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0

2000.02.03

어른들의 세계 쓴맛과 단맛 사이

  • 김정희 기자 yhong@donga.com

    입력2006-07-06 11: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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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충 그은 듯한 펜선, 과감히 생략된 인물표현 등의 캐릭터만을 언뜻 보았을 때 레제르(Jean-Marc Reiser)의 만화는 ‘꼬마 니콜라’의 작가 상페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레제르의 ‘우리 아빠’ (열린책들 펴냄)를 한두 장 읽어나가다 보면 그의 작품세계는 세상과 인간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상페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는 것을 금세 발견할 수 있다. 레제르가 그리는 세상은 불순하고, 거칠고, 동물적 욕망에 적나라하게 노출된 ‘어른들의 삶’이다.

    알코올 중독에 빠진 아비는 만날 어린 아들에게 술심부름을 시키고, 말타기 놀이를 하자고 친구를 유혹한 꼬마는 그 친구를 말 도살장에 팔아넘긴다. 작품 속에는 건강치 못한 아비와 아름답지 못한 어미 사이에서 태어난 우울하고 불구인 아이들이 등장한다. 섹스와 종교와 이민족에 대한 섬뜩하고 신랄한 풍자로 가득한 블랙 유머! 그래서 이 만화가 연재되었던 잡지 ‘하라-키리’(割腹)는 ‘표현의 수위’ 문제를 둘러싸고 20년 동안 판금-폐간-재창간을 되풀이하면서 프랑스 정부와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레제르의 만화는 어른만 보아야 할 작품이요, 어른이 아니면 웃음과 재미를 얻을 수 없는 만화다.

    ‘회사원 만화가’ 홍윤표씨가 내놓은 ‘천하무적 홍대리2’(일하는 사람들의 작은책) 역시 어른을 위한 만화이나, 레제르의 ‘쓴 맛 나는’ 풍자와 달리 건강하고 밝은 웃음이 잔뜩 배어난다. 소재는 지난 98년 발표된 1편과 마찬가지로 화이트칼라 샐러리맨의 아기자기한 일상사. 주인공 홍대리는 일일팀장을 맡은 날 부장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고 오후 3시에 퇴근하는가 하면 사무실 비품을 한아름 책상 서랍 속에 ‘꼬불쳐 두었다가’ 기습 소지품 검사에 적발되고, 부장 사인을 흉내내서 대리 결재를 하다가 들키기도 한다. ‘미스터 Q’나 ‘시마과장’이 주인공들의 ‘영웅적인 활약상’과 다이내믹한 생존경쟁의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별 볼 일 없는 직장인들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한다면, 직장에서 상사에게 ‘대충 개기는’ 홍대리는 ‘동병상련’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다소 심심하게 느껴지는 펜선은 2편에서 역시 여전하나, 비교적 근작인 후반부 수록작품에는 스크린톤(판박이 무늬종이)을 사용해 입체감을 살리는 등 변화가 엿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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