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부진하면서 지난 2분기 1196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사진은 LG전자의 스마트폰 옵티머스Q.
이날 발표된 LG전자의 경영실적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2010년 2분기 LG전자의 영업이익은 전분기에 비해 4분의 1로 쪼그라든 1262억 원. 휴대전화와 TV 부문의 판매 부진이 큰 요인이었다. 휴대전화를 담당하는 LG전자 MC사업본부는 전분기보다 13%, 지난해 같은 동기보다 2% 증가한 역대 2분기 최대치인 3060만 대를 팔고도 1196억 원의 적자를 냈다. 2006년 1분기 이후 4년 만의 적자다.
이는 휴대전화 사업의 영업이익률이 -3.7%로, 지난해 2분기 12.1%보다 15%포인트 정도 급락한 데 기인한다. 아이폰을 앞세운 애플이 20%를 넘는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며 상반기 스마트폰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삼성전자도 7%대의 영업이익률을 거둔 것에 비교하면 초라한 결과다. 선진시장을 중심으로 평균판매단가(ASP)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휴대전화를 팔면 팔수록 손해가 컸던 것이다.
LG전자의 2분기 실적을 두고 업계 안팎에선 우려했던 결과가 현실로 드러났다는 반응이다. HMC투자증권 노근창 애널리스트는 “스마트폰 시장에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다. IT업계는 몇 달 만에 시장 상황이 완전히 바뀌는 냄비 근성이 강한데 LG전자가 스마트폰 시장에 대한 선행투자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휴대전화 팔면 팔수록 손해
실제 지난해 11월 아이폰 국내 상륙이 가시화됐음에도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표적인 휴대전화 제조회사들은 스마트폰이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으로 여겼다. 스마트폰 대응에 실기하면서 국내 휴대전화 제조사들은 혹독한 시련기를 겪어야 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옴니아 시리즈를 내세워 애플의 공세에 맞서는 한편, 갤럭시S를 내놓아 상황을 반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국내 3위 휴대전화 제조사인 팬텍도 발 빠르게 안드로이드 OS체제인 ‘시리우스’를 내놓아 국내 안드로이드폰 시장 점유율 2위를 기록 중이다.
반면 세계 휴대전화 판매시장의 점유율 3위를 차지한 LG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의 중심에서 한참을 비켜 있었다. LG전자는 스마트폰으로 시장의 흐름이 바뀌자 뒤늦게 안드로이드 1.6 OS를 적용한 안드로1과 옵티머스Q를 선보였지만, 경쟁사 대비 한 단계 낮은 운영체제와 스펙으로 시장 진입에 실패했다. 그 사이에 국내 스마트폰 시장이 삼성전자와 애플, 구체적으로 갤럭시S와 아이폰의 양강구도로 압축됐다.
해외발 악재도 터졌다. 그동안 LG전자는 미국 1위 통신사인 버라이즌과 손잡고 북미시장 진출을 꾀해왔다. 한화증권 김운호 애널리스트는 “경쟁사인 AT·T가 애플과 손잡고 아이폰을 내놓자 스마트폰에 무심하던 버라이즌이 갑자기 기존의 방식을 바꿔 스마트폰 위주로 라인업을 짜기 시작했다. 통신사업자는 노선을 바꾸기 쉬워도 휴대전화 제조사들은 관련 제품을 준비하는 데 1년 가까이 걸린다. LG전자로서는 타격이 컸다”고 설명했다.
LG전자 남용 부회장이 7월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그룹장 등 300여 명과 간담회를 열고 회사 경영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남 부회장은 2007년 부임한 이후 지난 2년간 매년 사상 최대치의 실적을 기록하며 2009년 연임에 성공했다. ‘남용 1기’ LG전자의 경영전략은 ‘인사이트 마케팅’으로 대변된다. 소비자는 논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직감이나 감정에 따라 구매하는 만큼, 경쟁업체보다 앞서나가려면 소비자의 행동과 심리를 파악해 대담한 마케팅을 펼쳐야 한다는 것. 이를 바탕으로 LG전자는 “첨단기술을 개발해 새로운 제품을 누가 먼저 내놓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소비자 기호에 맞는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태도를 견지해왔다.
도마에 오른 남용 부회장 리더십
실제 LG전자 휴대전화 사업이 절정을 이뤘던 2006년과 2007년, LG전자는 기술개발보다는 휴대전화 마케팅에 방점을 뒀다. 검은색 막대 모양의 독특한 디자인과 터치패드의 ‘초콜릿폰’이 밀리언셀러를 기록하자 메탈 소재의 지성적 디자인을 강조한 ‘샤인폰’과 중장년층을 위한 맞춤형 단말기 ‘와인폰’을 잇따라 시장에 내놓았다. 또한 세계적인 명품 패션 브랜드인 ‘프라다’와 독점 계약을 맺어 명품마케팅을 펼쳤다.
반면 연구개발(R·D) 투자비용은 동결됐다. LG전자는 2009년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달성했음에도 R·D 투자비용이 2008년과 같은 1조7000억 원에 머물렀다. 그러다 보니 ‘남용 1기’의 성공도 전임자인 공대 출신 김쌍수 전 부회장(현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막대한 투자를 해 토대를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평가절하되기까지 한다.
그룹 안팎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LG전자는 3분기 옵티머스원, 옵티머스Z, 태블릿PC 등 전략제품을 일시에 쏟아내며 반전을 꾀하고 있다. 특히 오는 10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최신 모바일 운영체제인 ‘윈도7’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출시하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할 계획이다. 기술개발이 미흡했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지난 분기에만 800명이 넘는 R·D 인력을 충원하는 등 기술개발에 전사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LG전자는 어느 한순간 툭 튀어나온 회사가 아니라 세계 3위 휴대전화 제조회사다. 저력이 있는 만큼 올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LG전자는 침체한 내부 분위기를 추스르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 7월 6일 남 부회장은 그룹장 300명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갖고 “지난 10년간 휴대전화 사업에서 보여준 역량과 저력을 발휘해준다면 머지않아 분위기는 반전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위기는 곧 기회’라는 언급을 수시로 했다. 이어 7월 16일에는 전 임직원에게 e메일로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이제부터는 반격을 시작하려 한다”는 CEO 메시지를 전했다.
일단 성공 가능성은 반반이다. 한 IT 전문가는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제품이 나와야 하는데 LG전자는 계속 실기하는 것 같다. 스펙이 낮은 제품을 내놓는 것을 보면 스마트폰에서 그다지 큰돈을 벌려는 생각이 없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애플의 iOS와 안드로이드 OS로 양분된 OS 시장에서 윈도 OS가 얼마나 힘을 발휘할지도 미지수다. 반면 앱스토리 박민규 대표는 “LG전자가 기술적으로나 하드웨어적으로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고 본다. 내년 초 정도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위기의 LG전자가 반전에 성공해 휴대전화 명가의 자존심을 회복할지…. 더 이상 머뭇거리기엔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