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1

2016.06.08

한창호의 시네+아트

루브르 산책자가 들려주는 영광과 위험

알렉산드르 소쿠로프 감독의 ‘프랑코포니아’

  • 영화평론가 hans427@daum.net

    입력2016-06-07 15: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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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의 노장 알렉산드르 소쿠로프는 ‘미술관 산책자’다. 회화적인 화면 구성으로 유명한 그가 미술관에 애착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소쿠로프는 2001년 ‘긴 여정의 엘레지’를 통해 로테르담의 보이만스 판 보닌헨 미술관을, 그리고 2002년 ‘러시아 방주’를 통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다룬 적이 있다. 두 작품 모두 스토리가 있는 일반 영화와는 다르다. 소위 ‘에세이 필름’으로, 미술관에 대한 소쿠로프 자신의 사적인 생각들을 풀어놓은 작품이다. 특히 미술관을 통해 러시아 근대사 300년을 회고한 ‘러시아 방주’의 영향은 대단했다. 이후 미술관을 다룬 아트필름이 계속 발표됐고(이를테면 2012년 작 ‘뮤지엄 아워스’), ‘박물관이 살아 있다’(2006)처럼 상업영화도 나왔다.

    ‘프랑코포니아’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미술관일 프랑스 파리 루브르를 다룬다. 소쿠로프는 루브르의 광대한 역사를 모두 따르기보다 나치 점령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점령자로서 나치는 가는 곳마다 예술품 약탈이라는 만행을 저질렀는데, 루브르에서는 색다른 일이 벌어진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곧 점령자 나치마저 루브르의 예술에 감탄했고, 숭배했으며, 어떻게든 소장품들을 전쟁 피해로부터 구해내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이런 미담은 당시 미술관장과 나치 책임자 사이에 합의된, 예술에 대한 헌신적 사랑 덕분에 가능했다고 한다.

    ‘프랑코포니아’에 따르면 적국 예술품들에 점령국 책임자가 예의를 갖추고 존경심을 표현한 역사는 루브르가 유일하다. 이런 예외적인 미덕을 부각하고자 ‘프랑코포니아’는 ‘러시아의 보물’인 에르미타주 미술관이 나치에 의해 어떻게 무시되고 파손됐는지를 보여준다. 그림들이 약탈돼 빈 액자만 남은 에르미타주의 복도, 다 깨진 대리석 바닥은 치욕의 역사를 증언하고도 남는다. 중세 게르만족의 야만적인 반달리즘(Vandalism·예술품 파괴 행위)이 어처구니없게도 그들의 후예에 의해 반복된 것이다.

    이렇게 특별히 존경받은 루브르지만 ‘프랑코포니아’는 그 루브르도 제국주의적 야만행위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는다. 특히 나폴레옹 시기, 저 멀리 오리엔트에서 유적을 약탈해온 역사는 나치의 행위와 근본적으로 다를 게 없다. 나폴레옹은 ‘루브르의 유령’으로 등장해 전시된 작품들 앞에서 “전부 내가 했어”라며 자신의 행위를 자랑하듯 말한다. 나폴레옹에 따르면 ‘미술관이 곧 국가’다. 루브르가 없는 프랑스, 에르미타주가 없는 러시아를 상상하면 될 터이다. 말하자면 루브르는 프랑스의 품격 자체고, ‘루브르가 프랑스’다.

    하지만 ‘프랑코포니아’는 그런 존경의 대상인 루브르가 위험한 성격도 갖고 있음을 지적한다. 나폴레옹 시기가 잘 말하듯, 자부심이 넘친 나머지 배타적인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신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나친 사랑이 맹목적 숭배로 타락할 전체주의의 위험이 루브르에도 늘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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