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수 군, 이승노 군, 김경인 양(왼쪽부터).
이승노 군은 중학교 시절 씨름을 했다. 씨름선수 출신인 아버지를 닮아 유달리 크고 힘이 센 이군을 눈여겨본 씨름부 선생님이 스카우트한 것이다. 2교시 수업을 마친 뒤 종일 모래판에서 뒹굴고 운동장을 뛴 까닭에 중학교 성적은 반에서 중간 정도.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운동 대신 공부를 하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공부에만 매달렸다. 책상에 앉은 뒤부터 이군의 지구력과 체력이 빛을 발했다.
한곳에 몰입 공부 스트레스 저절로 해소
서울대 미식축구부. 우승이란 공통의 목표 아래 똘똘 뭉친 경험이 사회에 나간 뒤에도 성공하는 밑거름이 된다.
공부에 맛을 들인 뒤 성적은 전교 30등 안으로 치솟았다. 하지만 전교 1, 2등을 다투는 실력으로 끌어올려준 비결은 여느 아이처럼 ‘영수국 중심의 철저한 예습, 복습’이 아니었다. 그 비결은 바로 사물놀이였다.
“공부만 하니까 슬슬 답답해졌어요. 그때 학교 사물놀이패에 가입해 미친 듯이 북을 쳤습니다. 사물놀이패 부장까지 맡아 전국 규모 대회에 나가 입상하기도 했지요.”
공부하느라 쌓인 스트레스를 신명 나는 우리 가락으로 푼 이군의 성적은 떨어지지 않았다.
이승노 군의 단짝인 이지수 군의 공부 친구는 오답노트도, 참고서도 아니다. 즐겨 치던 피아노와 즐겨 듣던 클래식 음악이 험난한 수험생활을 달래주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피아노를 쳤어요. 당시 인기 드라마 ‘파리의 연인’을 보는데, 주인공 박신양이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피아노를 치는 모습에 반했어요. 피아니스트를 꿈꾸진 않았지만 시간이 날 때면 피아노 치며 마음을 달랬어요.”
수험생활에 지쳐 감성이 메말라가는 친구가 하나씩 늘 때도 이군은 음악방송반 활동을 하며 감성을 키웠다. 방송반에서 클래식, 뉴에이지 음악을 맡아 신청곡을 틀어주고 좋은 곡은 추천도 하며 친구들의 스트레스까지 덜어주었다.
“공부만 하는 아이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축구에도 열심이었다. 중학교 시절 주말이면 아침부터 밤까지 운동장에서 공을 찼다. 점심도 조기축구회 아저씨들이 싸온 음식을 나눠 먹으며 해결했다. 고교 시절에도 쉬는 시간, 점심·저녁 시간 모두 운동장에서 공을 찼다. 담임교사는 축구 금지령까지 내렸지만 이때 쌓은 체력이 수험생활의 든든한 보험이 됐다.
어릴 때부터 피아니스트를 꿈꾸었던 김경인 양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좋아하는 음악활동을 마음껏 누렸다. 중학교 시절에는 오케스트라 활동을, 고교 시절에는 합창단 반주를 했다. 40여 명이 모인 동아리 활동은 김양의 재산이 됐다.
“음악이란 공통분모를 갖고 모인 친구들과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어 힘든 시기를 수월하게 보냈어요. 서로 화음을 맞춰가며 저를 죽이고 상대를 살렸던 경험도 제 존재의 키를 키웠어요. 또 공부 잘하는 선배들을 가까이서 보며 동경하고, 그리고 선배들에게 공부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었던 점도 음악 동아리의 매력이에요.”
김양은 대회를 준비하느라 점심을 거른 채 연습하기도 하고 수업을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동아리 활동을 하니 공부도 챙겨야 한다는 위기감이 김양을 스스로 책상 앞에 앉게 했다. 열정적으로 했던 동아리 활동이 결국 합격의 결정적인 한 방이 된 셈이다.
“동아리 활동 보고서를 본 면접관이 ‘동아리 활동 시간이 아깝지 않느냐. 일에만 집중하는 사람과 취미생활을 병행하는 사람 중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하느냐’고 물었어요. 저는 주저하지 않고 일도 놓치지 않으면서 여유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답했어요. 면접관이 그 대답과 태도에 무척 만족했지요.”
격렬한 운동 통해 공부 자신감 충전
국영수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취미생활도 즐기며 씩씩하게 수험생활을 한 이들은 미식축구부에서 만났다. 대학생에게 국영수 같은 존재인 취업 동아리 대신 운동 동아리를 선택한 데도 이유가 있었다.
“격렬한 운동이라 부상이 많아요. 취업 준비생인 선배가 어깨를 다쳤는데 입원을 미루고 팀을 위해 경기를 뛰었어요. 취업 면접을 생각하면 몸이 우선일 텐데, 팀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선배들을 가까이에서 보며 더 큰 것을 배우고 있어요.”(이지수)
당장 점수로 환산되지 않지만 이들은 운동 동아리를 통해 리더십, 배짱, 열정, 끈기, 우정 등을 배우고 있다. 정해진 시간 운동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체력도 기르니 전공과목을 공부하는 데도 자신감이 붙었다. 공부 부담감에 지친 후배들에게 이들이 조언을 남겼다.
“이만큼 공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도리어 공부할 의지를 떨어뜨린다. 깊게 파려면 결국 넓게 파야 한다. 팔방미인이 되겠다는 각오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김경인)
“공부가 좋아서 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즉 공부를 하며 쌓인 스트레스를 생산적으로 풀 취미는 저마다 찾아야 한다.”(이지수)
“공부에 목숨을 안 걸었더니 비로소 성적이 따라왔다. 수험생활을 즐길 때 신나서 공부할 힘도 생긴다.”(이승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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