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07

1999.11.04

‘대통령 같은 부통령’ 될까

  • 강수진/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sjkang@donga.com

    입력2007-02-01 09: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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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치러진 인도네시아 대통령선거에서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52)가 부통령에 당선되자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54년만에 민주적 정권교체를 이룬 압두르라만 와히드 신임대통령이 아닌 부통령에게 관심이 온통 쏠린 것.

    메가와티가 부통령에 당선되자 전국에서 연일 계속되던 시위는 급격히 수그러들었고 주가도 5.5% 상승했다. 국민이 이처럼 메가와티에 열광하는 것은 이번 정권교체를 이루어낸 실질적인 주역이자 민심을 대변하는 지도자로 보기 때문.

    메가와티는 독립전쟁의 영웅이자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의 맏딸이다. 18세까지 대통령궁에서 곱게 자란 그녀는 66년 당시 육군사령관이었던 수하르토가 일으킨 무혈 쿠데타로 아버지가 권좌에서 물러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든 것은 83년, 두개밖에 없던 ‘관제야당’인 인도네시아 민주당(PDI)에 입당하면서부터다. 아버지의 후광을 업은 그녀는 93년 당총재가 된다. 메가와티가 반(反)수하르토 진영의 기수로 떠오른 것은 수하르토의 ‘자충수’ 덕분이었다. 수하르토는 자신에게 대항하는 메가와티를 ‘싹’부터 밟아 버리기 위해 96년 PDI내의 어용세력을 동원해 메가와티의 당수직을 박탈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오히려 메가와티는 독재정권으로부터 핍박받는 야당 지도자의 이미지를 굳히면서 ‘민주화의 상징’으로 국제적인 지명도를 얻었다.



    지난 6월 치러진 총선에서 그녀는 71년 이래 ‘만년 여당’으로 집권해 온 골카르당을 누르고 제1당으로 부상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같은 국민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내 대통령에 오르지 못했다. 700명 정원의 국민협의회(MPR)가 대통령을 뽑는 간접선거제도와 ‘여성대통령은 안된다’는 보수 이슬람세력의 벽에 부딪힌 것이었다.

    국민은 반발하기 시작했고 연일 유혈시위가 계속됐다. ‘메가와티냐 메가 폭동이냐’의 갈림길에서 MPR는 부통령으로 메가와티를 선출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부통령은 전례없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게 될 ‘실세’의 자리. 와히드 대통령은 시력을 거의 잃은데다 혼자서는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 부통령에게 업무의 상당부분을 맡겨야 하기 때문. 게다가 제4당 당수인 와히드는 정치적 기반이 취약해 메가와티에게 더 의존할 수밖에 없다. 메가와티는 사실상 정권을 잡은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수더분한 외모처럼 메가와티는 대립이나 투쟁을 싫어하는 원만하고 단순한 성격을 지녔다. 아버지의 카리스마나 현란한 연설솜씨도 없다. 그녀의 주변사람들은 “메가와티의 강점은 포용력이다. 그녀는 ‘배신’이라는 말을 모른다. 상대방에 대한 변치 않는 신뢰를 보임으로써 상대방을 감동시키고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자신을 지지했던 와히드가 불쑥 대통령후보로 직접 나서 ‘야권 후보 단일화’에 실패했을 때도 메가와티는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 선거운동 기간 단 한번도 와히드의 치명적인 약점인 건강 문제도 끄집어 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와히드는 대통령 당선 직후 “메가와티를 존경한다”고 밝혔고 와히드는 메가와티를 부통령후보로 밀었다.

    두번의 이혼 경력이 있을 만큼 메가와티의 가정생활은 순탄한 편이 아니다. 자녀는 2남1녀를 두고 있고 현재 남편은 그녀가 이끄는 민주투쟁당 의원이자 사업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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