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종류의 거짓말이 있고, 우리는 보통 하루에 몇 번쯤 거짓말을 하거나 듣는다. 좋은 의도로 한 거짓말이 있고 악의에서 비롯된 것도 있다. 하지만 대개는 남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는 사소한 거짓말이다.
역사를 뒤바꾼 거짓말도 있다. 2002년 9월 8일 ‘뉴욕타임스’는 ‘익명의 국방부 관계자 증언’을 근거로 이라크가 핵미사일을 포함한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나섰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1면 톱기사였다. 이날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콜린 파월 국무부 장관,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부 장관은 이 신문을 들고 연이어 기자회견을 했다. 그리고 이듬해 3월 20일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런데 전쟁 개시 2년 후인 2005년 ‘뉴욕타임스’는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개발 의혹을 제기한 기사가 오보였음을 밝혔다. 이른바 ‘여기자 주디스 밀러 오보 사건’이다.
제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을 부른 아돌프 히틀러도 역사를 비극으로 몰고 간 거대한 거짓말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인종 간 우열이 있다” “게르만족은 위대하고 유대인은 열등한 민족이다” 같은 거짓 주장 말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 유럽 중세시대에는,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고한 사람을 마술을 부리고 악마를 숭상하는 마녀로 몰아 죽이는 ‘마녀사냥’이 있었다. 이 같은 역사는 사람들이 황당무계하고 허무맹랑한 거짓말에 의외로 잘 속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오늘날 발달한 인터넷과 모바일은 ‘거짓말 속도’를 상상 이상 수준으로 높여 놓았다. 이뿐 아니라 ‘스캔들(추문) 범위’에서 공적 영역과 사적 공간의 경계를 없애버렸다. 당신에 대한 누군가의 음해가 당신을 순식간에 범국민적 ‘진상남’이나 ‘진상녀’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첨단의 ‘신상털이’ 덕분에 익명성 뒤로 숨는다는 건 이제 거의 불가능해졌다.
덴마크 영화 ‘더 헌트’는 거짓말에 대한 훌륭한 우화다. 사소한 거짓말이 흉흉한 스캔들이 되고, 그것이 한 개인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과정을 섬세하고 흥미진진하게 묘사했다. 관객은 이 영화를 통해 단순히 거짓말의 위험성뿐 아니라, 어떤 사회적 조건과 환경하에서 거짓말이 파국의 근원이 되고 ‘마녀사냥’ 불씨가 되는지를 깨달을 것이다.
덴마크 한 시골 마을에 사는 유치원 교사 루카스(마스 미켈센 분)가 주인공이다. 아내와 이혼한 뒤 고향으로 내려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유치원에서만큼은 아빠처럼, 삼촌처럼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성실하고 자상하며 명랑한 교사다. 매일같이 함께 뒹굴고 장난치며 즐겁게 지내니 유치원 꼬마들도 루카스를 무척 잘 따른다.
‘마녀사냥’ 불씨 되는 거짓말 해부
어린 소녀 클라라(안니카 베데르코프 분)도 그중 한 명이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힘이 돼주는 루카스를 아빠 이상으로 좋아하는 클라라는 선물과 입맞춤 공세로 애정을 표한다. 하지만 루카스는 클라라에게 “선물은 친구에게 주고 입을 맞추는 건 엄마, 아빠한테나 하라”고 타이른다. 시무룩해진 클라라는 유치원 원장에게 거짓말을 한다. 루카스 선생님이 싫다고. 그러면서 멍청하고 못생겼고, 자신과는 다르게 ‘고추’가 달렸다고 얘기한다. 유치원 원장이 놀라서 “루카스 선생님이 네게 벗은 몸을 보여줬느냐”고 묻자 클라라는 아무 생각 없이 “그렇다”고 답한다.
클라라가 엉겁결에 지어낸 거짓말이 루카스의 아동 성추행 의혹으로 뒤바뀌고 그 파장은 일파만파 번진다. 유치원 원장은 경찰에 진상 조사를 의뢰하는 한편, 학부모를 소집해 의혹을 알리고 또 다른 원생에게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지 묻는다. 루카스의 혐의는 오로지 어린 소녀의 말 한마디에 의존한 것이고,경찰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루카스는 이미 파렴치한 성범죄자 취급을 받는다. 거짓말은 전염병처럼 삽시간에 퍼지고, 스캔들은 ‘사실’로 굳어진다. 루카스는 마을 사람들의 냉대와 폭력에 시달렸으며, 전처에게서 아들을 데려와 살려는 계획도 물거품이 된다. 새롭게 사귄 유치원 동료 여교사와의 관계도 위기에 빠진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루카스의 일상을 무너뜨린다.
비극의 발단은 물론 어린 소녀의 허황된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거짓말 자체가 아니라 거짓말을 ‘괴물’로 키우는 사회적 조건이다. 클라라의 말을 최초로 접한 유치원 원장과 이를 전해들은 마을 주민들은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철저히 믿는다. 이는 편견이다. 어린이는 대부분 본 대로 들은 대로 얘기하지만, 아동기에는 ‘상상과 현실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시기’가 있다는 것 또한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이다.
‘공인된 권력’이 거짓말 방조
편견이 싹틔운 거짓말에 대한 믿음은 사회에 만연한 공포와 불안을 먹으며 나무가 되고 숲이 된다. 어린이나 여성 등 약자를 상대로 한 흉악 성범죄가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이나 방송을 장식하는 흉흉한 시대. 영화에서 무고한 루카스를 ‘변태 성욕을 가진 괴물’로 만든 것은 어린 자식을 둔 부모들의 불안과 공포였다.
얼마 전 가수 타블로는 학력이 위조됐다고 주장한 일부 네티즌의 공세에 시달렸다. 결국 네티즌의 의혹은 거짓으로 판명 났고, 타블로의 미국 스탠퍼드대 졸업은 사실로 확인됐다. 타블로의 학력 논쟁은 “일개 가수가 명문대를 그토록 빠른 학업 기간에 졸업할 수 없다”는 편견이 씨앗이 됐으며, 학력지상주의 사회의 불안과 피해의식이 의혹을 눈덩이처럼 불리는 자양분이었다. 마녀사냥과 유대인 학살, 이라크 침공 역시 권력의 거짓말이 대중의 불만과 공포, 분노를 먹이로 삼은 결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짓말로 인한 비극 뒤에는 이를 방조하거나 조장한 ‘공인된 권력’이 있었다. 영화 속에선 ‘유치원 원장’, 마녀사냥에선 기독교 권력, 유대인 학살에선 나치독일, 이라크 침공에선 미국 조지 W 부시 정권이었다. 우리 사회는 거짓말과 스캔들로부터 얼마나 안전할까.
역사를 뒤바꾼 거짓말도 있다. 2002년 9월 8일 ‘뉴욕타임스’는 ‘익명의 국방부 관계자 증언’을 근거로 이라크가 핵미사일을 포함한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나섰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1면 톱기사였다. 이날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콜린 파월 국무부 장관,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부 장관은 이 신문을 들고 연이어 기자회견을 했다. 그리고 이듬해 3월 20일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런데 전쟁 개시 2년 후인 2005년 ‘뉴욕타임스’는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개발 의혹을 제기한 기사가 오보였음을 밝혔다. 이른바 ‘여기자 주디스 밀러 오보 사건’이다.
제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을 부른 아돌프 히틀러도 역사를 비극으로 몰고 간 거대한 거짓말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인종 간 우열이 있다” “게르만족은 위대하고 유대인은 열등한 민족이다” 같은 거짓 주장 말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 유럽 중세시대에는,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고한 사람을 마술을 부리고 악마를 숭상하는 마녀로 몰아 죽이는 ‘마녀사냥’이 있었다. 이 같은 역사는 사람들이 황당무계하고 허무맹랑한 거짓말에 의외로 잘 속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오늘날 발달한 인터넷과 모바일은 ‘거짓말 속도’를 상상 이상 수준으로 높여 놓았다. 이뿐 아니라 ‘스캔들(추문) 범위’에서 공적 영역과 사적 공간의 경계를 없애버렸다. 당신에 대한 누군가의 음해가 당신을 순식간에 범국민적 ‘진상남’이나 ‘진상녀’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첨단의 ‘신상털이’ 덕분에 익명성 뒤로 숨는다는 건 이제 거의 불가능해졌다.
덴마크 영화 ‘더 헌트’는 거짓말에 대한 훌륭한 우화다. 사소한 거짓말이 흉흉한 스캔들이 되고, 그것이 한 개인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과정을 섬세하고 흥미진진하게 묘사했다. 관객은 이 영화를 통해 단순히 거짓말의 위험성뿐 아니라, 어떤 사회적 조건과 환경하에서 거짓말이 파국의 근원이 되고 ‘마녀사냥’ 불씨가 되는지를 깨달을 것이다.
덴마크 한 시골 마을에 사는 유치원 교사 루카스(마스 미켈센 분)가 주인공이다. 아내와 이혼한 뒤 고향으로 내려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유치원에서만큼은 아빠처럼, 삼촌처럼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성실하고 자상하며 명랑한 교사다. 매일같이 함께 뒹굴고 장난치며 즐겁게 지내니 유치원 꼬마들도 루카스를 무척 잘 따른다.
‘마녀사냥’ 불씨 되는 거짓말 해부
어린 소녀 클라라(안니카 베데르코프 분)도 그중 한 명이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힘이 돼주는 루카스를 아빠 이상으로 좋아하는 클라라는 선물과 입맞춤 공세로 애정을 표한다. 하지만 루카스는 클라라에게 “선물은 친구에게 주고 입을 맞추는 건 엄마, 아빠한테나 하라”고 타이른다. 시무룩해진 클라라는 유치원 원장에게 거짓말을 한다. 루카스 선생님이 싫다고. 그러면서 멍청하고 못생겼고, 자신과는 다르게 ‘고추’가 달렸다고 얘기한다. 유치원 원장이 놀라서 “루카스 선생님이 네게 벗은 몸을 보여줬느냐”고 묻자 클라라는 아무 생각 없이 “그렇다”고 답한다.
클라라가 엉겁결에 지어낸 거짓말이 루카스의 아동 성추행 의혹으로 뒤바뀌고 그 파장은 일파만파 번진다. 유치원 원장은 경찰에 진상 조사를 의뢰하는 한편, 학부모를 소집해 의혹을 알리고 또 다른 원생에게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지 묻는다. 루카스의 혐의는 오로지 어린 소녀의 말 한마디에 의존한 것이고,경찰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루카스는 이미 파렴치한 성범죄자 취급을 받는다. 거짓말은 전염병처럼 삽시간에 퍼지고, 스캔들은 ‘사실’로 굳어진다. 루카스는 마을 사람들의 냉대와 폭력에 시달렸으며, 전처에게서 아들을 데려와 살려는 계획도 물거품이 된다. 새롭게 사귄 유치원 동료 여교사와의 관계도 위기에 빠진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루카스의 일상을 무너뜨린다.
비극의 발단은 물론 어린 소녀의 허황된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거짓말 자체가 아니라 거짓말을 ‘괴물’로 키우는 사회적 조건이다. 클라라의 말을 최초로 접한 유치원 원장과 이를 전해들은 마을 주민들은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철저히 믿는다. 이는 편견이다. 어린이는 대부분 본 대로 들은 대로 얘기하지만, 아동기에는 ‘상상과 현실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시기’가 있다는 것 또한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이다.
‘공인된 권력’이 거짓말 방조
편견이 싹틔운 거짓말에 대한 믿음은 사회에 만연한 공포와 불안을 먹으며 나무가 되고 숲이 된다. 어린이나 여성 등 약자를 상대로 한 흉악 성범죄가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이나 방송을 장식하는 흉흉한 시대. 영화에서 무고한 루카스를 ‘변태 성욕을 가진 괴물’로 만든 것은 어린 자식을 둔 부모들의 불안과 공포였다.
얼마 전 가수 타블로는 학력이 위조됐다고 주장한 일부 네티즌의 공세에 시달렸다. 결국 네티즌의 의혹은 거짓으로 판명 났고, 타블로의 미국 스탠퍼드대 졸업은 사실로 확인됐다. 타블로의 학력 논쟁은 “일개 가수가 명문대를 그토록 빠른 학업 기간에 졸업할 수 없다”는 편견이 씨앗이 됐으며, 학력지상주의 사회의 불안과 피해의식이 의혹을 눈덩이처럼 불리는 자양분이었다. 마녀사냥과 유대인 학살, 이라크 침공 역시 권력의 거짓말이 대중의 불만과 공포, 분노를 먹이로 삼은 결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짓말로 인한 비극 뒤에는 이를 방조하거나 조장한 ‘공인된 권력’이 있었다. 영화 속에선 ‘유치원 원장’, 마녀사냥에선 기독교 권력, 유대인 학살에선 나치독일, 이라크 침공에선 미국 조지 W 부시 정권이었다. 우리 사회는 거짓말과 스캔들로부터 얼마나 안전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