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선 올여름 100세 이상 고령자 수백 명의 소재를 알 수 없는 전대미문의 일이 벌어져 충격을 주고 있다. 고령자 소재불명 사태의 발단은 이렇다. 7월 26일 도쿄(東京) 아다치(足立) 구 직원이 관내에 거주하는, 전국에서 두 번째 고령자인 111세 노인의 생일축하 기념품을 전달하러 자택을 방문했다. 구청으로부터 “노인이 정말 살아 있는지 확인이 안 된다”는 상담을 받은 경찰도 동행했다. 그러나 노인의 맏딸(81)은 “아버지는 누구와도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기념품 수령을 거절했다.
이틀 뒤 노인의 손녀(53)가 관할경찰서를 찾아 “할아버지가 ‘미라가 되고 싶다’ ‘이 상태로 성불(成佛)이 되고 싶다’고 해서 30여 년 전부터 자신의 방에 누운 채로 있다”고 신고했다. 7월 29일 경찰이 출동해 보니 실제로 침대에 머리 부분은 백골, 몸은 미라 상태의 노인 시체가 있었다. 방에는 1978년 11월 5일자 신문이 그대로 놓여 있어, 사망일자는 그해 11월 말로 추정됐다.
맏딸의 남편(83)은 “(노인이 사망한 뒤) 열흘 정도 지났을 무렵 방에서 악취가 진동했다”고 경찰에 말했다. 당시 시체 썩는 냄새가 심하게 났으나 이웃 주민들은 경찰에 신고하거나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딸은 아버지가 죽은 뒤에도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채, 그동안 각종 연금 약 950만 엔과 구청에서 나오는 장수축하금 등을 받아 챙겼다. 연금은 본인이 행방불명됐더라도 사망신고서가 제출되지 않는 한 원칙적으로 본인 통장으로 지급되고, 통장을 관리하는 가족은 그 연금을 빼내 쓸 수 있다.
육친의 생사에 관심 없는 자식들
그동안 동네 주민인 민생위원이 고령자의 안부를 확인하고자 자택을 방문했으나 가족들이 “본인이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해서 만날 수 없었고, 구청 직원이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 이유로 면담을 거절당했다.
이후 전국 자치단체가 관내 100세 이상 고령자의 소재를 확인한 결과, 도쿄 도 최고령자로 알려졌던 스기나미(杉) 구의 113세 여성을 비롯해 여기저기서 불명자가 속출했다. 불명자들은 주소지에 등재는 돼 있으나 실제로 거주하지 않았고, 수십 년간 연락이 두절돼 행방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고령자에 대한 자치단체 등 행정기관의 관리에 큰 구멍이 뚫려 있는 데 놀란 후생노동성은 우선 100명 미만인 110세 이상 연금수령자의 대면조사를 실시하라고 각 자치단체에 지시했다.
고령자 소재불명 사태가 일어난 지 2주 남짓 사이에 “100세 이상 불명자는 279명”(‘아사히신문’ 8월 13일자 조간 1면 톱기사)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소재불명자들은 전국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 중 특히 효고(兵庫) 현, 오사카(大阪) 부, 교토(京都) 부, 도쿄(東京) 도 등 대도시 부에 집중됐다. 반면 주로 농어촌 지역인 26개 현에는 한 명도 없었다. 대도시 부에 핵가족화가 급속히 진행돼 혼자 사는 노인이 많고, 주민 간의 교류도 거의 없는 것이 소재불명 고령자가 많은 원인으로 지적된다.
자식들이 부모나 조부모가 어디에 사는지 관심 없고, 또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이번 사태로 300건 가까이 드러난 것이다. 자식들이 소재불명인 것을 알면서도 경찰 등에 신고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0년 2월 현재 일본의 100세 이상 고령자는 4만여 명이다. 소재불명자는 300명 미만으로 전체 고령자 4만여 명의 1% 미만이어서 극히 부분적인 현상이라 할 수도 있지만, 가족관계가 파탄·붕괴돼가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났을까? 노인문제와 관련한 일본의 법률, 행정상 결함 등 구조적인 문제에다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려는 일본인의 독특한 사고방식, 핵가족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일본은 현재 세계에서 국민 평균수명이 가장 긴 최장수국가다. 후생성이 7월 말 발표한 2009년 일본인의 평균수명은 여성이 86.44세로 25년 연속 1위다. 2위 홍콩(86.1세), 3위 프랑스(84.5세)의 순서. 남성은 1위 카타르(81세), 2위 홍콩(79.8세), 동률 3위 아이슬란드와 스위스(79.7세)에 이어 일본은 79.59세로 5위다. 5위이긴 하지만 1위와는 겨우 1.41세 차이다.
1970년대 이후 영·유아 및 노년층의 사망률 저하 등으로 선진국의 평균수명이 비약적으로 늘어나는 가운데 일본인들은 소식(小食)과 해산물 중심의 균형 잡힌 식생활, 선진 의료제도, 1945년 8월 패전 이후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점 등이 최장수국가가 된 원인으로 분석된다.
100세 이상 4만여 명, 독거노인 20%
일본에선 1960년 150명에 그쳤던 100세 이상 노인이 1981년 사상 처음으로 1000명을 기록했다. 1992년 100세를 맞은 쌍둥이 자매가 건강하게 생활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면서 TV 광고에도 나오는 등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킨(金) 상’, ‘긴(銀) 상’ 할머니란 애칭으로 불렸던 이 할머니들은 한국 TV에도 소개됐다. 당시 100세 이상 노인은 수천 명으로 드문 편이었다. 그러나 이후 일본 사회에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100세는 더 이상 진기한 사례가 아니게 됐다. 1998년에는 무려 1만 명을 넘어섰다.
2010년 2월 현재 일본 인구(약 1억2748만 명) 중 65세 이상은 약 20%로 세계 최고인데, 이 중 100세 이상은 무려 4만여 명으로 증가했다. 남성이 500여 명, 여성은 3만5000여 명이나 된다.
일본에선 1970년대까지만 해도 조부모, 부모, 손자 3대가 같이 사는 대가족이 흔했다. 그러나 산업화·도시화되면서 80년대 이후엔 미혼, 기혼을 불문하고 성인이 된 자식들이 부모와 떨어져 사는 핵가족화가 급속히 진행됐다. 현재 노인인구의 약 20%는 독거세대다. 이에 따라 가족, 친척 간의 관계가 점차 희박해지고 있다.
이와 함께 이웃과의 소통이 특히 대도시에선 전혀 이뤄지지 않는 현상이 일반화되고, 또 당연시되고 있다. 여기에는 남에게 ‘메이와쿠(迷惑)’, 즉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일본인의 독특한 의식과 관습도 작용한다.
일본인에겐 ‘메이와쿠’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대인관계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어릴 때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철저히 교육받아 생활습관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자택에서 미라로 발견된 111세 노인도 이웃들은 노인의 죽음을 눈치챘지만 구청 등에 신고하는 것은 자식들에게 ‘메이와쿠’를 끼치는 일이라 생각해 수십 년간 입을 다물었던 것이다.
고령자 소재불명 사태가 연일 보도되는 동안 오사카에선 클럽 호스티스로 일하는 23세 여성이 세 살, 한 살의 두 자녀에게 2개월여 밥도 물도 주지 않고 집에 방치해 굶어죽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엄마’라고 울부짖는 아이들의 소리를 여러 이웃 주민이 들었다. 그중 아동보호소에 신고한 주민은 있었지만 아무도 경찰엔 신고하지 않아 아이들은 결국 숨졌다. 사건이 알려진 뒤 주민들은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신고했다가 별일이 아니면 ‘메이와쿠’가 되고, 원한을 살지도 몰라 신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본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출산율 저하에 따라 어린이 수가 감소하는 ‘소자화(少子化)’ 현상도 진행되고 있다. 1950년엔 65세 이상 고령자 1명당 20세 이상의 일하는 세대가 약 10명이었으나 2010년에 약 3명, 2050년엔 약 1.2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추계(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되고 있다. 이 같은 ‘소자고령화’ 사회에선 젊은 층의 부담이 늘어나 고령자에 대한 무관심과 방기(放棄)가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자 소재불명 사태는 일본만의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장수화, 출산율 저하, 독거노인 증가 등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은 동방예의지국에, 각종 신고를 잘하는 나라이긴 하나 이와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행정기관은 물론 민간에서도 노인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지는 것이 좋겠다.
이틀 뒤 노인의 손녀(53)가 관할경찰서를 찾아 “할아버지가 ‘미라가 되고 싶다’ ‘이 상태로 성불(成佛)이 되고 싶다’고 해서 30여 년 전부터 자신의 방에 누운 채로 있다”고 신고했다. 7월 29일 경찰이 출동해 보니 실제로 침대에 머리 부분은 백골, 몸은 미라 상태의 노인 시체가 있었다. 방에는 1978년 11월 5일자 신문이 그대로 놓여 있어, 사망일자는 그해 11월 말로 추정됐다.
맏딸의 남편(83)은 “(노인이 사망한 뒤) 열흘 정도 지났을 무렵 방에서 악취가 진동했다”고 경찰에 말했다. 당시 시체 썩는 냄새가 심하게 났으나 이웃 주민들은 경찰에 신고하거나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딸은 아버지가 죽은 뒤에도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채, 그동안 각종 연금 약 950만 엔과 구청에서 나오는 장수축하금 등을 받아 챙겼다. 연금은 본인이 행방불명됐더라도 사망신고서가 제출되지 않는 한 원칙적으로 본인 통장으로 지급되고, 통장을 관리하는 가족은 그 연금을 빼내 쓸 수 있다.
육친의 생사에 관심 없는 자식들
그동안 동네 주민인 민생위원이 고령자의 안부를 확인하고자 자택을 방문했으나 가족들이 “본인이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해서 만날 수 없었고, 구청 직원이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 이유로 면담을 거절당했다.
이후 전국 자치단체가 관내 100세 이상 고령자의 소재를 확인한 결과, 도쿄 도 최고령자로 알려졌던 스기나미(杉) 구의 113세 여성을 비롯해 여기저기서 불명자가 속출했다. 불명자들은 주소지에 등재는 돼 있으나 실제로 거주하지 않았고, 수십 년간 연락이 두절돼 행방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고령자에 대한 자치단체 등 행정기관의 관리에 큰 구멍이 뚫려 있는 데 놀란 후생노동성은 우선 100명 미만인 110세 이상 연금수령자의 대면조사를 실시하라고 각 자치단체에 지시했다.
고령자 소재불명 사태가 일어난 지 2주 남짓 사이에 “100세 이상 불명자는 279명”(‘아사히신문’ 8월 13일자 조간 1면 톱기사)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소재불명자들은 전국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 중 특히 효고(兵庫) 현, 오사카(大阪) 부, 교토(京都) 부, 도쿄(東京) 도 등 대도시 부에 집중됐다. 반면 주로 농어촌 지역인 26개 현에는 한 명도 없었다. 대도시 부에 핵가족화가 급속히 진행돼 혼자 사는 노인이 많고, 주민 간의 교류도 거의 없는 것이 소재불명 고령자가 많은 원인으로 지적된다.
자식들이 부모나 조부모가 어디에 사는지 관심 없고, 또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이번 사태로 300건 가까이 드러난 것이다. 자식들이 소재불명인 것을 알면서도 경찰 등에 신고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0년 2월 현재 일본의 100세 이상 고령자는 4만여 명이다. 소재불명자는 300명 미만으로 전체 고령자 4만여 명의 1% 미만이어서 극히 부분적인 현상이라 할 수도 있지만, 가족관계가 파탄·붕괴돼가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났을까? 노인문제와 관련한 일본의 법률, 행정상 결함 등 구조적인 문제에다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려는 일본인의 독특한 사고방식, 핵가족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일본 종합복지시설 고베 `행복촌.
1970년대 이후 영·유아 및 노년층의 사망률 저하 등으로 선진국의 평균수명이 비약적으로 늘어나는 가운데 일본인들은 소식(小食)과 해산물 중심의 균형 잡힌 식생활, 선진 의료제도, 1945년 8월 패전 이후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점 등이 최장수국가가 된 원인으로 분석된다.
100세 이상 4만여 명, 독거노인 20%
일본에선 1960년 150명에 그쳤던 100세 이상 노인이 1981년 사상 처음으로 1000명을 기록했다. 1992년 100세를 맞은 쌍둥이 자매가 건강하게 생활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면서 TV 광고에도 나오는 등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킨(金) 상’, ‘긴(銀) 상’ 할머니란 애칭으로 불렸던 이 할머니들은 한국 TV에도 소개됐다. 당시 100세 이상 노인은 수천 명으로 드문 편이었다. 그러나 이후 일본 사회에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100세는 더 이상 진기한 사례가 아니게 됐다. 1998년에는 무려 1만 명을 넘어섰다.
2010년 2월 현재 일본 인구(약 1억2748만 명) 중 65세 이상은 약 20%로 세계 최고인데, 이 중 100세 이상은 무려 4만여 명으로 증가했다. 남성이 500여 명, 여성은 3만5000여 명이나 된다.
일본에선 1970년대까지만 해도 조부모, 부모, 손자 3대가 같이 사는 대가족이 흔했다. 그러나 산업화·도시화되면서 80년대 이후엔 미혼, 기혼을 불문하고 성인이 된 자식들이 부모와 떨어져 사는 핵가족화가 급속히 진행됐다. 현재 노인인구의 약 20%는 독거세대다. 이에 따라 가족, 친척 간의 관계가 점차 희박해지고 있다.
이와 함께 이웃과의 소통이 특히 대도시에선 전혀 이뤄지지 않는 현상이 일반화되고, 또 당연시되고 있다. 여기에는 남에게 ‘메이와쿠(迷惑)’, 즉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일본인의 독특한 의식과 관습도 작용한다.
일본인에겐 ‘메이와쿠’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대인관계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어릴 때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철저히 교육받아 생활습관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자택에서 미라로 발견된 111세 노인도 이웃들은 노인의 죽음을 눈치챘지만 구청 등에 신고하는 것은 자식들에게 ‘메이와쿠’를 끼치는 일이라 생각해 수십 년간 입을 다물었던 것이다.
고령자 소재불명 사태가 연일 보도되는 동안 오사카에선 클럽 호스티스로 일하는 23세 여성이 세 살, 한 살의 두 자녀에게 2개월여 밥도 물도 주지 않고 집에 방치해 굶어죽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엄마’라고 울부짖는 아이들의 소리를 여러 이웃 주민이 들었다. 그중 아동보호소에 신고한 주민은 있었지만 아무도 경찰엔 신고하지 않아 아이들은 결국 숨졌다. 사건이 알려진 뒤 주민들은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신고했다가 별일이 아니면 ‘메이와쿠’가 되고, 원한을 살지도 몰라 신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본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출산율 저하에 따라 어린이 수가 감소하는 ‘소자화(少子化)’ 현상도 진행되고 있다. 1950년엔 65세 이상 고령자 1명당 20세 이상의 일하는 세대가 약 10명이었으나 2010년에 약 3명, 2050년엔 약 1.2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추계(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되고 있다. 이 같은 ‘소자고령화’ 사회에선 젊은 층의 부담이 늘어나 고령자에 대한 무관심과 방기(放棄)가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자 소재불명 사태는 일본만의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장수화, 출산율 저하, 독거노인 증가 등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은 동방예의지국에, 각종 신고를 잘하는 나라이긴 하나 이와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행정기관은 물론 민간에서도 노인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지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