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빵엄마’ 노경희 지음/ 김령하 그림/ 동아일보사/ 198쪽/ 9800원
교복 치마 아래로 칼바람이 불어대던 중3 겨울이었다. 사시나무처럼 떠는 깡마른 여학생이 안쓰러웠던 걸까. 동네 풀빵 아주머니가 김 모락모락 나는 풀빵 하나를 건넸다. 우물쭈물 받아든 풀빵의 온기가 손끝을 타고 곧장 마음을 데웠다. 인정 넘치는 그 풀빵 아주머니를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훈훈해진다.
지난해 또 다른 ‘풀빵엄마’가 세상을 울렸다. 2009년 5월 방영된 MBC ‘휴먼다큐 사랑-풀빵엄마’(이하 풀빵엄마)의 최정미 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씩씩한 싱글맘이었다. 여덟 살, 여섯 살 아이를 풀빵을 팔아 키우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위암 말기 진단을 받은 뒤에도 아이들을 보살피느라 억척스레 풀빵기계를 돌렸다. 그런 그가 2009년 7월 숨진 사실이 같은 해 12월에 알려졌다. ‘풀빵엄마’의 뒷이야기를 다룬 재방송 때문이었다.
‘풀빵엄마’(동아일보사)는 다큐멘터리를 동화로 풀어쓴 책이다. ‘휴먼다큐 사랑’ 노경희 작가가 다큐멘터리 내용에 작가적 상상력을 보태 써내려갔다. 주인공 이름과 벌어지는 사건도 다큐와 다소 다르다. 하지만 이 책은 동화적 상상력에 그치지 않는다. 작가가 6개월간 고(故) 최정미 씨와 함께한 시간을 떠올리며 글을 쓴 까닭인지, 단순한 이야기와 문체지만 ‘풀빵엄마’의 숭고한 사랑은 어른의 가슴까지 사정없이 울린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늘 우리 인우 말썽 안 피웠나요?”
이야기는 3학년 ‘진주’가 1학년 동생 ‘인우’를 보살피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진주는 누나임에도 엄마 역할을 척척 해낸다. 동생의 담임교사와 면담을 하고, 꼼꼼하게 숙제를 점검한다. 진주가 부쩍 어른스러워진 것은 엄마가 세상을 등진 즈음부터다. 책은 딸 진주가 엄마와 보낸 마지막 반년간의 시간을 회상하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엄마는 언제나 풀빵이 다 팔려야 장사를 끝냈다. 아침에 준비해온 반죽을 그날 다 만들어 팔지 못하면 버려야 했기 때문이다.’…‘내가 몇 개라도 더 먹으면 장사가 더 빨리 끝나지 않을까.’ ‘진주는 한없이 초조한 마음에 풀빵을 몇 개씩 집어먹곤 했다.’
엄마는 늘 바빴고, 진주와 인우는 그런 엄마에게 놀아달라고 보채고 투정했다. 하지만 엄마가 아픈 뒤로 아이들은 조금씩 변해간다. 진주는 엄마 대신 이부자리를 깔고 동생 세수를 시키며, 개구쟁이 인우는 참는 법을 배우게 된다. 엄마를 잃은 뒤에도 생전 엄마가 남긴 사랑에 울고 웃으며 성장해간다.
다큐 ‘풀빵엄마’가 준 감동은 사랑이었다. 시청자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의연한 사랑 앞에 숙연함을 느꼈다. 일상적인 사랑은 그것을 잃기 전에 깨닫기 힘들다. 부족함 없이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경우에는 더 그렇다. 이 책을 덮은 철없는 어린이들은 잠깐이나마 코를 훌쩍이며 중얼댈 것이다.
‘우리 엄마 참 고맙다. 진주와 인우처럼 엄마를 잃고 싶지 않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