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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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표 뽑고 동전 바꾸기가 본업?

은행 경비원들 경비 업무는 ‘뒷전’ … 청원경찰도 사라져 사고 대처 능력 의심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입력2010-08-23 14: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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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표 뽑고 동전 바꾸기가 본업?

    ‘무장경찰관 근무중, 팻말이 붙었지만 은행 안에는 로비 매니저, 동전교환 도우미밖에 없다.

    “가스분사기도 쏠 줄 모른다고?”

    A은행 직원 김모(24) 씨는 깜짝 놀랐다. 학원비를 마련하려고 경비 일을 시작했다는 20대 초반 신임 경비원이 “가스분사기가 부담스럽다. 쏠 자신이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만약 은행에 강도가 들어온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김씨 상사의 대응은 더 답답했다. “가스분사기를 쏠 줄 모르면 그건 다른 남자 직원에게 주고 고객 응대나 잘하라”며 웃어넘긴 것.

    지난해 1월, 술에 취한 40대 남성이 서울의 한 은행에 들어와 “내 돈 달라”고 욕하며 난동을 부린 일이 있었다. 이때 20대 경비원이 이 남성을 제지하려 했으나 도리어 얼굴을 맞아 제압당했다. 그는 청원경찰이 아닌 일반 경비원으로 도둑이나 강도를 제압할 수 있는 호신술이나 경호술조차 배운 적이 없다. 이런 경비원이 은행을 찾은 고객의 안전과 재산을 과연 잘 지켜줄 수 있을까?

    은행에서 경비 업무를 보는 직원을 대부분 청원경찰이라 부르지만, 실제 시중은행에는 청원경찰이 없다. B은행의 경비 인력 1300여 명 중 청원경찰은 고작 25명 남짓. 본점을 제외한 대부분 지점은 일반 경비원이다. 청원경찰과 일반 경비원은 복장이 비슷해 유심히 보지 않으면 구분이 가지 않지만 이들은 엄연히 다르다.

    4일간 28시간 교육하고 배치



    청원경찰은 청원경찰법에 따라 채용되는데 국가공무원법상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 임용 전 경찰교육기관에서 총기 조작, 사격, 체포술과 호신술 등을 2주간 76시간 교육받는다. 채용 뒤에도 관할경찰서의 관리·감독을 받으며 경찰에 준하는 자격조건을 갖춘다. 이에 비해 일반 경비원의 채용 절차는 덜 까다롭다. 일반 경비원은 경비업법에 따라 경비협회, 경찰교육기관, 경비 업무 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 등에서 청원경찰보다 적은 4일간 28시간 교육만 받으면 된다. 1990년대 이후 시중은행들은 청원경찰을 고용하는 대신 경비업체에서 경비원을 공급받아 인건비를 절감해왔다. 청원경찰은 은행 직원에 준하는 급여를 받는다.

    하지만 일반 경비원이 자리를 채우면 현장의 위기 대처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B은행 한 청원경찰은 “일반 경비원 중에는 위기 대처능력이 의심되는 인원이 많다. 힘들면 금방 그만둬 책임감도 부족하다”고 단언했다. 일반인이 4일간 28시간 교육으로 은행을 지키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C은행 김모 경비원은 “신임 교육은 지극히 형식적이다. 까다롭게 단속하지도 않고 흥미도 이끌어내지 못하니 교육 시간에 졸거나 딴짓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동의대 경찰행정학과 최종술 교수는 “짧은 시간 여러 과목을 교육하니 현장이 아닌 이론 중심 교육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위기 대처능력을 갖추는 데 꼭 필요한 체포·호신술 수업에 배당된 시간은 고작 3시간이다.

    경비원 교육을 받지 않은 채 현장에 배치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B은행 경비업무 관계자는 “교육을 받은 경비원이 일하다 그만두면 교육비용을 댄 경비업체가 손해를 입는다. 일단 투입한 후 이 일을 계속할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어야 비로소 교육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경비업법상 교육은 현장 배치 2개월 이내에만 받으면 된다.

    대기표 뽑고 동전 바꾸기가 본업?

    은행 경비원이 공과금 자동납부기기를 만지고 있다.

    일반 경비원의 위기 대처능력을 떨어뜨리는 데는 고객만족(CS) 업무 탓도 있다. 서울 소재 D은행 입구에는 ‘무장경찰 근무 중’ 팻말이 붙어 있다. 하지만 정작 ‘무장경찰’은 ‘동전교환 도우미’ 노릇에 열심이다. 이 은행 경비원 A씨는 “번화가에 있는 지점이라 다른 곳보다 위험요소가 많은데도 동전교환, 대기표 발급에 신경 쓰느라 경비 업무는 소홀히 한다. CS 업무 평가를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지점 직원들은 대놓고 압박을 한다”고 말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들은 “경비 업무 연장선에서 CS 업무를 할 뿐이다. 본업은 경비 업무임을 주지시킨다”고 해명했지만 서울 영등포구 소재 경비원 모집업체 관계자는 “은행이 채용 때 경비 관련 자격은 보지 않아도 용모가 단정한지, 친절한지는 주의 깊게 본다”고 반박했다.

    CS 업무를 지나치게 요구하다 보니 규정 위반은 일상이 됐다. 은행 규정상 일반 경비원은 현금에 손을 댈 수가 없다. 하지만 동전교환 업무가 일상이 된 지 오래고, 현금인출기 사용이 익숙지 않은 노인들은 경비원에게 현금 입출금을 부탁하기도 한다. B은행에서 상당 금액을 고객 대신 입금해주던 박모 경비원은 “규정과 현실이 다르다”고 잘라 말했다. 입금을 부탁했던 고객도 “규정을 아느냐”는 물음에 “그런 게 있었느냐. 청원경찰 옷을 입고 있으니 믿고 맡긴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는 안전하지 않은 일. 지난해 한 경비원이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를 적어주며 출금해달라는 80대 할머니의 돈을 뽑아 유흥비로 쓰다 경찰에 잡힌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위험에도 일선 은행들은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다. C은행 김모 경비원은 “직원이 현금인출기의 돈박스가 무겁다고 해 대신 꺼내주기도 하고 보안상 중요하거나 개인정보가 담긴 서류를 대신 철해줄 때도 있다. 나쁜 마음만 먹으면 고객의 돈에 손댈 수 있다”고 말했다.

    처우 개선 통해 전문인력 확보해야

    전문가들은 청원경찰을 다시 채용하거나 경비원들의 처우 개선을 통해 전문인력을 기르고 확보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 경비업체 채용담당은 “수당이 적고 대우가 나쁘니 이 일을 평생 직업으로 삼겠다는 이가 없다. 그 자리는 단기 아르바이트생들이 채운다. 사정이 이러니 청원경찰처럼 오랜 기간 일하며 경험과 전문성을 키울 환경이 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은행 경비원 일은 정해진 시간 외 근무가 거의 없는 데다 주 5일제가 잘 지켜지기 때문에 자격증을 준비하는 수험생 등에게 아르바이트 자리로 인기다.

    청원경찰을 뽑을 수 없다면 경비능력이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한국경호경비학회장인 경기대 경호안전학과 강민완 교수는 “남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줄 능력이 있는 경비원을 뽑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경비원 교육을 전담할 통합 교육기관도 필요하다. 최 교수는 “경비업체가 도맡아 교육하기에는 부담도 크고 질도 만족스럽지 않다. 은행을 지킬 경비원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엄격히 자격을 가릴 책임 있는 교육기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중은행들의 안전의식이 쉽게 변하기는 어렵다. 한 경비원의 말이다.

    “은행 직원의 개인적인 심부름을 할 때가 많다. 여름철이 되니 덥다고 아이스크림 심부름까지 시키면서 경비원이 자리를 비우는 것에는 별로 신경 안 쓴다. ‘별일 없겠지’ 생각하는 은행이 바뀌어야 만일의 사고에 대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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