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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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궁지에 몰린 쿠르드족 아이들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4-07-29 19: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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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궁지에 몰린 쿠르드족 아이들
    영화는 이따금 우리에게 숫자와 낱말들로 구성된 차가운 지식 이상의 것을 가르친다. 최근 나온, 전 세계 아트 하우스를 휩쓴 이란 영화들을 생각해보라. 이란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를 담은 그 영화들이 없었다면 과연 우리가 중동의 커다란 나라를 호메이니와 회교 혁명으로 상징되는 건조한 데이터 이상으로 볼 수 있었을까. 과연 우리가 그 나라에 살고 있는 평범한 소시민들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었을까. 아마 아직도 그 나라를 모래사장에 야자수가 하나 서 있는 엉뚱한 이미지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바흐만 고바디 감독의 영화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도 우리에게 그런 특별한 지식을 전달해준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쿠르드족에 대한 기본 지식 정도는 갖추고 있을 것이다. 터키, 이란, 이라크의 경계 지역에 살며 분리 독립을 위해 투쟁해온 민족이라는 것. 하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에서 살기 위해 어린아이들까지도 국경을 오가며 목숨을 건 밀수에 나선다는 사실을 알까. 그리고 밀수품 중에는 아이들이 쓰는 공책까지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추위를 견디기 위해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면서 지뢰가 깔린 국경을 넘는 쿠르드족의 노새와 말들에 대해 알고 있을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이란과 이라크의 국경 지대에 위치한 바네라는 마을에 사는 쿠르드족 아이들이다. 어린 나이인데도 시장 막노동과 밀수로 살아가는 아이들의 삶은 밀수꾼 아버지가 국경을 넘다 총에 맞아 죽으면서 더욱 엉망이 된다. 특히 큰아들이지만 병 때문에 서너 살 정도의 육체와 정신을 가진 마디는 수술을 받지 못하면 곧 죽는다. 둘째 아들인 아윱은 형의 수술비를 구하기 위해 밀수 일에 뛰어들고 큰딸인 누나는 마디를 돌봐준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국경 너머의 한 집안에 시집가기에 이른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마디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밀수꾼들과 함께 국경을 넘는 아윱의 처절한 모험담이다.

    둘째 딸 아메네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쿠르드족의 가난과 고통의 원인에 대해 따로 설명하지 않는다. 영화는 그저 초등학교를 다니는 어린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세상을 보여주며 그것으로 만족한다. 이란에서 제작된 최초의 쿠르드족 영화인 이 작품의 첫 번째 목표는 일종의 존재 선언이다. 그들이 세상에 살고 있고, 고통받고, 슬퍼한다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잔혹한 동화와도 같은 작품은 그것만으로 충분한 울림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아마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나중에 쿠르드족에 대한 뉴스를 들으면서 단순한 낱말 대신 아윱과 아메네와 같은 구체적인 얼굴과 이름들을 떠올린다면 영화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처절할만큼 아름다운 영화다. 밀수꾼들에게 끌려가는 말들이 술 취한 채 눈 덮인 국경을 넘는 장면은 보는 사람이 죄책감을 느낄 정도로 아름답고 강렬하다. 이런 미적 쾌감과 이야기의 교훈을 어떻게 결합해서 받아들이느냐는 어디까지나 관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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