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야 할 것은 고령화가 단기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업종이나 근무환경, 인력자원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대안을 수립해야 한다는 뜻이다. 해외 글로벌 기업이 운용해 그 실효성이 검증된 다양한 고령화 대책을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나이 많은 근로자가 가진 가장 큰 취약점은 무엇일까. 기업 현장에서 먼저 지적하는 부분은 변화 대응력이 떨어지고 개인 역량의 발전 없이 정체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고령 인력에 대한 체계적인 역량 개발 프로그램이 고령화 대응책의 핵심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변화하는 트렌드나 새로 등장하는 지식을 지속적으로 학습할 수 있게 하고, 개인별로 부족한 역량을 개발할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한다는 의미다.
적합한 환경 생산성 오히려 향상
이와 관련해 최지희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이 2012년 한 기고에서 분석한 독일 지멘스의 고령화 인력 역량 개발 프로그램 ‘컴퍼스 프로세스(Compass Process)’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프로그램 첫 단계는 자기 강점과 약점에 대해 상사, 동료, 고객으로부터 전면적인 피드백을 받고 워크숍 자리에서 분석해 구체적인 경력 개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경력 계획의 현실성을 경영진이나 인사팀과 검토한 뒤 그 결과에 따라 경력 개발을 진행하고, 수개월 후 2차 워크숍을 통해 개인별로 경력 계획 진척 상황이나 문제점을 점검해 추가 방안을 수립하는 방식이다.
참가자들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에서 얻는 가장 큰 수확은 동료의 피드백을 통해 자기 능력과 위치를 재발견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수행할 수 있는 임무를 발견하고, 진로 계획 등을 수립하는 동안 전직도 추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구성원의 고령화가 반드시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고령 인력에게 적합한 작업 환경을 구축하면 그들의 생산성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향상시키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독일 딘골핑에 자리한 BMW 공장은 2007년 당시 39세였던 근로자 평균연령이 2017년 47세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그에 맞춰 조립라인과 프로세스를 재설계했다. ‘2017 에르고노믹스(Ergonomics·인체공학)’라는 이름의 이 프로젝트는 총 70개에 걸쳐 개선점을 찾아냈다. 충격을 줄여 무릎에 무리를 적게 주는 나무 바닥, 신체 피로를 줄여주는 이발소식(式) 의자, 시력이 나쁜 근로자의 불량품 발생률을 줄이는 확대경 등 고령 인력의 근무 효율을 높이는 여러 장치를 고안해 도입했다.
대략 5만 달러 내외 비용이 투입된 이 프로젝트는 해당 공장의 연간생산성을 7% 끌어올렸고, 결근율은 동종업계 평균 수준이던 7%에서 2%까지 떨어졌다. BMW는 딘골핑 공장의 사례를 미국, 독일, 호주 등 다른 공장에도 도입할 계획이다.
바리스타 교육을 마친 실버 바리스타들이 채용박람회에 마련된 부스에서 직접 만든 커피를 시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왼쪽). 미국의 한 노인복지시설에서 일하는 노인 근로자들.
영국 통신회사 브리티시텔레콤(BT)은 ‘균형 달성(Achieving Balance)’이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통해 고령 근로자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게 근무 형태를 선택한 뒤 단계적으로 업무를 줄여나갈 수 있게 했다. 이 프로그램은 모든 근로자가 활용할 수 있지만 특히 고령 인력이 많이 활용하는 편이다. 크게 △Wind Down(개인 시간을 늘리고 업무 시간을 줄임) △Step Down(책임과 권한이 좀 더 작은 직무로 변경) △Time Out(최대 2년까지 휴직 또는 안식년 선택) △Helping Hands(최대 2년까지 자선단체 파견 근무) △Ease Down(단계적으로 책임과 권한 단계를 낮춰 근무) 등 5가지 단계로 업무량을 조절할 수 있다. 이것으로 구성원은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근무 형태를 찾아 몰입해 근무할 수 있고, 기업은 비용을 낮추면서도 고령 인력의 숙련된 기술과 경험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미국 컨설팅 기업 부즈앨런해밀턴은 정보 교류와 사내 소통을 강화할 목적으로 ‘헬로바닷컴(Hellobah.com)’이라는 사이트를 개설, 운영했다. 이 사이트는 블로그 등을 통해 활발한 정보 교류를 유도함으로써 고객사나 자택 등에서 근무하는 원거리 직원을 연결하는 허브 구실을 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사내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는 작업이 단순히 정보 흐름을 개선하는 효과뿐 아니라 세대 간 소통을 강화하는 구실도 한다는 사실이다.
‘경험 중시’ 문화가 선결과제
이 공동의 장에서 고직급 세대는 자신의 노하우와 비즈니스 정보를 젊은 세대와 즐겁게 공유하고, 신세대 구성원은 고령 인력에게 사이트를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줬다. 교류를 통해 신세대 구성원은 고령 인력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강화할 수 있었고, 고령 인력도 변화에 좀 더 빨리 대응하는 역량을 키울 수 있게 된 셈이다.
앞서 말한 선진국 우량 기업의 고령 인력 활용 방식을 효과적으로 적용하려면, 고령자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고 이들의 기술과 연륜을 인정하는 ‘경험 중시’ 문화를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한 선결과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캠페인이나 표어를 통해 주입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부즈앨런해밀턴의 경우처럼, 고령 인력이 다른 세대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한 토대 위에서 고령화에 대비한 기업의 다른 제도적 개선도 비로소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