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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대통령을 호송하다니…

대통령을 호송하다니…

대통령을 호송하다니…
재직하고 있는 세종대학교에서 이번 학기의 마지막 강의를 하던 날은, 학교 박물관 벽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기 ‘인공기’가 내걸려 있었다. 그날은 마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첫날(6월13일)이었다. 내 평생에 그렇게 큰 인공기를 그렇게 가까이에서 보기도 처음이었다.

캠퍼스 곳곳에는 ‘미국의 51번째 주가 될 수 없다’ ‘매향리는 묻는다. 미국이여, 쫓겨갈 것인가. 물러갈 것인가’하는 반미 구호가 나붙어 있기도 했다. 그러나 반공법을 치켜들고 주동자를 색출하러 들이닥쳤을 관계기관원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55년 만의 만남에 앞세우는 ‘역사적’이라는 수사의 의미가 절실하게 느끼진 것도 김대중대통령의 평양 도착을 전하는 TV 앞에서가 아니라 바로 그 대형 인공기 앞에서였다.

그렇게 시작된 2박3일을 남북정상회담 뉴스를 전하는 라디오와 TV 앞에서 보내며, 무엇보다 아쉬웠던 것은 정제되지 않은 방송언어, 그 ‘말’이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TV방송의 한 여기자는 김대통령의 평양도착을 정리 소개하면서 “(무슨무슨 거리를) 데리고 다녔습니다”고 거침없이 내뱉었다. 평양 지리를 모르는 나로서는 그 여기자의 말을, 공항에서 숙소인 백화원으로 바로 모셔가지 않고 우리 어른을 시내 여기저기로 ‘데리고 다녔다’고밖에 이해할 수 없었다. 대통령을 데리고 다니다니!

아침의 라디오 시사정보 프로. 만찬장에서의 김대통령 연설이 잘 들리지 않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기자는 “그 건물이 음향설계가 제대로 안된 건물인 것 같다”고 진단했다. 만찬장의 음향시설 준비가 소홀했던 것 같다고 하면 된다. 그런데 음향문제에 대한 충분한 시설 없이 지어진 것 같다니, 만찬장이 무슨 콘서트 홀인가.



끊임없이 방송기자들이 내뱉는 무책임한 표현은 대통령의 서울 도착에서도 그칠 줄을 몰랐다. TV 방송사가 공동중계한 화면에서는 “여러분은 지금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있을 수 있습니다”라는 희한한 한국어까지 튀어나왔다. ‘보고 계십니다’하면 되지, 보고 있을 수 있다는 건 어느 나라 어법인가!

그러더니 이 무슨 망발인가. “청와대로 향하는 김대통령 일행을 수십 대의 경찰 호송차량이…”운운까지 서슴지 않았다.

화면에서는 분명히 몇 대의 경찰 오토바이가 호송하고 있는데 그것을 수십 대라지 않나, 게다가 대통령을 경찰이 호송하고 있다니, 이게 무슨 망발인가.

호송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다. 무엇인가를 보호하여 보내는 것과 죄인 따위를 감시하여 데려가는 것이다. 통일의 물꼬를 트고 돌아오는 대통령을 4000만 국민이 뜨겁게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거기다 대고 호송이라니.

이런 방송을 통해 우리는 2박3일 동안 굽이치는 격랑의 역사를 지켜봐야 했다.

대한항공의 괌 참사 때가 떠오른다. 사고원인을 밝혀 줄 자료로 블랙박스의 행방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을 때였다. 어느 TV 방송에서 기자는 “왜 이름이 블랙박스입니까”하는 진행자의 질문에 거침없이 대답했다.

“색깔이 검기 때문에 블랙박스라고 부릅니다.”

블랙박스가 검은색이라는 소리도, 그래서 블랙박스라고 부른다는 소리도 금시초문이었다. 블랙박스에는 파란 것도 빨간 것도 있다.

역사의 현장을 전하는 기자들의 땀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현장성에 너무 치우치다 보니 나오는 실수로 넘어가기에는 그 ‘옥의 티’가 너무 심하지 않은가.

보다 정제된 언어, 사실에 기초를 둔 정확한 표현, 사담(私談)이 아닌 공적 언어로서의 방송에 좀더 마음을 써주었으면 하는 것은, 가슴 벅찬 뉴스를 접하면서 느꼈던 나만의 생각일까.



주간동아 240호 (p9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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