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손이는 풍모가 워낙 이국적인 데다, 제주나 남쪽 섬에서는 해변가에서 자라지만 중부지방에선 대부분 분에 넣어 실내에서 키우는 식물입니다. 그래서 외국에서 들여온 수많은 관엽식물 가운데 하나려니 생각하는 분이 많지만, 실은 이 땅에서 절로 나고 자라는 우리 자생식물이랍니다. 팔손이 자생지는 경남 통영에서 배를 타고 다시 한참을 가다 보면 나오는 한산면 비진도입니다. 이 섬에는 크게는 4m까지 자라는 팔손이 자생지가 있는데, 천연기념물 제63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지요. 물론 인근 다른 섬에서도 팔손이를 볼 수 있지만 태풍 피해를 입기도 하고 사람들이 마구 캐어 내다 판 탓에 천연 자생지가 많이 줄었답니다.
이렇게 귀하디 귀한 팔손이를 그래도 남쪽지방 정원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건 1970년대 이순신 장군 전승지를 꾸미면서 함께 했던 이식사업이 성공한 덕분이라고 합니다. 어찌 됐든 아주 먼 섬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겨울이면 풍성한 우윳빛으로 꽃을 피우는 팔손이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지요.
씩씩하고 무성하게 자라서 언뜻 풀처럼 보이지만 사실 팔손이는 두릅나뭇과에 속하는 작은 키 나무입니다. 그것도 언제나 푸른 상록수지요. 어린아이 팔뚝 길이만한 잎이 8갈래로 갈라진 모양새 때문에 팔손이란 이름이 붙었다지만, 7개짜리 잎도 있고 9개짜리 잎도 있습니다. 겨울철에는 잎이 아래로 처지는데, 꽃을 더 돋보이게 하려는 잎의 배려일까요.
팔손이에게는 엉뚱하게도 인도 공주와 얽힌 이야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옛날 인도에 바스라라는 아름다운 공주가 살았는데, 어머니에게서 받은 예쁜 반지 2개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어느 날 공주 방을 청소하던 한 시녀가 반지들을 보고 호기심에 양손 엄지손가락에 하나씩 껴봤지요. 그런데 아무리 해도 뺄 수가 없자, 큰 벌을 받을까 두려워 다른 반지를 덧씌워 감춰버렸습니다. 상심한 공주를 위해 궁궐의 모든 이가 손을 내밀고 검사를 받게 됐고, 시녀는 엄지손가락 두 개를 감췄지요. 바로 그 순간 하늘에서 뇌성벽력이 떨어지면서 시녀는 한 그루 나무로 변했는데, 이 나무가 바로 팔손이라는 것입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듣고는‘그렇다면 이 식물 이름은 팔손이 아닌 팔손가락이 돼야겠네’ 하는 실없는 생각도 해봤답니다.
비진도에서는 팔손이를 총각나무라고 부릅니다. 마음속에 비밀을 간직한 채 잎새처럼 넓적한 얼굴로 환하게 웃는 섬 총각의 투박한 모습을 보는 듯하네요. 그래서인지 팔손이의 꽃말은 ‘비밀’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