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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훈의 꽃따라 길따라­|태안 바닷가에 핀 야생화­

살랑살랑 갯바람 꽃잎에 입맞춤

안면도 해수욕장 해당화, 갯메꽃, 수련 등 우아함 일품…선홍빛 저녁노을 ‘황홀’

살랑살랑 갯바람 꽃잎에 입맞춤

살랑살랑 갯바람 꽃잎에 입맞춤
‘바닷가 해당화/ 홀로 피어서/ 하소연한 심사에/ 고개 숙였소/ 소곤소곤 바람이/ 수작을 하면/ 수줍은 어린 맘에/ 얼굴 붉히오’

김 억 시인이 쓴 ‘해당화’라는 시인데 호젓한 바닷가에 홀로 피어 여름철 내내 붉은 정념을 토해내는 해당화는 예로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래서 ‘화중신선’(花中神仙)이라 불리기도 했다. 화중신선을 만나기 위해 새벽잠까지 설치며 길을 재촉한 끝에 당도한 곳은 태안군 안면도의 안면해수욕장. 언젠가 그 바닷가에서 해당화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집도 절도 없는 사람처럼 서성거린 적이 있었다.

5월 하순경부터 피기 시작하는 해당화는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리지 않고 한두 송이씩 피고지기를 거듭한다. 그래서 8월까지는 어느 바닷가에서나 해당화의 고운 빛깔과 탐스런 꽃부리를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꽃망울이 맺힌 해당화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마도 일찍 찾아온 무더위 탓에 개화기도 많이 앞당겨진 듯하다. 하지만 이맘때쯤의 바닷가에 피는 야생화가 해당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꽃빛 화사하고 꽃잎도 싱싱한 갯메꽃이 곳곳에 무리지어 피어 있는 걸 보니 해당화를 보지 못한 서운함도 가신다.

바닷가 모래밭에서 5, 6월경에 피는 갯메꽃은 나팔꽃이나 메꽃과는 사촌뻘 되는 식물이다. 그러나 하얀 줄무늬가 섞인 분홍꽃과 두텁고 동그란 잎이 매달린 덩굴은 나팔꽃이나 메꽃보다도 훨씬 더 곱고 싱그럽다.

갯메꽃이 핀 바닷가 모래밭이나 갯바위 틈에서는 갯모래지치도 드문드문 눈에 띈다. 또한 바닷가의 벼랑 위에 들어선 잡목 숲에서는 풍성한 꽃과 그윽한 꽃향기가 일품인 때죽나무가 하얀 꽃을 흐드러지게 피우고 있었다. 그러나 이맘때쯤 안면도에서 볼 수 있는 야생화 가운데 가장 장관을 이루는 것은 수련이다.



천수만에 닿은 안면도의 서쪽은 전형적인 리아스식해안이라 해안선의 굴곡이 매우 심하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방조제를 쌓고 갯벌을 메워서 저수지와 농경지를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은 해안선도 퍽 단조로워졌다. 안면읍 승언리에 있는 세 개의 저수지도 그렇게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이곳의 세 저수지 가운데 수련이 가장 많은 곳은 승언1저수지다. 수만 평에 이르는 수면(水面)의 절반 가량이 수련으로 뒤덮여 있다. 연(蓮)은 연근(蓮根)을 얻기 위해 커다란 저수지에다 일부러 심는 경우가 있지만 수련은 대규모 군락지를 보기 어렵다. 대체로 절이나 집 마당의 작은 연못에다 관상용으로 키우기 때문이다. 그러니 승언1저수지의 수련밭은 일단 엄청난 규모만으로도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더욱이 이곳에는 모든 종류의 수련이 한자리에 다 모여 있다.

살랑살랑 갯바람 꽃잎에 입맞춤
그리고 물가에는 핫도그 형상의 꽃 이삭이 달린 부들이 갈대밭처럼 빽빽하고, 저수지 주변에는 그 유명한 안면송(安眠松) 숲이 둘러쳐 있어 풍광 또한 아주 빼어나다. 이 수련만을 보기 위해서라도 안면도까지 오는 다리품이 결코 아깝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무시로 이 수련밭을 찾는다는 토박이의 말로는 안개 깔린 날의 새벽 정취와 수면 위에 백설이 소담스럽게 내려앉은 겨울날의 풍경이 특히 환상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수련꽃이 한꺼번에 피어난 장관을 보려면 6~7월, 그것도 오전 10시∼오후 5시에 찾아가야 한다. 수련은 해가 중천에 떠있을 때에만 피고 햇살이 약해지면 꽃잎을 닫아버린다. 그래서 이름도 ‘잠자는 연’이라는 뜻의 수련(垂蓮)이다.

안면도는 해안절경이 즐비한 태안 해안국립공원 내에서도 가장 풍광이 빼어난 곳이다. 특히 ‘해수욕장의 천국’이라 불릴 정도로 해수욕장이 많은데 섬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603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다가 아무데서나 서쪽으로 꺾어지면 거의 어김없이 나타난다. 비교적 이름이 알려진 방포 삼봉 꽃지 이외에도 백사장 안면 밧개 샛별 장삼포 장곡 바람아래 등 지명조차 생소한 해수욕장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여유 있게 바다의 정취를 음미하기에는 인적 드문 이맘때쯤이 훨씬 더 좋다. 더욱이 한창 고운 갯메꽃과 갯바람에 꽃잎을 뚝뚝 떨구는 해당화도 감상하고 물 빠진 갯벌에서 맛 같은 조개류를 잡는 재미도 맛볼 수 있다.

이들 해수욕장은 은밀하고도 조붓한 산길로 서로 연결돼 있어 오프로드(off-road) 드라이브의 묘미를 만끽할 수도 있다. 특히 밧개해수욕장에서 방포해수욕장 꽃지해수욕장을 거쳐 승언리의 병술안마을까지 이어지는 비포장 길은 강원도 첩첩산중의 임도(林道) 못지않게 자연미가 물씬하다. 안면도뿐만 아니라 태안반도 구석구석까지 실핏줄처럼 뻗친 길은 드라이브코스로 손색이 없다. 아직까지는 길 자체도 한적하거니와 길가에 2002년 꽃박람회를 앞두고 태안군에서 화단을 꾸며놓아 길의 풍경이 화사하고 시원스럽다. 그 길의 끝에서는 아담한 포구와 한적한 백사장을 만나게 되는데, 때마침 해거름 녘이라면 동해 일출의 장엄함에 뒤지지 않을 해넘이가 하루여정을 풍성하게 마무리해준다.

붉은 기운을 가득 머금은 태양은 수평선과 가까워질수록 더욱 커지고, 바다와 하늘과 갯벌에 드리워진 노을은 순식간에 금빛 오렌지빛 석류빛으로 바뀐다. 마침내 해가 수평선 아래로 빠져들고 나면 천지간은 온통 섬뜩한 핏빛, 황홀한 선홍빛으로 물든다. 하지만 이런 진부한 표현으로는 그토록 장려하고도 감동적인 광경을 반의 반도 담아내지 못한다. 더군다나 그토록 가슴 벅찬 장면 앞에서는 절로 터져나오는 장탄식 이외에 아무 말도 필요없다. 본래 감동이 크면 말은 적어지게 마련이다.

이집 이맛

담백한 국물 끝내주는 ‘밀국낙지탕’


살랑살랑 갯바람 꽃잎에 입맞춤
태안 해안국립공원에는 발길 닿는 바닷가마다 광활한 모래펄이 펼쳐져 있다. 반면에 태안반도 북서쪽의 가로림만에는 간조 때마다 바다만큼이나 드넓은 개펄이 물밖으로 드러난다. 이 너른 개펄에서 나는 낙지 조개 굴 등의 해산물은 생산량도 많고 맛도 좋다. 태안 지방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인 ‘밀국낙지탕’도 이곳의 풍부한 해산물, 특히 다리가 가는 세발낙지를 주재료로 쓴다.

먼저 싱싱한 박속과 함께 파 마늘 무 양파 감자 등의 야채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끓인 육수에다 꿈틀거리는 세발낙지를 데쳐 먹는다. 산낙지회를 즐겨먹거나 성질이 급한 사람은 아예 산 채로 한마리씩 입안에 털어 넣기도 한다. 하지만 담백하고도 맛있는 밀국을 맛보려면 몇 마리는 펄펄 끓는 육수에다 데쳐 먹는 게 좋다. 낙지를 다 먹고 난 뒤에는 낙지를 데쳐낸 국물에다 수제비를 넣고 다시 졸이듯 끓이는데, 박속의 시원한 맛과 낙지에서 우러난 담백함이 어우러져 밀국, 즉 수제비의 국물 맛이 아주 독특하고도 짙은 풍미가 느껴진다. 산낙지가 워낙 귀물이라 음식값(1인분에 1만5000원)이 조금 부담스럽다. 하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태안반도 북쪽의 이원면과 원북면에는 밀국낙지탕을 내놓는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그 중에서도 원북 면소재지의 원풍식당(0455-672-5057)과 이원 면소재지의 이원식당(0455-672-8024)이 소문난 밀국낙지 전문점이다.




주간동아 240호 (p8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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