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드라마 ‘장난스런 키스’는 꽃미남 스타 김현중을 전면에 내세웠음에도 청소년 시청자의 눈길을 끌지 못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장난스런 키스’의 초반 실패 원인은 간명하다. 편성 시간대의 비극이다. 동일 시간대에 50% 가까운 시청률을 올린 KBS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 이 같은 초대박의 틈새를 채워줄 다크호스 드라마도 이미 시장에 안착한 상태였다. SBS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가 그 주인공. 꾸준히 10%대 시청률을 유지하며 고정 팬을 보유하고 있다. 또 솜사탕처럼 달콤한 트렌디물이라는 방향성에서 ‘장난스런 키스’와 일치해, 이 드라마가 비집고 들어갈 틈을 더욱 좁혔다. 두 드라마 모두 현재 종영했지만, ‘장난스런 키스’가 초반 바람몰이를 하지 못하게 한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장난스런 키스’의 시청률 비극은 단순히 편성 문제로만 볼 일이 아니다. 이 정도 편성 악재를 겪더라도 훌륭히 10% 이상을 올린 예가 많다. 더군다나 ‘장난스런 키스’는 이런 악재를 극복할 성공 요소를 충분히 지녔다. 지난해 초에 방영된 ‘꽃보다 남자’(평균 시청률 25.7%)와 올 초에 방영된 ‘공부의 신’(평균 시청률 21.6%)의 성공 공식을 곧바로 이은 것이 ‘장난스런 키스’이기 때문.
현실을 담지 못한 드라마
먼저 ‘장난스런 키스’는 ‘꽃보다 남자’ ‘공부의 신’과 같은 하이틴물이다. 따라서 두 드라마를 성공시켰던 청소년 시청자층을 집결시킬 수 있다. 또 두 드라마와 똑같이 일본 만화가 원작이다. 만화의 팬을 바로 TV로 몰고 올 수 있고, 원작과 시너지 효과를 내기도 수월하다. 금상첨화로 ‘꽃보다 남자’를 통해 스타덤에 오른 SS501 멤버 김현중이 남자 주인공으로 출연해 신뢰도를 높인다. 게다가 ‘꽃보다 남자’ 외주제작사 그룹에이트의 작품이어서 노하우도 풍부하다.
보통 이 정도 성공 공식을 가지고 있으면, 편성 상황이 어떻든 적어도 평균 시청률 10%대는 올린다. 그럼에도 이런 상황이라면, 여기부터는 드라마 성격상의 문제를 짚어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환경은 ‘꽃보다 남자’ ‘공부의 신’과 유사했지만 이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 청소년 시청자층 확보에 핵심이 되는 부분을 ‘장난스런 키스’가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가 ‘꽃보다 남자’ ‘공부의 신’과 다른 점은 뭘까. 사실상 하나밖에 없다. 앞선 두 드라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담았고, ‘장난스런 키스’는 아직까지 그런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계급 갈등에 대한 극단적 묘사가 두 드라마에는 있었다. ‘꽃보다 남자’는 경제적 측면에서 부유층 자녀의 횡포와 그에 당하는 서민층 자녀의 모습을 잔혹하게 담았다. ‘공부의 신’은 학력계급사회 중심인 대학입시를 모티프로 성적이 밑바닥인 문제아들의 상황을 담았다.
또 두 드라마는 ‘밑바닥 계급’ 청소년이 박차고 일어서는 과정을 담았다. ‘꽃보다 남자’의 금잔디는 부유층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핍박받고 굴욕당하면서도 당당히 맞서 마침내 재벌 2세의 마음까지 얻었다. ‘공부의 신’의 문제아들은 사실상 서울대인 천하대를 목표로 향학심을 불태우며 신분 상승을 위해 노력했고 그중 몇몇은 결국 천하대에 입학했다.
이는 명확히 경제불황기 청년 정서의 핵심인 ‘언더도그(underdog)’의 반영이다. 각박하고 답답한 사회 현실 속 청소년층의 피해의식을 고스란히 담아내면서도 계급 상승을 위해 분투하는 극복 의지를 담아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청소년층이 다시 TV 앞으로 모여들게 한 것도, 일본 만화 원작이니 청춘 로맨스니 하는 부분보다 동세대를 주인공으로 해 언더도그 정서를 정확히 건드려주었기 때문일 수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비단 TV 드라마에 머물지 않는다. 극예술 장르인 영화 쪽도 별반 다르지 않다. 1000만 명 이상 관객이 든 대박 영화는 모두 사회 지배계급으로부터 억압당하고 고통받는 주인공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계급적 열등에 대한 극복 의지 또한 명확히 표현해 언더도그 정서를 충족시켜 준다.
그런데 ‘장난스런 키스’는 이런 요소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부유층 자제에 성적도 우수하고 꽃미남인 소년과 서민층에서 태어나 공부도 못하고 외모도 평범한 소녀의 로맨스를 다루지만, 이를 계급적 갈등으로 끌고 가지 않는다. 즉, 마이너리티 정서를 자극하지 않는 것. 물론 계급 상황에 대한 극복 의지도 보여주지 않는다. 누군가와 싸우는 것도, 무엇을 쟁취하기 위해 분투하는 것도 없다. 다시 말해 언더도그 정서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 그저 신데렐라 판타지만 남아 있는 셈.
그리고 장기화된 경제불황 속에서 청년층은 이제 신데렐라 신드롬에 현혹되지 않고 ‘내가 자립해서 싸워나가야 한다’는 현실론을 받아들인다. 결국 1990년대 호황기식 신데렐라 혹은 캔디렐라 신드롬에서 벗어나지 못한 고교 판타지 ‘장난스런 키스’는 가장 핵심적인 측면에서 이미 ‘실패할 만했다’는 것.
유희적 쾌락 청년층 설득 어려워
일각에서는 ‘장난스런 키스’의 예상 밖 참패에 연출을 맡은 ‘황인뢰 PD 책임론’을 전개하고 있기도 하다. ‘한물간 감성’으로 승부하는 57세 ‘노장’ 감독 탓에 드라마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 황 PD로서는 억울한 비판일 수 있겠지만, 시대적 맥락으로 봤을 때 수긍이 가는 말이기도 하다. 황 PD는 1980년대부터 이른바 ‘예술적인 TV드라마’를 기치로 내세운 인물이다. 아름답고 감각적인 영상미를 추구하며, 고독하고 불우한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 묘사에 주력했다. 그 결과물이 ‘샴푸의 요정’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연애의 기초’ ‘고개 숙인 남자’ 등 아직도 우리 기억에 남아 있는 작품들이다.
문제는 그런 경향이 21세기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 드라마 ‘궁’까지는 황인뢰식 영상 중심 연출과 섬세하고 부드러운 터치가 먹혔지만, ‘돌아온 일지매’ ‘궁S’ 등으로 갈수록 시청자층이 겪고 있는 사회 현실, 그리고 대중 정서와 거리가 생겼다. 황 PD의 과거 드라마들은 여러 의미에서 ‘경제호황기 드라마’라 불릴 만했다. 경제불황기 문화 콘텐츠 특유의 극단적 정서와 격한 전개, 명확한 선악 구분, 사회적 콤플렉스를 집요하게 공략해 얻어지는 카타르시스 분출, 언더도그 정서 등 정반대 위치에 머물고 있다.
단순히 황 PD의 문제만도 아니다. 21세기 달라진 문화 환경과 대중 정서는 1980~90년대를 주름잡던 수많은 방송 인력을 차례로 도태시키고 있다.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이장수, 이진석, 장용우 등 스타 PD들의 신작은 시장에서 점차 외면받는 추세다. 2000년대 초만 해도 ‘화려한 시절’ 등에서 시청률 30%대를 올렸던 노희경 작가는 이제 ‘마니아용 작가’로 ‘낙인’찍힌 상태. 모두 황 PD와 많든 적든, 유사한 이유에서다.
물론 현재와 같은 TV 드라마 트렌드를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건 아니다. 어느 문화권에서든 최상의 시장이란 다양성이 확보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한국의 대중문화 시장은 늘 시대 상황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그에 준하는 궤를 그려왔다. TV 드라마도 마찬가지. 1980년대 고도성장기에는 기업드라마 등 근대극 열풍이 불었고, 1990년대 호황기에는 청춘 트렌디물이 인기였다. 결국 시대에 맞춰 변화하지 않고 자기 색깔을 고집하는 이상, 적어도 동시대성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청년층은 절대 설득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것.
오랜 기간 ‘장난스런 키스’를 준비해온 제작진 처지에선 현 상황에 아쉬움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 등 특정 계층을 타깃으로 삼는 드라마라면, 현시점 그 계층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디서 유희적 쾌락을 얻고 어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는 알아둬야 하지 않을까. 샤방샤방한 소년, 소녀가 키치적인 예쁜 배경에서 장난스럽게 키스하는 정도로는 청소년층의 마음을 빼앗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