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7

2000.08.17

김제경 은퇴와 킴 메서의 귀향

  • 입력2005-09-14 13: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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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제경 은퇴와 킴 메서의 귀향
    성적 지상주의와 상업주의로 물든 스포츠계에 오랜만에 훈훈한 얘기 두 가지가 돌고 있다.

    요즘 태권도계에선 ‘태릉선수촌 삼촌’의 은퇴가 화제다. 90년대 세계 태권도계의 살아 있는 신화로 군림한 남자 헤비급(80kg 이상·최중량급) 국가대표 김제경(31)이 8월2일 갑작스레 은퇴했다. 7월 말의 허벅지 부상이 악화되자 스스로 대한태권도협회를 찾아 대표 반납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러자 협회는 8월2일 재평가전을 지시했고 김제경은 후배 김경훈 문대성과의 경기에서 잇달아 기권, 올림픽 티켓을 후배에게 양보했다.

    태권도인들은 말이 쉽지 이런 결정을 내리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김제경 스스로가 밝힌 몸 상태는 정상의 60% 수준. 맘만 먹으면 진통제 주사 몇 대 맞으면서 올림픽(3, 4경기만 이기면 메달권)을 소화할 수 있다는 게 태권도인들의 분석이다. 운동선수에게 올림픽은 꼭 한번 서보고 싶은 무대다. 부상이 있으면 감추거나 축소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더욱이 태권도는 다른 종목에 비해 금메달을 딸 확률이 훨씬 높다. 메달 수여자에게 주어지는 연금을 생각했을 때 태권도의 올림픽대표는 평생이 보장되는 황금카드로 보일 수도 있다.

    태권도와 관련된 모든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김제경에게도 은퇴를 앞두고 현역생활 마지막이 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은 더없이 소중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역시 ‘정도’를 택했다.

    “태권도는 스포츠이기 전에 무도입니다. 부상이 악화되고 있는데 문제없다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평생의 꿈인 올림픽 우승이 좌절된 만큼 이제 은퇴할 겁니다.” 김제경은 당분간 후배 김경훈 선수의 연습 파트너가 돼주기 위해 대표팀 훈련장에 나올 계획. 발군의 기량과 모범적 생활로 후배들이 ‘삼촌’이라 부르며 따르는 김제경의 당당하고 아름다운 은퇴였다.



    8월1일 입양아 출신 재미 여자복서 킴 메서(34·한국명 백기순)가 한국에 왔다. 메서의 소원은 세계챔피언이 되는 것. 그리고 조국 한국에서 경기를 치르는 것이다. 8월5일 서울 코엑스 특설링에서 열린 IFBA(국제여자복싱협회) 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그녀는 일본의 유키 다카노(28)를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으로 꺾었다.

    서너 살 때 서울역 앞에서 부모를 잃어버린 후 고아원에서 생활하다가 70년대 초 미국인 가정에 입양된 킴 메서는 89년 태권도 강사인 마크 메서(35)와 결혼한 뒤 킥복싱에 입문했다. 그녀는 94년 7월 세계킥복싱협회(WKA) 챔피언 등 세차례나 세계정상을 차지했다. 그녀에겐 ‘불덩어리’(fireball)라는 별명이 붙었다.

    메서는 95년 6월 프로복서로 전향했지만 독일선수와 가진 데뷔전을 겸한 세계타이틀전에서 아깝게 판정패했다. 그뒤 97년부터 상위 랭커들을 상대로 연승가도를 달린 끝에 세계정상에 오른 것이다.

    메서는 자신의 친부모와 조국에 애정을 나타냈다. “분명 어려운 상황이 있었으니 저를 버렸을 겁니다. 부모를 이해하고 싶습니다.” 메서는 “두 가지 소원을 함께 이뤄준 조국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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