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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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像은 내 것”

伊 정부 vs 피렌치 市 소유권 싸움 … 지자체 빈 곳간 채우기 위한 힘겨루기

  • 로마=김경해 통신원 kyunghaekim@tiscali.it

    입력2010-10-11 1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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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비드 像은 내 것”
    최근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을 놓고 피렌체 시장과 문화부 장관 사이에 소유권 다툼이 벌어졌다. 이 다툼은 이번 여름 폭염만큼이나 뜨거웠다. 마테오 렌치(Matteo Renzi) 피렌체 시장은 “피렌체 시가 다비드 상의 계승자”라고 주장했다. 반면 산드로 본디(Sandro Bondi) 문화부 장관은 “다비드 상의 소유권은 엄연히 중앙정부에 있다”고 일침을 놓았다. 이에 렌치 시장은 관련 고문서를 증빙해 소유권을 되찾겠다고 되받았다. 이처럼 갑자기 다비드 상을 놓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가 쟁탈전을 벌이는 이유는 뭘까.

    다비드 상은 연간 800만~1000만 유로의 관광수입을 올리는 예술품이다. 현재 이 조각상은 국립박물관인 피렌체의 갈레리아 델 아카데미아(Galleria dell’Accademia)에 전시돼 있다. 피렌체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다비드 상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몇 시간씩 줄서기를 감수한다. 1991년 한 정신장애인이 다비드 상 왼발의 엄지발가락을 망치로 내려친 사고가 있었으나 복구됐다.

    미켈란젤로가 1501~1504년에 제작한 다비드 상은 높이 4.1m(받침대부터 5.16m)의 거대한 조각상으로,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렌치 시장은 “막대한 박물관 수입이 고스란히 중앙정부로 넘어가고, 피렌체 시는 조각상 관리와 보존 등 경비만 맡는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즉 박물관 수입이라는 황금알은 로마의 중앙정부가 가져가고, 관광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치우는 궂은일만 피렌체 시가 떠맡는다는 것.

    피렌체 市 “황금알 빼가고 청소만 시켜”

    그러나 문화부 장관의 의뢰를 받은 국가 변호사들의 입장은 확고부동하다. 다비드 상의 소유권은 수세기 동안 피렌체를 통치한 대공과 왕족을 거쳐왔다. 즉 메디치 가문에서 로레나 가문, 사보이아 왕가를 거쳐 현재의 중앙정부로 이어졌다는 것. 피렌체 시는 1771~1783년 대공국 시대에 생겨났다. 다비드 상이 주문 제작된 건 그보다 270여 년 전으로, 피렌체 시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렌치 시장은 “역사를 들먹이자면 제대로 과거사를 짚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4세기간 베키오 궁(Palazzo Vecchio)에 전시됐던 다비드 상은 1871년 보존 문제로 피렌체의 현 장소로 옮겨왔다. 1861년 이탈리아 반도가 통일된 뒤 4년간 임시 수도였던 피렌체 시에서 1871년 로마로 수도가 이전되면서, 이에 따른 보상으로 피렌체 시가 베키오 궁과 다비드 상을 포함한 궁의 소장품 전부에 대한 소유권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현재 베키오 궁은 피렌체 시청 청사로 사용된다. 렌치 시장은 “관련 증빙서류가 그대로 있다”며 “문화부 장관이 이를 모를 리 없다”고 강조했다.

    “다비드 像은 내 것”

    다비드상 과 함께 피렌체 시가 소유권을 주장하는 베키오 궁. 아래 사진은 마테오 렌치 피렌체 시장.

    여기서 의문점 하나. 그렇게 케케묵은 일을 2010년에 어떻게 증명할까. 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이탈리아 각 도시에는 수백 년 전 고문서를 모두 체계적으로 보존하는 전통이 철두철미하게 지켜지고 있다. 20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니 200년 전 정도는 ‘현대사’로 생각할 만큼 시간에 대한 관념이 다르다. 이탈리아 사람들과 역사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1800년대 일은 현대사로 간주하는 것에 놀란다. 또 국민 대부분이 아마추어 역사가라 할 정도로 역사에 대한 안목이 깊다.

    갑작스레 이런 논쟁이 벌어진 이유는 결국 돈이다. 최근 베를루스코니 중앙정부가 지자체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 예산 부족으로 쩔쩔매는 각 도시의 시장들은 어떻게 시청 금고를 채울지 골머리를 앓고 있다. 피렌체 시의 부채는 2008년 기준, 시민 1인당 1991유로로 조사됐다. 중앙정부가 ‘돈줄’을 자른 뒤 돈이 될 만한 대안을 찾다 보니,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다비드 상의 상품가치가 훌쩍 올라간 것.

    그런데 다비드 상의 소유권 주장은 한여름 반짝하는 논쟁을 떠나, 역사상 전례를 남길 수 있는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즉 통일 전 도시국가로 분열됐던 각 도시가 먼지 쌓인 고문서를 들춰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에 문화계 인사들은 “르네상스 예술의 상징인 다비드 상이 이탈리아 문화 화합을 도모해야지, 분열을 초래해선 안 된다”고 한목소리로 주장했다.

    또 현 정부가 적극 추진 중인 조세 연방제에 이어 문화제 연방제까지 거론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없지 않다. 피렌체 시에 질세라, 잔니 알레만노(Gianni Ale manno) 로마 시장은 콜로세움 입장 수입을 탐내고 있다. 콜로세움의 소유권은 국가에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연간 3500만 유로에 이르는 입장료 수입의 일부라도 로마 시에 달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움베르토 브로콜리(Umberto Broccoli) 로마 문화재국장은 아예 입장료를 1~2유로 올려 사이좋게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나눠먹자는 제안을 했다. 다행히 문화부는 “불가능하다”고 싸늘하게 답변했다.

    입장료 올려 사이좋게 나눠먹자?

    피렌체 시장은 본디 문화부 장관을 직접 만나 소유권 담판을 짓자고 했다. 현재 문화부는 강경하던 태도를 누그러뜨리고, 피렌체 시와 다비드 상을 공동 관리하는 안을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고 운을 띄우고 있다.

    1962년 이탈리아 희극배우 토토가 주연한 영화 ‘토토, 사기’는 말재주 하나로 로마의 트레비 분수를 미국 관광객에게 1000만 리라(현 가치 780억 유로로 추정)에 팔아넘긴 황당한 이야기다. 이후 5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이 이야기는 올여름 매우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돈만 되면 뭘 못하겠는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을 둘러싼 힘겨루기는 올가을 2라운드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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