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때에 맞춰 봄꽃을 구경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개화기가 해마다 들쭉날쭉한 데다가 그 기간도 아주 짧기 때문이다. 봄꽃 중에서도 특히 벚꽃은 개화기가 유난히 짧다. 그러니 어느 곳에 벚꽃이 만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꽃구경하러 달려갔다가 헛걸음을 하는 수도 종종 있다. 그와는 반대로, 예전의 경험이나 평균 개화기를 믿고 찾아갔다가 잔뜩 부풀어 오른 꽃망울만 안타깝게 바라보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이번 여정(旅程)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전라북도 일대의 내로라하는 벚꽃 명소를 한꺼번에 다 돌아볼 요량으로 여명이 채 밝기도 전에 서둘러 길을 나섰다. 먼저 호남고속도로의 전주 나들목을 빠져나와 번영로(26번 국도의 전주~군산 구간)로 들어섰다. 흔히 ‘백리 벚꽃길’이라 일컫는 이 길에서는 이미 지난 4월8일부터 ‘벚꽃 축제’가 열리고 있는데도 막상 현지에 당도해보니 몇몇 나무들만이 듬성듬성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나마도 대부분 반쯤만 개화된 상태여서 눈이 부시도록 화사한 벚꽃 터널을 감상하려면 적어도 닷새에서 이레는 더 기다려야 될 성싶었다. 광막한 ‘징게 맹경 외애밋들’(김제 만경 너른 들)을 내달린 끝에 당도한 김제 금산사 입구의 벚꽃 터널도 마찬가지였다. 못내 아쉬운 발길을 돌려 전주시 북쪽의 송광사(0652-243-8091)로 향했다.
벚꽃이 만발하는 4월20일경의 송광사 동구 풍경은 하동 쌍계사와 흡사하다. 2km의 진입로 양편에 해묵은 벚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그 벚꽃길 옆으로는 맑은 냇물이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지리산과 섬진강이 얼싸안은 쌍계사의 ‘십리 벚꽃길’보다는 길이도 짧고 자연 풍광도 떨어지는 편이지만, 흐드러지게 핀 벚꽃은 봄날의 여심(旅心)을 돋우기에 모자람이 없다.
송광사는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의 종남산 기슭에 자리한 천년고찰이다. 오늘날에는 사세가 크게 위축되었지만, 절의 내력과 역사만큼은 같은 이름의 순천 송광사에 못지 않을 만큼 유구하다. 원래 이 절은 통일신라 때에 우리나라 선종불교의 시조인 도의선사에 의해 창건됐으나 오랫동안 폐허로 방치돼 오다가 조선 광해군 14년(1622)에 호국사찰로서 크게 중창되었다. 여태껏 남아 있는 대웅전(보물 제1243호), 종루(보물 제1244호), 소조사천왕상(보물 제1255호), 소조삼존불좌상(보물 제1274호) 등의 문화재도 모두 조선 중기 이후에 조성된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대웅전에 봉안된 소조삼존불상은 높이 5m의 거불(巨佛)인데다 나라에 중대사가 있을 적마다 땀을 흘리는 불상으로 유명해서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송광사 앞을 지나는 포장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조금만 달리면 위봉산성과 위봉사에 당도한다. 위봉산성은 전주 경기전에 봉안된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유사시에 옮겨서 보관하기 위해 조선 태종 7년(1407)에 쌓은 석성이다. 길이 16km의 성안에는 임금의 임시 처소인 행궁(行宮)과 45개의 우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반쯤 허물어진 성벽과 서문(西門)만 남아 있다. 옛 성안에 자리잡은 위봉사는 백제 무왕 때에 창건되었다는 고찰일 뿐만 아니라 일제 때에는 31본산의 하나로서 전북 지방의 46개 사찰을 관할하던 대찰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근래까지 거듭된 화재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탄데다가 지금도 대규모 중창불사가 계속되고 있어 고찰다운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이 절보다는 오히려 절 앞의 큰길가에 있는 위봉폭포의 장쾌한 위용이 볼 만하다. 오랜 가뭄 탓에 수량이 넉넉하진 않지만, 높이 60m의 암벽 아래로 기운차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노라면 세상사에 짓눌렸던 가슴이 확 트이는 듯하다. 또한 폭포 주변의 가파른 산비탈을 붉게 수놓은 진달래는 무르익은 봄날의 정취를 한층 북돋운다.
위봉폭포의 물줄기는 동상저수지로 흘러드는데, 이 동상저수지와 대아호를 끼고 달리는 749, 732번 지방도는 매혹적인 호반드라이브코스다. 두 곳 모두 인공호이면서도 주변의 산세가 빼어나게 아름답고 숲이 울창해서 자연호수 같은 아름다움이 물씬 풍긴다. 특히 이맘때쯤엔 산벚꽃 산복사꽃 진달래 등이 앞다투어 피어남으로써 봄날의 풍정(風情)을 더욱 화사한 빛깔로 채색한다. 그러나 위봉사와 송광사 부근에서 이 길을 이용하려면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와 30번 국도의 화심사거리에서 왼쪽 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귀로에는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의 깊은 산중에 들어앉은 화암사를 들러볼 만하다. 신라 때에 원효 의상이 수도했다는 화암사는 절집의 운치도 좋지만, 절에 이르는 길도 퍽 인상적이다. 농로 같은 시멘트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조금 더 오르면 가파른 곡벽(谷壁)이 양 옆에 흘러내린 오솔길이 이어지는데, 특이하게도 사람들이 일부러 닦아 놓은 게 아니라 골짜기의 물길을 따라 저절로 생겨난 길인 듯하다. 몹시 비탈진 골짜기에는 수목이 무성하고 인적조차 드물어서 산새들의 부스럭거림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 일쑤다. 그야말로 산사를 찾아가는 길답게 적막하고 호젓하면서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산길이다.
도무지 절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산중턱에 자리한 화암사는 우선 번다(煩多)하지 않아서 좋다. 관광객은커녕 절간 사람들조차 눈에 띄지 않고 강아지 한 마리만이 꼬리를 치며 반긴다. 우화루(보물 제662호)와 극락전(보물 제663호), 그리고 두 채의 요사채에 둘러싸인 절 마당에 들어서면 뒤란의 늙은 매화나무에서 풍겨오는 매향(梅香)이 코끝을 진동한다.
제철을 만난 건 매화뿐만 아니다. 절 주변의 산비탈에는 한창 절정에 이른 진달래, 얼레지, 생강나무가 곱디고운 꽃빛과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시간도 잊은 채 절집의 청아한 분위기와 주변의 아름다운 봄빛을 자분자분 즐기다보니 어느덧 해가 설핏 기울기 시작했다.
전라북도 일대의 내로라하는 벚꽃 명소를 한꺼번에 다 돌아볼 요량으로 여명이 채 밝기도 전에 서둘러 길을 나섰다. 먼저 호남고속도로의 전주 나들목을 빠져나와 번영로(26번 국도의 전주~군산 구간)로 들어섰다. 흔히 ‘백리 벚꽃길’이라 일컫는 이 길에서는 이미 지난 4월8일부터 ‘벚꽃 축제’가 열리고 있는데도 막상 현지에 당도해보니 몇몇 나무들만이 듬성듬성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나마도 대부분 반쯤만 개화된 상태여서 눈이 부시도록 화사한 벚꽃 터널을 감상하려면 적어도 닷새에서 이레는 더 기다려야 될 성싶었다. 광막한 ‘징게 맹경 외애밋들’(김제 만경 너른 들)을 내달린 끝에 당도한 김제 금산사 입구의 벚꽃 터널도 마찬가지였다. 못내 아쉬운 발길을 돌려 전주시 북쪽의 송광사(0652-243-8091)로 향했다.
벚꽃이 만발하는 4월20일경의 송광사 동구 풍경은 하동 쌍계사와 흡사하다. 2km의 진입로 양편에 해묵은 벚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그 벚꽃길 옆으로는 맑은 냇물이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지리산과 섬진강이 얼싸안은 쌍계사의 ‘십리 벚꽃길’보다는 길이도 짧고 자연 풍광도 떨어지는 편이지만, 흐드러지게 핀 벚꽃은 봄날의 여심(旅心)을 돋우기에 모자람이 없다.
송광사는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의 종남산 기슭에 자리한 천년고찰이다. 오늘날에는 사세가 크게 위축되었지만, 절의 내력과 역사만큼은 같은 이름의 순천 송광사에 못지 않을 만큼 유구하다. 원래 이 절은 통일신라 때에 우리나라 선종불교의 시조인 도의선사에 의해 창건됐으나 오랫동안 폐허로 방치돼 오다가 조선 광해군 14년(1622)에 호국사찰로서 크게 중창되었다. 여태껏 남아 있는 대웅전(보물 제1243호), 종루(보물 제1244호), 소조사천왕상(보물 제1255호), 소조삼존불좌상(보물 제1274호) 등의 문화재도 모두 조선 중기 이후에 조성된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대웅전에 봉안된 소조삼존불상은 높이 5m의 거불(巨佛)인데다 나라에 중대사가 있을 적마다 땀을 흘리는 불상으로 유명해서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송광사 앞을 지나는 포장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조금만 달리면 위봉산성과 위봉사에 당도한다. 위봉산성은 전주 경기전에 봉안된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유사시에 옮겨서 보관하기 위해 조선 태종 7년(1407)에 쌓은 석성이다. 길이 16km의 성안에는 임금의 임시 처소인 행궁(行宮)과 45개의 우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반쯤 허물어진 성벽과 서문(西門)만 남아 있다. 옛 성안에 자리잡은 위봉사는 백제 무왕 때에 창건되었다는 고찰일 뿐만 아니라 일제 때에는 31본산의 하나로서 전북 지방의 46개 사찰을 관할하던 대찰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근래까지 거듭된 화재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탄데다가 지금도 대규모 중창불사가 계속되고 있어 고찰다운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이 절보다는 오히려 절 앞의 큰길가에 있는 위봉폭포의 장쾌한 위용이 볼 만하다. 오랜 가뭄 탓에 수량이 넉넉하진 않지만, 높이 60m의 암벽 아래로 기운차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노라면 세상사에 짓눌렸던 가슴이 확 트이는 듯하다. 또한 폭포 주변의 가파른 산비탈을 붉게 수놓은 진달래는 무르익은 봄날의 정취를 한층 북돋운다.
위봉폭포의 물줄기는 동상저수지로 흘러드는데, 이 동상저수지와 대아호를 끼고 달리는 749, 732번 지방도는 매혹적인 호반드라이브코스다. 두 곳 모두 인공호이면서도 주변의 산세가 빼어나게 아름답고 숲이 울창해서 자연호수 같은 아름다움이 물씬 풍긴다. 특히 이맘때쯤엔 산벚꽃 산복사꽃 진달래 등이 앞다투어 피어남으로써 봄날의 풍정(風情)을 더욱 화사한 빛깔로 채색한다. 그러나 위봉사와 송광사 부근에서 이 길을 이용하려면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와 30번 국도의 화심사거리에서 왼쪽 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귀로에는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의 깊은 산중에 들어앉은 화암사를 들러볼 만하다. 신라 때에 원효 의상이 수도했다는 화암사는 절집의 운치도 좋지만, 절에 이르는 길도 퍽 인상적이다. 농로 같은 시멘트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조금 더 오르면 가파른 곡벽(谷壁)이 양 옆에 흘러내린 오솔길이 이어지는데, 특이하게도 사람들이 일부러 닦아 놓은 게 아니라 골짜기의 물길을 따라 저절로 생겨난 길인 듯하다. 몹시 비탈진 골짜기에는 수목이 무성하고 인적조차 드물어서 산새들의 부스럭거림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 일쑤다. 그야말로 산사를 찾아가는 길답게 적막하고 호젓하면서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산길이다.
도무지 절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산중턱에 자리한 화암사는 우선 번다(煩多)하지 않아서 좋다. 관광객은커녕 절간 사람들조차 눈에 띄지 않고 강아지 한 마리만이 꼬리를 치며 반긴다. 우화루(보물 제662호)와 극락전(보물 제663호), 그리고 두 채의 요사채에 둘러싸인 절 마당에 들어서면 뒤란의 늙은 매화나무에서 풍겨오는 매향(梅香)이 코끝을 진동한다.
제철을 만난 건 매화뿐만 아니다. 절 주변의 산비탈에는 한창 절정에 이른 진달래, 얼레지, 생강나무가 곱디고운 꽃빛과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시간도 잊은 채 절집의 청아한 분위기와 주변의 아름다운 봄빛을 자분자분 즐기다보니 어느덧 해가 설핏 기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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