 능소화와 부용이라고 하면 고개부터 갸우뚱거릴는지 모른다. 또한 백일홍이라는 꽃 이름에서는 멕시코 원산의 풀(草) 백일홍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이는 따뜻한 남쪽지방에서 잘 자라는 이들 꽃나무의 습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근세에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온 서양 화초와 귀화식물에 밀려 이제는 옛적만큼 흔하지 않게 된 탓이 더 크다. 하지만 아직도 충청 이남의 남녘에서는 이 꽃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특히 내력 깊은 고찰치고 해묵은 배롱나무 한두 그루 없는 데가 드물다. 이번 여로의 첫 목적지를 충북 영동군 양산팔경의 제1경인 영국사(寧國寺)로 잡은 것도 가지마다 북슬북슬한 붉은 꽃을 가득 피워 올린 배롱나무를 볼 수 있겠다는 기대에서였다.

    영국사 입구의 주차장에서 절까지는 느릿한 걸음으로도 약 20분밖에 걸리지 않는 산길이 이어진다. 짧기는 해도 작은 계곡을 따라가는 이 길의 운치는 그윽하기 이를 데 없다. 집채만한 바위들이 뒹구는 계곡에는 제법 수량이 풍부한 계류가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소나무와 활엽수가 우거진 골짜기를 타고 이따금씩 불어오는 산바람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한순간에 씻어준다. 이 길에서는 또한 형태며 규모가 저마다 다른 소(沼)와 폭포를 연신 마주칠 뿐만 아니라 물가의 수풀과 비탈에는 승마 참나리 같은 야생화가 소담스럽게 피어 있다. 수줍은 듯 피어난 들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발길과 마음은 한결 가뿐해진다.

    영국사는 천태산(715m)의 동쪽 기슭인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에 자리한 천년 고찰이다. 신라 문무왕 혹은 진평왕 때에 창건됐다는 설이 있으나 분명하지 않다. 다만 대웅전 앞에 통일신라 양식의 조촐한 삼층석탑(보물 제533호)이 서 있는 걸로 봐서는 통일신라 이전에 창건되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천년 고찰이라는 연륜과 기대와는 달리, 꽃이라고는 때 이른 코스모스 말고 눈에 띄는 게 없었다. 그래도 다리품이 헛되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어마어마하게 큰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223호) 한 그루가 경내 밖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기 때문이다. 여태껏 본 것들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크고 수형(樹形)도 매우 아름다운 이 은행나무는 수령이 500여년에 높이가 자그마치 20m에 이른다고 한다.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간 가지마다 무성한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10월 하순에서 11월 초순 사이에는 이 은행나무만을 보려고 영국사를 찾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올 가을에는 단풍 든 광경을 꼭 한번 보리라”고 작심하며 조붓한 산길을 되돌아 나왔다.

    수줍은 듯 고운 ‘부용 꽃길’
    영국사 들머리의 누교리를 지나는 501번 지방도의 양쪽 길가에는 부용이 길게 늘어서 있다. 숱한 여름꽃 중에서도 꽃잎이 가장 크고 또렷한 축에 드는 부용은 언뜻 보면 접시꽃이나 무궁화를 닮았다. 모두가 아욱과에 속하는 식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용은 무궁화보다 꽃잎이 몇 곱절이나 더 크고 접시꽃보다는 꽃의 때깔이 훨씬 더 아름답고 시원스럽다. 그래서 옛날에는 미인의 상징으로 여겨져 아름다운 여자의 맵시를 ‘부용자’(芙蓉姿)라 일컬었다. 게다가 사람의 손길이 많이 가지 않아도 여름철마다 탐스럽고 싱싱한 꽃을 무더기로 피우기 때문에 가로화로는 아주 제격이다. 그러나 서양 꽃이 득세하기 시작한 근래에 들어서는 급속히 자취를 감추었고, 이제는 충청도와 전라도 일대의 몇몇 지방도와 국도변에서나 간간이 구경할 수 있다. 영국사 초입의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부용 꽃길도 얼마 못 가서 끝을 보였다.

    영동군 양산면 일대에는 뱀처럼 굽이치기도 하고 때로는 장강(長江)처럼 유장히 흐르는 금강의 물길이 이뤄놓은 절경이 여럿이다. 송호리의 송림(松林)도 그 중 하나인데, 약 8만5000평의 강변에 수천 그루의 소나무가 빼곡이 우거져 있어 사시사철 장관을 이룬다. 밑둥치가 굵직한 나무들이 제법 많을 걸 보면 이 숲의 역사가 녹록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솔밭 한쪽에는 양산팔경의 하나인 여의정이 자리잡고 있어 옛 시인묵객들의 풍류도 그대로 음미해 볼 수 있다. ‘송호국민관광지’로 지정된 이 솔밭은 전체가 야영장인 데다가 커다란 야외수양장이 마련돼 있어 가족 단위의 피서지로 특히 안성맞춤이다.

    내친걸음에 심천면 고당리의 옥계폭포도 꼭 한번 들러볼 만하다. 어쩌면 도식적으로 들릴지도 모를 ‘들러볼 만하다’는 말보다는 신세대들이 즐겨 쓰는 ‘강추’ 라는 표현이 썩 잘 어울리는 절경이다. 폭포의 높이는 20여m에 불과하지만 폭포수의 양옆으로는 깎아지른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암벽 위에는 울창한 솔숲이 들어서 있어 풍광이 빼어나게 아름답다. 게다가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이 가지런하게 내려꽂히는 폭포수의 위세가 매우 힘차다. 폭포수가 닿는 소에서는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서늘한 바람이 느껴질 정도다. 그러면서도 소와 그 주변의 계곡은 수심이 얕아서 아이들조차도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폭포수 주변의 풀밭에는 돗자리를 펼치고 한나절쯤 쉬어갈 수 있음직한 터도 몇 군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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