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D’ 성적표를 받아야겠지만, 수익 면에서 보면 상황은 다르다. 이 작품은 일본에 상당히 높은 가격으로 팔렸다는 게 방송 관계자들 이야기.
한 드라마 제작사 대표는 “이 작품은 일본 내 동방신기의 높은 인기 덕에 웬만한 한류스타 출연작 이상의 가격으로 팔렸다”며 “이런 상황에서 한류를 겨냥한 스타 캐스팅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동방신기는 아시아 권역에서 인지도가 높아 이 작품은 일본 외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판매될 것으로 기대된다.
# SBS ‘아내의 유혹’으로 대표되는 ‘막장 드라마’는 방송사나 드라마 제작사 처지에서 볼 때 ‘효자’ 상품이다. 스타급 연기자도, 값비싼 세트도 필요하지 않아 제작비가 저렴하지만, 시청률이 높아 광고 및 협찬 수익이 많기 때문. 그야말로 ROI(투자 대비 효과)가 높다. CJ엔터테인먼트 드라마사업팀 오광희 과장은 “‘아내의 유혹’은 드라마 제작자로 하여금 ‘결국 막장 드라마를 만들어야 하나’라는 유혹에 빠지게 한 작품”이라며 “올해 막장 드라마가 많았던 것은 경제위기로 제작비 마련에 허덕이던 제작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방송사는 광고 수익을 바탕으로 유지되는 영리기업이다. 그런데 드라마는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광고량이 많고, 판매가가 비쌀 뿐 아니라 해외 수출 등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고수익 콘텐츠다. 우리나라 방송사가 드라마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당연히 ‘돈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한예조)에 따르면, 현재 공중파 드라마에 출연한 연기자들이 받지 못한 출연료가 48억원이 넘는다( 참조).
한예조는 공개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미지급분이나 최근작 사례까지 감안하면 총 액수는 60억원대에 이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왜 ‘돈이 된다’는 드라마를 만들었는데도 고수익을 올리기는커녕 연기자의 출연료까지 못 줄 정도로 적자에 허덕이게 되는 걸까. KBS, MBC, SBS 등 지상파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는 크게 방송사에서 직접 제작하는 작품(자체제작)과 외주 드라마 제작사에서 만드는 작품(외주제작)으로 나뉜다.
2000년 지상파 전체 드라마 78편 중 23편에 그치던 외주제작은 2007년 총 72편 중 53편에 이르렀다. 외주제작 비중이 70%를 넘어선 것. 이젠 외주제작을 빼곤 드라마 산업을 이야기할 수 없게 됐다. 드라마를 통해 올리는 수익은 방송에 따른 광고, VOD, OST 음원, 해외 수출 판권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외주제작의 경우 방송사와 드라마 제작사가 각자 투자비용에 따라 권리와 수익을 나눠갖는다.
보통 방송사는 일정 제작비를 지불하고, 방송권과 VOD 권리 등을 가진다. 이에 따라 방송에 따른 광고와 VOD 수익은 방송사가 차지한다. 제작사는 방송사로부터 받은 제작비로 작가 대본료와 배우 출연료를 비롯해 제작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책임진다. PPL(제품 간접광고) 등 기업 협찬을 받을 수 있고, OST 음원에 대한 권리도 가진다. 이는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것일 뿐, 양측 간 계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황금알 낳는 거위냐, 시한폭탄이냐
저작권 및 해외 판매수익 배분은 방송사와 제작사 간 계약에 따라 달라진다. 상황에 따라 방송사가 제작비를 더 지불하고 저작권을 100% 소유하기도 하며, 방송권만 사기도 한다. 해외 판매수익은 대다수 방송사와 제작사가 일정 비율로 나누지만 한쪽이 100%를 갖는 경우도 있다( 참조).
드라마가 수익 면에서 성공했다는 것은, 방송사 처지에서는 시청률이 높아 광고와 VOD 수익이 많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제작사에겐 방송사로부터 받은 제작비 내로 지출하고, 기업 협찬과 OST 음원 수익을 통해 흑자를 낸 뒤 해외에 판권을 판매하는 것을 뜻한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 음반사가 드라마 제작사를 겸임하면서 OST의 비중이 매우 커졌다.
또 다른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블록버스터가 아닌 웬만한 미니시리즈 한 편을 찍어도 제작비가 회당 2억원은 훌쩍 넘어가지만, 방송사에서 지원하는 제작비는 회당 8000만원에서 1억원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고스란히 제작사의 몫으로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물론 방송사에서는 현금 외에도 연출·조연출 등 방송사 내부 인력, 편집실, 스튜디오 등 회당 4000만~5000만원 상당의 현물 자산을 제공하지만, 이를 합해도 1억5000만원 안팎.
즉 회당 2억원짜리 드라마일 경우 회당 5000만원 이상 적자가 쌓인다는 게 제작사들의 논리다. 드라마 제작사 ‘투비투두’의 조성우 대표는 “드라마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회상 장면이 많아지고, 야외가 아닌 세트 촬영이 늘어나는 것도 제작비를 아끼기 위한 방편”이라며 “제작비를 확보하려고 무리하게 기업 협찬을 받거나 뮤직비디오처럼 배경음악을 많이 깔아 음원 수익을 올리고, 해외 세일즈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드라마 제작사’란 이름을 건 제작사는 400여 개에 이르지만, 드라마를 한 편이라도 만들어 방영한 경험이 있는 제작사는 40여 개에 불과하다. 1년 동안 지상파를 통해 방영되는 드라마는 30편이 채 안 된다. 이마저도 대형 제작사 서너 곳이 80% 이상을 제작한다. 많은 신생, 군소 제작사들은 나머지 20%를 위해 경쟁하는 실정. 그렇기 때문에 소수의 대형 회사들을 제외한 대다수 제작사들은 방송사와의 계약 관계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다.
또 대형 제작사는 돈이 되는 일일극이나 주말극을 맡아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는 반면(제작비가 회당 책정되기 때문에 횟수가 많을수록 수익이 높다), 군소 제작사는 위험부담이 높은 미니시리즈를 맡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제작사는 일본 등 해외 판매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 ‘한류 콘텐츠’가 판매되는 해외시장 가운데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판매액 기준 70%에 이른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진성호 의원이 최근 한국콘텐츠진흥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비중은 2002년 10.8%에서 2008년 68.7%로 크게 높아졌다. 문제는 일본 시장의 경우 ‘한류스타’ 출연 여부에 따라 판매금액이 크게 달라진다는 것. A급 한류스타가 출연한 작품은 회당 10만~15만 달러에 팔리지만, 그렇지 않은 작품은 회당 2만~3만 달러 수준에 머문다. 제작사로선 아무리 ‘몸값’이 비싸도 한류스타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사정 때문에 배우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또 드라마 작가의 파워가 시청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자 작가의 원고료도 급상승했다. 한 드라마 제작사 대표는 “배용준, 이병헌 등 자신의 몸값보다 훨씬 큰 수익을 거둬들이는 배우들이 많이 받는 것은 문제가 안 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은 배우들까지 고액의 출연료를 요구하기 시작했다”며 “제작비의 50% 이상이 배우 출연료와 작가 원고료로 들어간다”고 말했다.
최근 한류가 주춤한 것도 드라마 제작사를 압박하는 큰 요인이다. 오광희 과장은 “한국 드라마를 많이 수입하던 일본 DVD 시장이 10분의 1로 규모로 줄었다. 과거에는 일본 시장에서 한국 드라마, 특히 한류스타가 나오는 작품은 입도선매하듯 비싸게 사갔지만, 지금은 내용이나 흥행 가능성을 따져보고 금액도 최대한 낮춰 구입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앞서 언급한 출연료 미지급 사태가 어느 정도 이해될 수 있다. 실제작비보다 적은 방송사 지급 제작비,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스타와 작가의 몸값, 경제위기로 인한 기업의 협찬 축소, 해외판매 저조 등이 한데 어우러져 제작사가 대규모의 적자를 껴안았고, 스타를 제외한 배우들의 인건비마저 체납하게 된 것.
이런 상황에 대해 제작사들은 방송사의 책임이 크다고 주장한다. 편성권을 ‘무기’로 몸값이 높은 특정 스타의 출연을 강요하지만 제작비는 실제작비의 50~60%만 지급하고, 광고 수익은 방송사가 모두 가져가면서 저작권까지 확보해 해외 판매수익까지 노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방송사의 생각은 완전히 다르다. SBS 드라마국 김영섭 CP는 “스타배우에 의존하는 제작 시스템을 구축해 제작비를 올린 데는 드라마 제작사의 책임이 크다”고 했다. 제작사가 우후죽순 늘어나 과당경쟁이 이뤄지면서 스타급 배우와 작가들의 몸값을 끌어올렸다는 것. 게다가 일부 제작사들은 전속 작가를 거느리고 연예인 매니지먼트까지 함께하기 때문에 몸값으로 지불되는 제작비의 일부가 결국 제작사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방송사 관계자는 “현재 대형 드라마 제작사는 막강 파워를 가졌다. 이들은 방송사가 하는 것처럼 기획만 하고, 실제 제작은 군소 제작사에게 하청을 주기도 한다. 또 광고나 VOD 수익의 일부를 ‘러닝 개런티’ 형식으로 요구한다. 오히려 방송사가 제작사에게 끌려다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고위험’ 상황에도 방송사나 제작사가 드라마에 열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드라마는 ‘한 방’이 터지면 엄청난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그야말로 ‘로또’ 같은 상품이기 때문이다. MBC 최고 히트작인 ‘선덕여왕’은 첫 회부터 광고가 ‘완판’되면서 50회를 방송한 11월10일 현재 광고수익만 26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당 5억원꼴이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 연장방송을 하는 것도 수익 때문이다. 한 드라마는 10%대 시청률의 준작이지만 배경음악이 큰 인기를 끌어 음원으로만 30억원의 수익을 올렸고, 일본 및 동남아 국가에도 괜찮은 가격에 팔렸다.
하지만 고수익을 올린 작품들은 ‘수익’을 내려고 만든 기획상품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신선한 소재, 탄탄한 구성, 수준급 연기 등 작품 자체가 좋았던 경우가 대다수다. 조성우 대표는 “한류스타에 안주하면 안 된다. 새로운 이야기 개발, 신인 연기자 발굴이 절실하다”고 했다. 김영섭 CP는 “각 방송사에서 경제효과가 없다는 이유로 단막극을 없앴는데, 이는 잘못된 처사”라며 “단막극을 통해 새로운 작가와 배우, 연출자를 개발할 수 있으니 이를 부활해야 한다”고 했다.
드라마 저작권은 방송사, 제작사 양측이 공동소유하면서 다방면으로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 노력 여부에 따라 수익 배분도 달라져야 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방송사는 유통망이 넓은 배급사 중심으로 수출을 다각화하고, 제작사는 작은 틈새시장이라도 작품을 팔기 위해 뛰어다녀야 한다는 것. 이관희 프로덕션의 이관희 대표는 “제작사들은 자기들이 만든 콘텐츠를 팔기 위해 해외 어디라도 들고 나가려 애쓰지만, 방송사는 상대적으로 하나의 작품에 관심을 집중하기 어렵다”며 “수익 배분 역시 해외 판매를 위해 노력한 정도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