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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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에 눈이 오니 가지마다 꽃이로다

대관령 괘방산 등 눈꽃 장관… 경포호 탐조여행도 해볼 만

  • 입력2006-06-21 1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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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림에 눈이 오니 가지마다 꽃이로다
    새 천년을 눈앞에 두고 모두들 들떠 있던 세밑에 꽃구경하러 길을 나섰다. “이 엄동설한에 웬 꽃구경이냐”며 의아해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겨울철에도 봄이나 여름철에 핀 기화(琪花) 못지 않게 우아하고도 탐스런 꽃을 감상할 수 있다. 나뭇가지마다 풍성하게 쌓인 흰 눈, 즉 눈꽃(雪花)이 그것이다.

    눈을 꽃으로 묘사한 것은 근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선인들은 눈을 ‘육각(六角)의 결정(結晶)을 이룬 꽃’이라 해서 ‘육화’(六花) 또는 ‘육출화’(六出花)라 일컬었다. 또한 우리의 고전문학 가운데에는 나뭇가지마다 내려앉은 눈을 꽃에 비유한 작품이 드물지 않은데, 송강 정철의 가사(歌辭) 중에는 이런 작품도 눈에 띈다.

    “송림에 눈이 오니 가지마다 꽃이로다/ 한 가지 꺾어 내어 님 계신 데 보내고저/ 님께서 보신 후에 녹아진들 어떠리.”

    물론 겨울꽃으로는 눈꽃만 있는 게 아니다. 따뜻한 남녘 땅에서는 이미 겨울철이 시작될 즈음부터 동백의 아리따운 꽃부리를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동장군의 기세가 한풀 꺾이는 입춘 무렵이면 겨우내 삭풍과 한설(寒雪)을 이겨낸 복수초 수선화 매화 등의 화신(花信)이 남풍을 타고 날아든다. 그러나 실낱 같은 봄기운조차 느낄 수 없는 이맘때쯤에는 남녘으로 꽃구경을 떠나기가 적잖이 조심스럽다. 화사한 꽃을 보고 난 뒤에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겨울철의 잿빛 도심이 더욱 살풍경하게 느껴질 터이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남녘의 ‘진짜’ 꽃구경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강원도의 산간 지역으로 순백의 눈꽃을 보러 길을 떠난 것이다.

    막상 길을 나서니 기대와는 달리 둥덩산 같이 푸짐한 눈은 구경하기 어려웠다. 영동고속도로 주변의 산자락은 응달진 곳에만 반쯤 녹아 내린 눈이 남아 있을 뿐, 볕이 잘 드는 비탈에는 앙상하게 가지를 드러낸 나무들만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평창 진부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오대산으로 길머리를 돌렸다. 유난히 적설량이 많거니와 산세가 좋고 숲도 울창해서 때만 잘 맞추면 그림 같은 설경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대산의 설경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빙판으로 변한 길을 거의 기다시피 해서 월정사를 지나 상원사까지 올라갔으나 카메라 셔터도 한번 눌러보지 못한 채 길을 되돌아 나왔다. 진고개와 대관령에도 올라보고 황병산 자락의 소리골에도 찾아갔지만 온종일 헛걸음만 거듭했다. 노루꼬리처럼 짧은 겨울 햇살도 자취를 감추고 어느덧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그날 밤에 전국적으로 큰 눈이 내릴 거라는 일기예보를 믿고 대관령 근처의 횡계리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이튿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창 밖을 보니 세상은 온통 밤새도록 내린 눈 속에 파묻혀 있었다.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차바퀴에 체인을 친 다음 대관령 국사서낭당으로 향했다. 대관령휴게소 근처에 자리한 국사서낭당은 찾아가기도 쉬울 뿐더러 주변에는 활엽수와 침엽수가 울창해서 눈꽃의 장관을 구경하기에 아주 제격이다.

    송림에 눈이 오니 가지마다 꽃이로다
    맥없이 미끄러지기를 되풀이한 끝에 찾아간 국사서낭당 주변은 칼날처럼 섬뜩한 적막감이 감돌았다. 일년 내내 쉼 없이 흘러나오던 무악(巫樂)은 끊기고, 대신에 산새들의 지저귐과 눈을 이기지 못한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 너무 번듯해서 별로 연륜이 느껴지지 않던 서낭당과 산신당 건물도 두텁게 쌓인 눈 덕택에 예스러운 멋과 범치 못할 신령스러움이 느껴진다. 오랜 세월 산신당과 서낭당을 지켜온 고목들도 가지마다 눈부시게 화사한 눈꽃을 피워 올려 진풍경을 자아냈다.

    잠시 눈발이 약해진 틈을 타서 눈 맞은 강아지처럼 뛰어다니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바라던 것보다 더 푸짐하게 내린 눈이 처음엔 반갑고도 고마웠으나 이젠 “그만 그쳤으면”하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퍼붓는 폭설 속에서는 설경 좋은 곳을 찾아다닐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일단 탁 트인 바다나 바라보면서 눈이 그치기를 기다려보자는 생각에 이미 주차장으로 변한 길을 벌벌 기면서 대관령을 넘었다.

    강릉 시내를 지나 정동진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데, 산 중턱까지만 눈에 덮인 괘방산이 시야에 들어왔다. 산 아래에 위치한 등명 낙가사의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괘방산에 올랐다. 때마침 걷히기 시작한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드러나자 나뭇가지마다 쌓인 눈에는 생채(生彩)가 감돌고, 응달진 산비탈의 눈밭에서는 푸른 기운이 느껴졌다. 특히 자잘한 열매가 주절주절 매달린 나무는 붉은 열매와 흰 눈과 푸른 하늘이 대조를 이룸으로써 그 어떤 꽃보다도 더 아름답고 탐스러웠다. 하지만 그토록 탐스럽던 눈꽃도 햇살이 닿자마자 금세 녹아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 광경을 바라보며 애만 태우다가 발길을 되돌렸다.

    영동 제일의 관광도시인 강릉은 새삼 중언부언하기가 망설여질 만큼 잘 알려진 곳이다. 그러나 강릉 경포나 정동진에 가본 이는 많아도 강릉 땅을 제대로 둘러본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심지어 강릉 토박이조차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역사유적지와 경승지가 허다하다. 그 대표적인 곳 중의 하나가 대관령 동쪽 사면의 보현산 기슭에 자리잡은 보현사다.

    행정구역상으로 성산면 보광리에 속한 보현사는 영동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고찰일 뿐만 아니라 주변의 울창한 솔숲이 인상적이다. 게다가 경내에는 창건주인 낭원대사의 부도(보물 제191호)와 부도비(보물 제192호), 고풍스런 대웅전 등이 남아 있어 절의 내력이 만만치 않음을 말해준다. 가람의 규모는 소박한 편이지만 깊은 산자락에 파묻힌 산사(山寺)의 고즈넉함이 이따금씩 찾아오는 이들의 마음을 끈다.

    요즘 같은 겨울철에는 향호 경포호 등의 석호에서도 색다른 볼거리를 만날 수 있다. 향호는 주문진 북쪽의 7번 국도변에 위치한 호수인데, 수면이 얼어붙으면 빙어를 낚으려는 조사(釣師)들의 발길이 잦다. 그리고 고니(백조) 청둥오리 논병아리 등을 비롯한 철새와 흰뺨검둥오리 같은 텃새가 날아드는 겨울철의 경포호는 아이들과 함께 찾아볼 만한 생태여행지로도 손색이 없다.

    [이집 이맛]

    “고소하고 담백한 초당두부 맛보소”


    송림에 눈이 오니 가지마다 꽃이로다
    “경포대까지 와서 초당 두부도 못 먹어보고 가는 사람은 멋을 알지 몰라도 맛은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조차 있을 만큼 초당두부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강릉의 별미다. 소금물 대신에 경포 앞바다의 깨끗한 바닷물을 간수로 사용하여 두부를 만들기 때문에 유달리 맛이 고소하면서도 담백하다고 한다. 오랜 옛날부터 맛좋은 두부를 만들어 온 초당동에는 오늘날까지 직접 두부를 만들어 파는 음식점이 여럿 남아 있는데, 그중에서도 3대에 걸쳐 초당두부를 만들어온 초당할머니순두부집(0391-652-2058)이 가장 제대로 맛을 내는 집으로 알려져 있다. 100% 국산 콩을 써서 손님이 주문할 때마다 만들기 때문에 각종 영양소와 맛이 살아 있는 신선한 두부를 내놓는다. 두부와 함께 나오는 된장찌개와 콩비지찌개, 묵은 김장김치의 맛도 각별하다. 값은 순두부백반이 4000원, 모두부와 순두부는 3000원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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