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66) 여사. 퍼스트레이디와 상원의원을 지낸 힐러리 클린턴(64) 미국 국무장관. 두 여걸(女傑)의 만남은 ‘역사적’이라는 수식어가 모자랄 정도다. 미얀마 독립의 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딸인 수치 여사는 온몸으로 군사독재에 항거해온 투사다. 야당인 민족민주동맹을 이끌어왔던 수치 여사는 1989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21년간의 정치생활 중 15년을 가택연금 상태로 지냈다. 클린턴 장관의 정치경력은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만큼이나 화려하다. 남편의 임기 말인 2000년 11월 상원의원에 당선된 그는 2006년 재선에 성공했다. 2008년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나섰다가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에게 패배했고, 2009년부터 국무장관을 맡았다. 클린턴 장관은 11월 30일부터 12월 2일까지 미국 국무장관으로는 56년 만에 미얀마를 방문했다. 두 사람의 만남이 더욱 특별한 것은 이 때문이다.
정치범 석방 등 극적 변신
미국은 미얀마를 아직도 ‘버마’라는 국명으로 부른다. 1989년 국명을 바꾼 미얀마 군정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얀마의 통치체제는 3월 30일 테인 세인(66) 총리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군정에서 민정으로 바뀌었다. 세인 대통령은 철권통치를 해온 독재자 탄 슈웨 장군 밑에서 2007년 10월부터 총리를 지내며 수치 여사를 비롯한 민주화 운동가들을 탄압해왔던 군부의 제4인자였다. 지난해 총선에서 군복을 벗고 민간인 신분으로 의원에 당선됐던 세인이 대통령을 맡은 것도 군부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그랬던 세인 대통령이 갑자기 개혁주의자로 변신, 민주화 조치를 잇달아 단행하자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놀라고 있다. 실제로 세인 대통령은 10월 정치범 2100여 명 중 300여 명을 사상 처음으로 석방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설치, 노동조합 결성과 파업 허용, 언론과 인터넷에 대한 검열 완화, 평화적 집회 및 시위 허용 등 군정 치하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조치가 이어졌다. 특히 수치 여사의 정치활동을 막기 위해 수감자의 정당 활동을 금지했던 정당등록법도 개정됐다. 이제 민족민주동맹은 공식적으로 활동할 수 있으며, 수치 여사는 앞으로 실시될 의회 보궐선거에 출마할 것으로 보인다.
세인 대통령과 미얀마 정부가 이처럼 극적으로 변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세인 대통령 등 현 민정 지도부가 아랍 각국의 시민혁명으로 독재정권이 붕괴된 것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폐쇄적인 독재체제를 고집할 경우 정권 유지조차 힘들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끼고 과감하게 개혁조치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8월 수치 여사를 처음 만난 세인 대통령이 “정부와 불편한 관계에 놓인 정치세력과의 긴장 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수치 여사도 “세인 대통령이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다음으로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조치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로도 읽을 수 있다. 군부 제3인자였던 쉐 만 하원의장은 “미얀마는 미국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희망한다”면서 “양국관계 개선의 길은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미얀마 정부는 밀월관계를 맺어온 중국과 거리를 두겠다는 제스처도 보였다. 실제로 미얀마 정부는 9월 30일 중국 정부와 공동으로 이라와디 강에 건설 중이던 36억 달러 규모의 미트소네 댐 공사를 중지했다. 당시 우나 마웅 르윈 미얀마 외무장관은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워싱턴을 방문 중이었다.
끝으로 2014년 아세안 의장국이 되는 것을 계기로 국제사회 일원으로 복귀, 경제발전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전략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미얀마는 아시아 출신으로는 사상 첫 유엔 사무총장인 우 탄트(재임 1961~71년)를 배출하는 등 과거 아세안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천연가스를 비롯한 각종 자원의 보고인 미얀마로서는 국제사회와 적극 협력하는 전략이 경제 도약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
‘북한 지원받고 핵무기 개발’ 공개하나
거꾸로 워싱턴의 눈으로 보자면 클린턴 장관의 이번 방문은 적극적인 포용정책의 일환이다. 미국은 지금이야말로 미얀마 정부가 민주화 개혁조치를 더욱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도록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는 적대국과 대화를 통해 민주화 개혁을 유도한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독트린에도 부합한다. 미국은 또 미얀마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북한이나 쿠바 같은 다른 독재정권에게 메시지를 보내려는 의도도 갖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원한다면 민주화 개혁을 수용하라는 의미다.
물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중국에 대한 견제다. 그동안 중국에 일방적으로 치우쳤던 미얀마를 자국 편으로 끌어들일 경우 미국으로서는 중국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는 데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고, 친(親)중국 성향인 라오스와 캄보디아 등 다른 아세안 국가와의 관계도 강화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오바마 정부는 최근 몇 개월간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데릭 미첼 미얀마 담당 특사, 마이클 포즈너 국무부 인권 담당 차관보 등을 보내 미얀마 정부와의 대화에 공을 들여왔다.
클린턴 장관의 방문을 계기로 미국이 이른 시일 안에 미얀마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를 해제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워싱턴은 여전히 미얀마 정부의 진정성에 대해 의구심을 거두지 않는다. 클린턴 장관은 세인 대통령에게 모든 정치범을 석방하고 소수민족 반군과 대화에 나서는 등 민주화 개혁조치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을 주문했다. 미국은 또 북한과의 무기거래 중지, 인권탄압 중단 등도 함께 요구하고 있다. 특히 공화당 소속인 리처드 루거 상원의원은 미얀마가 북한 지원을 받아 핵무기 개발을 추진했다는 점을 완전히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얀마 정부가 이런 요구사항을 모두 수용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세계 최악의 독재자 중 한 명으로 불렸던 탄 슈웨 장군이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이다. 군부 출신 인사들이 만든 집권여당 통합단결발전당(USDP)은 의회를 완전히 장악한 상태고, 상하 양원 의석의 25%는 현역 군인이다. 국가 주요 기관의 핵심 요직도 모두 군부 출신인 데다, 헌법에는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대통령이 모든 권한을 군부에 넘기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세인 대통령과 미얀마 정부의 민주화 개혁조치 속도는 앞으로 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미얀마의 봄’은 아직 멀었지만, 그래도 봄이 오는 소리는 들리고 있다.
정치범 석방 등 극적 변신
미국은 미얀마를 아직도 ‘버마’라는 국명으로 부른다. 1989년 국명을 바꾼 미얀마 군정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얀마의 통치체제는 3월 30일 테인 세인(66) 총리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군정에서 민정으로 바뀌었다. 세인 대통령은 철권통치를 해온 독재자 탄 슈웨 장군 밑에서 2007년 10월부터 총리를 지내며 수치 여사를 비롯한 민주화 운동가들을 탄압해왔던 군부의 제4인자였다. 지난해 총선에서 군복을 벗고 민간인 신분으로 의원에 당선됐던 세인이 대통령을 맡은 것도 군부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그랬던 세인 대통령이 갑자기 개혁주의자로 변신, 민주화 조치를 잇달아 단행하자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놀라고 있다. 실제로 세인 대통령은 10월 정치범 2100여 명 중 300여 명을 사상 처음으로 석방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설치, 노동조합 결성과 파업 허용, 언론과 인터넷에 대한 검열 완화, 평화적 집회 및 시위 허용 등 군정 치하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조치가 이어졌다. 특히 수치 여사의 정치활동을 막기 위해 수감자의 정당 활동을 금지했던 정당등록법도 개정됐다. 이제 민족민주동맹은 공식적으로 활동할 수 있으며, 수치 여사는 앞으로 실시될 의회 보궐선거에 출마할 것으로 보인다.
세인 대통령과 미얀마 정부가 이처럼 극적으로 변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세인 대통령 등 현 민정 지도부가 아랍 각국의 시민혁명으로 독재정권이 붕괴된 것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폐쇄적인 독재체제를 고집할 경우 정권 유지조차 힘들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끼고 과감하게 개혁조치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8월 수치 여사를 처음 만난 세인 대통령이 “정부와 불편한 관계에 놓인 정치세력과의 긴장 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수치 여사도 “세인 대통령이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세계 최악의 독재자 중 한 명으로 불렸던 미얀마 군부의 실력자 탄 슈웨 장군.
끝으로 2014년 아세안 의장국이 되는 것을 계기로 국제사회 일원으로 복귀, 경제발전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전략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미얀마는 아시아 출신으로는 사상 첫 유엔 사무총장인 우 탄트(재임 1961~71년)를 배출하는 등 과거 아세안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천연가스를 비롯한 각종 자원의 보고인 미얀마로서는 국제사회와 적극 협력하는 전략이 경제 도약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
‘북한 지원받고 핵무기 개발’ 공개하나
거꾸로 워싱턴의 눈으로 보자면 클린턴 장관의 이번 방문은 적극적인 포용정책의 일환이다. 미국은 지금이야말로 미얀마 정부가 민주화 개혁조치를 더욱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도록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는 적대국과 대화를 통해 민주화 개혁을 유도한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독트린에도 부합한다. 미국은 또 미얀마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북한이나 쿠바 같은 다른 독재정권에게 메시지를 보내려는 의도도 갖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원한다면 민주화 개혁을 수용하라는 의미다.
물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중국에 대한 견제다. 그동안 중국에 일방적으로 치우쳤던 미얀마를 자국 편으로 끌어들일 경우 미국으로서는 중국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는 데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고, 친(親)중국 성향인 라오스와 캄보디아 등 다른 아세안 국가와의 관계도 강화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오바마 정부는 최근 몇 개월간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데릭 미첼 미얀마 담당 특사, 마이클 포즈너 국무부 인권 담당 차관보 등을 보내 미얀마 정부와의 대화에 공을 들여왔다.
클린턴 장관의 방문을 계기로 미국이 이른 시일 안에 미얀마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를 해제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워싱턴은 여전히 미얀마 정부의 진정성에 대해 의구심을 거두지 않는다. 클린턴 장관은 세인 대통령에게 모든 정치범을 석방하고 소수민족 반군과 대화에 나서는 등 민주화 개혁조치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을 주문했다. 미국은 또 북한과의 무기거래 중지, 인권탄압 중단 등도 함께 요구하고 있다. 특히 공화당 소속인 리처드 루거 상원의원은 미얀마가 북한 지원을 받아 핵무기 개발을 추진했다는 점을 완전히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얀마 정부가 이런 요구사항을 모두 수용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세계 최악의 독재자 중 한 명으로 불렸던 탄 슈웨 장군이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이다. 군부 출신 인사들이 만든 집권여당 통합단결발전당(USDP)은 의회를 완전히 장악한 상태고, 상하 양원 의석의 25%는 현역 군인이다. 국가 주요 기관의 핵심 요직도 모두 군부 출신인 데다, 헌법에는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대통령이 모든 권한을 군부에 넘기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세인 대통령과 미얀마 정부의 민주화 개혁조치 속도는 앞으로 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미얀마의 봄’은 아직 멀었지만, 그래도 봄이 오는 소리는 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