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3

2007.07.10

변호사, 정의감과 수임료 사이

  • 이명재 자유기고가

    입력2007-07-04 19: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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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사, 정의감과 수임료 사이

    ‘시빌 액션’

    “당신은 아직도 아메리칸드림을 믿는가.”

    거액의 ‘바지 분실 소송’에서 이긴 미국 워싱턴의 한인 세탁업 주인에게 어느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흔히 땀과 노력으로 일군 정직한 자수성가를 뜻하는 ‘아메리칸드림’이지만, 이 경우에는 ‘정의의 실현’이라는 의미가 더 클 듯하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두 가지가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정의가 살아 있어야 정직한 노력이 보상받을 테니 말이다.

    평범한 한인 교포에게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안겨준 이번 사건은 ‘법은 정의의 도구’라고 하는 믿음(사실은 아닐지라도 아무튼 많은 사람이 그렇게 돼야 한다고 믿는다는 점에서)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미국 법률 문화를 특징짓는 것이 소송 만능주의인데, 이는 변호사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감과 닿아 있다. 법률가들을 조롱하는 우스갯소리만 모은 ‘변호사 농담(lawyer joke)’까지 있을 정도다. 흔하디흔한 변호사들은 ‘앰뷸런스 체이서(ambulance chaser)’라 불리며 의료사고 보상액을 치솟게 해 의료비까지 상승시키는 주범으로 꼽힌다.

    그런데 많은 영화에서 이 앰뷸런스 체이서가 영웅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소시민을 위해 거대 기업과 로펌에 맞서는 정의로운 인물로 나온다.



    지역주민을 위해 대기업과 환경소송을 벌이는 작은 로펌의 변호사 이야기를 그린 ‘시빌 액션(A Civil Action)’. 민사소송이라는 뜻의 이 영화에서 존 트라볼타가 연기하는 주인공은 ‘앰뷸런스 체이서’에서 공익 변호사로 변신한다. 실화를 다루고 있는 이 영화에서 소규모 법률회사가 미국 최대 규모의 로펌을 상대로 선전을 벌이는 모습은 흥미롭지만, 그렇다고 완승을 거두는 식의 극적인 장면은 없다. 또 주인공이 본래부터 정의파였던 것도 아니다. 돈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어떻게 하다 보니 공익 편에 서게 된 것이다.

    사회파 감독 시드니 루멧의 ‘평결(The Verdict)’ 주인공도 그런 점에서 ‘현실적인’ 인물이다. 한때는 잘나갔으나 이제는 낙오한 하층 변호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알코올중독 변호사가 타협을 모르는 ‘정의의 수호자’가 된 이유는 정의감이라기보다 큰돈을 쥘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이 진짜 현실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법과 법률가의 소임도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 대단한 정의감이 아닌 현실적인 동기에서 출발했다 해도 법률은 잘 쓰고자 한다면 정의의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럴 기회는 거대 기업 같은 사회 강자보다는 밑바닥 서민과 접촉할 일이 많은 앰뷸런스 체이서들에게 더 가까이 있을 것이다. 이러니 우리나라에서는 변호사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도 사법 정의를 이루는 것이라는 말이 지당할 수밖에.



    영화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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