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영어, 수학은 이론적인 측면이 많지만 가정은 우리 생활과 맞닿아 있는 과목이라고 생각했어요. 학교에서 배우고 나서 어떤 음식을 먹을 때 건강해지는지, 교복 단추나 밑단을 수선할 때 어떤 바느질법으로 해야 하는지 등을 바로 적용할 수 있어 재미있었습니다. 얼룩진 옷을 빨 때도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적용하면 해결되니까 흥미로웠죠.”
아직도 중·고교 때의 가정 교과서와 필기노트를 버리지 않았다는 박민지 양. 박양은 “나중에 결혼해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유아의 발달단계를 살펴보거나 균형 잡힌 식단을 짤 때도 이걸 참고해야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 1학년에 재학 중인 박양은 다섯 살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다쳐 장애 2등급 판정을 받았다. 때문에 다른 친구들처럼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형편이 안 됐다. 하지만 박양은 어려운 환경에서 혼자 공부하며 2010학년도 대입에서 학생부 4개 교과 석차 1.32등급을 받았다. 서울대 입학사정관제, 이화여대 고교 추천, 성균관대 학업우수자, 서울교대 기회균형 전형으로 4개 학교에 동시 합격했고, 최종적으로 서울대를 택했다.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은 영어와 수학 위주로 선행학습을 했어요. 하지만 학원을 다니지 않았던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흥미가 닿는 대로 공부를 했죠.”
친구들이 학원에 가서 영어, 수학에 ‘올인’하는 동안 박양은 영수국뿐 아니라 사회, 가정, 국사 등을 챙겨 공부했다. 고등학생이 돼서도 이 습관을 버리지 않았다. 친구들이 “주요 과목만 하면 되지, 그걸 다 해서 뭐 하냐?”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박양은 ‘다른 과목을 두루 공부하니 더 폭넓게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제가 하고 싶은 특정 공부는 대학교 때도 가능하지만 가정이나 국사, 지리는 이때 아니면 언제 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솔직히 영수국보다 재미도 있었고요(웃음).”
수업시간에 충실…학생회장 하며 교내외 활동
박민지 양은 고교 시절 총학생회장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고, 이는 서울대 수시전형에서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총학생회장으로서 급식 모니터링을 하는 모습(위)과 조회 시간에 학생회 임원들과 함께 폭력 추방 결의대회를 하고 있는 모습.
“고등학교의 모든 과목은 중학교 때 배운 내용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영수국뿐 아니라 사회, 과학, 도덕, 기술·가정 모두 그렇죠. 중학교 때부터 영수국 외의 과목도 공부하는 습관을 들였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도 부담 없이 공부할 수 있었어요.”
음악, 체육 등 실기 비중이 높은 과목은 점심시간이나 저녁 때 운동하며 논다는 생각으로 친구들과 연습했다. 다행히 2명 이상이 하는 종목인 배드민턴이나 탁구, 배구 등이 실기시험 과목이었다.
“언어 영역 모의고사에 ‘기술가정’ 시간에 배운 자전거와 자동차의 작동원리에 대한 문제가 출제된 적이 있어요. 친구들은 ‘왜 이런 게 언어영역에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이해하고 푸느냐’며 짜증을 냈지만, 저는 예전에 배운 내용이 기억나 수월하게 풀 수 있었죠. 한번은 음악 수업 때 배운 화성이론이 출제됐어요. 이처럼 언어나 외국어 영역의 지문은 전 교과에 걸쳐 나옵니다. 모든 과목, 모든 공부는 통합적으로 연결돼 있으니까요. 영수국 외의 과목을 열심히 공부한 게 궁극적으로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박양은 키가 작다. 하지만 당당히 고교 시절 총학생회장을 했다. 박양은 1학년 말 학생회장 선거 공고가 났을 때 게시판을 보고 무척이나 가슴이 떨렸다고 털어놓았다. 학업에 방해가 될 수도 있고, 무엇보다 경제적 여건 때문에 그의 부모는 반대했지만 오히려 이런 상황이 그를 독려했다. 학업과 학생회 활동을 모두 잘 해낼 수 있으니, 한번 해보자는 오기가 생겼다.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각 공약이 끝날 때마다 저를 각인시키는 문구를 넣었습니다. 22대 학생회장 선거에 2번으로 출마했는데, ‘저는 2(이)번 제22대 학생회장 선거에 나온 기호 2번 박민지입니다’를 손가락 브이 액션과 함께 넣어서 연설을 했어요. 학생들도 재미있어 하며 따라했죠. 또 키가 작아서 연설할 때 사과 상자를 발판 삼아 올라갔는데 이게 학생들의 웃음을 유발했고,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결국 총학생회장이 됐고, 많은 활동을 했다. 당연히 이런 것이 수시전형에서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제가 2학년이 됐을 때 입학사정관제로 뽑는 인원이 크게 늘었어요. 그러다 보니 입학사정관제를 염두에 뒀죠. 제가 총학생회장을 하면서 했던 것과 기타 활동 자료를 보관해놓았습니다. 또 고2 겨울방학 때부터 가고 싶은 대학들의 자기소개서 양식을 다운받아 읽어보면서 어떤 내용으로 구성할지 고민했고,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수첩 등에 적어놓았습니다. 덕분에 원서를 낼 때 쉽게 관련 자료를 찾아 정리할 수 있었죠.”
“영수국 교과만 강조하는 건 옳지 않아”
박양은 “물론 영수국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대학에 들어오니 더욱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고 덧붙였다. 대학에서는 방대한 분량의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고 이를 취사선택해 논리적으로 정리해야 하는데, 이는 모두 영수국 학습에서 길러지는 능력이라는 것. 하지만 박양은 “영수국 교과만 강조하는 건 옳지 않다”고 역설했다.
“학문이나 사고의 콘텐츠는 도덕, 역사, 철학, 사회, 과학 등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또 음악, 미술, 체육 등을 통해 신체적·감성적인 부분까지 조화를 이뤄야 재미있게 학습할 수 있다고 봐요. 학습을 탑에 비유할 때, 영수국만 공부하면 탑의 밑 부분이 허술해져 위태한 모양새가 되는 거죠.”
그가 학생회 활동과 학업을 병행할 때, 심지어 교사들조차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박양은 “이때 배운 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 협업 능력이 프로젝트 위주의 대학 공부에서 큰 도움이 된다”며 “균형 잡힌 공부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도 넓어졌다”면서 해맑게 웃었다.
“당장 눈앞의 입시를 생각하지 않으며 전 과목을 두루 공부했더니, 오히려 입시에 도움이 됐어요.”
바로 박양이 강조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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