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행에서 손예진(사진)과 고수, 한석규는 각자의 색깔에 맞는 연기력을 펼쳐 독특한 앙상블을 만들어냈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볼 때 그랬고,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나 나홍진 감독의 데뷔작 ‘추격자’를 볼 때 그랬다. 이런 영화들은 감각이 느끼고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한계 지점까지 관객을 몰아붙인다.
숨 돌릴 틈 없이 육박해오는 긴장과 궁금증 앞에서 관객들은 답답함으로 표현되는 처절함을 경험한다. 박신우 감독의 데뷔작 ‘백야행’도 그런 영화다. ‘백야행’은 일본 추리소설의 대가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히가시노의 작품들이 대개 그렇듯, 이 작품도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히고 시작한다. 한 남자가 거듭 살인을 저지른다. 그런데 그는 한 여자의 교사를 받고 있다. 그러니까 이 범죄 스릴러에서 중요한 문제는 ‘누가’보다 ‘왜’다. 왜 그는 명령을 따르고, 왜 그는 그녀 주변을 맴돌고, 왜 그는 괴로워하는가. 살인은 매우 강렬한 소재다. 하지만 박 감독이 살인의 강렬도를 높이는 방식은 살인 자체를 전시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감독은 살인해야 하는 자의 복잡한 심리를 강렬한 이미지로 제시한다. 이쯤 되면 던져진 궁금증은 증폭된다. 도대체 ‘여자의 요구에 따라 묵묵히 살인을 행하는 남자의 심리란 무엇일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순결한 얼굴을 한 채 살인을 교사하는 여자의 비밀은 무엇일까’로 말이다. 남자 요한(고수 분)과 여자 미호(손예진 분)의 비밀은 14년 전 살인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요한의 아버지가 깊은 자상을 입은 채 변사체로 발견되고, 범인은 그의 내연녀이던 미호의 어머니로 지목된다. 어머니조차 자살한 후 상처는 고스란히 미호의 몫으로 남는다. 그리고 요한은 미호 곁에서 그녀를 지켜줄 남자로 남는다. 미호에게 어린 시절은 치욕이자 상처이며 원한의 대상이다. ‘백야행’의 강렬함은 살인의 잔혹성이 아니라 바로 이 부분, 치욕과 상처를 되짚어내는 심리묘사에서 비롯된다.
달과 지구처럼 적정한 거리를 둔 채 서로의 주변을 공전하는 두 인물의 심리는 묘한 파동을 일으킨다. 미호와 요한은 서로 사랑하지만 만나지 않는다. 언제나 손 닿지 않을 거리감 너머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한다. 비밀은 영화의 마지막에야 밝혀진다. 요한에게 미호는 일종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14년 전 두 사람이 공유한 비밀은 상처 입은 그들을 소년과 소녀 상태로 박제한다.
“돈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데”라고 말하는 ‘엄마’를 증오하던 미호는 그 엄마가 했던 말을 자신이 되뇌고 상처와 생존, 보복과 성공의 개념을 오해한다. 상처는 미호와 요한의 삶을 ‘밝은 어둠’ 속에 밀어넣고, 기형적 존재로 길러낸다. 이는 한동수 형사(한석규 분)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백야행’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한 기폭제가 돼준다. 훌륭한 연기는 훌륭한 작품의 필연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훌륭한 연기라 할지라도 호흡이 불안정한 연출 속에서는 빛을 발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 영화에서 고수, 손예진, 한석규는 자기가 맡은 최고 적정치의 연기를 보여준다. 세 가지 색이 나란히 놓인 배색표처럼 세 사람의 색깔은 앙상블을 이뤄 영화 ‘백야행’만의 독특한 색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무엇보다 고수의 연기는 ‘백야행’의 에너지를 소름 돋는 감각적 체험으로 만드는 데 중요한 지점으로 작용했다.
박 감독은 복잡다단한 이야기를 인상적 장면으로 압축하고, 그 심리를 웰메이드한 솜씨로 풀어나간다. 이 장면들을 통해 인물들의 불가해한 다면성은 강렬한 캐릭터로 자리잡는다. 어쩔 수 없이 악을 행해야 하는 주인공들, 우연한 선택 때문에 영원한 고통의 궤도에 진입한 존재들, 이 존재들의 밀도로 영화는 들끓는다. 열기로 가득한 데뷔작 ‘백야행’이 불러올 뜨거운 반향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