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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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잠 고생, 시청률 高高로 보상받죠”

블록버스터급 사극 ‘선덕여왕’ 촬영현장을 가다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입력2009-11-18 1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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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쪽잠 고생, 시청률 高高로 보상받죠”

    ‘선덕여왕’ 촬영현장에 있는 스태프들은 추위 속 강행군 탓인지 하나같이 파카를 입고 있었다.

    일주일 꼬박 매달렸다. 화제의 드라마 ‘선덕여왕’(MBC)의 촬영현장 취재 허락을 받기 위해서였다. 이 드라마의 조감독은 11월11일에나 현장 공개가 가능하다고 했다. 미실의 최후 모습을 비공개로 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결국 기사 마감을 코앞에 둔 11월11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경기도 용인 내 ‘선덕여왕’ 세트장을 찾았다. 현장은 마치 유물 발굴을 앞둔 유적지처럼 광활한 대지 위에 용도를 알 수 없는 대형 컨테이너가 5, 6개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오전 9시가 다 됐는데도 인기척이 전혀 없다.

    취재를 승낙한 조감독을 찾아 나섰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니 그제야 드라마 속 바로 그 마을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한 무리의 보조출연자들이 ‘백성1’ ‘백성2’ ‘백성3’…을 연기하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 있다.

    다음 장면을 하염없이 기다리느라 따분한지 나무로 만든 윷을 던지며 노는 이들도 눈에 띈다. 말판은 땅 위에 아무렇게나 그려져 있고 말은 돌, 나무젓가락, 잎사귀가 대신하는 소박한 윷놀이판. 몇 사람에게 말을 붙여봤지만 다들 시큰둥한 반응이다. 전날 자정에 여의도에 모여 새벽 1시 출발, 3시께 세트장에 도착해 5시부터 촬영을 시작한 터라 여간 피곤한 상태가 아니라고 했다.

    지친 이들의 신경을 건드릴세라 슬슬 자리를 떴다. 어제 조감독이 전화로 “내일 비담과 칠숙이 무슨 일을 벌인다”고 귀띔해준 게 퍼뜩 생각났다. 행여 비담이나 칠숙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앗, 저기 있다! 주연배우들의 옷차림을 한 사람들과 마주쳤다. 하지만 가까이 가보니 다른 얼굴이다. 그중 한 사람에게 친한 척 바짝 붙어 물어보니 말 타는 장면을 찍으러 산에 가는 길이란다.



    “내일 비담과 칠숙, 무슨 일 벌인다”

    “저는 무술팀 소속이에요. 해신, 대조영, 이산 같은 사극도 했는데 ‘선덕여왕’에서는 유신과 미실 대역을 하고 있어요. 칠숙이 덕만을 죽이려다 온몸에 불이 붙어 휘청거릴 때도 제가 연기했는데, 혹시 보셨어요? 저흰 무술을 하는 게 아니라 무용을 하는 거예요. 몸동작을 크게 해서 절도 있게 표현해야 하니까요. 힘든 점? 하루에도 몇 번씩 화살에 맞아 죽고, 사다리에서 떨어져 죽고, 돌에 맞아 죽으면 진이 다 빠져요.”(김필수·31)

    컨테이너 박스들이 있는 평지로 돌아왔다. 40~50명의 보조출연진이 길게 한 줄로 늘어서 새 옷을 받고 있다. 남자들은 병사로, 여자들은 시녀로 변신 중이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잔뜩 몸을 움츠린 이들은 표정도 얼음처럼 굳어 있다. 이 드라마에 오랫동안 출연하고 있다는 여성 보조출연자에게 어렵사리 말을 붙였다.

    “꼬박 닷새를 집에 못 가도 이틀만 쉬고 나오면 또 거뜬해져요. 이 드라마가 너무 좋아 직장도 그만두고 ‘올인’하고 있어요. 비 맞으며 엉엉 우는 백성을 연기한 적이 있는데 진짜 슬퍼서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나중에 TV로 보니 멋있게 나와 뿌듯했습니다. 보조출연자 중엔 ‘생계형’과 ‘취미형’이 있는데 저는 후자예요. 감동을 받은 일도 많아요. 미실 역을 맡은 고현정 언니에게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는데 선뜻 응해주셔서 정말 고마웠어요.”(최미희·28)

    용도를 모르던 컨테이너 중 하나는 출연자들의 옷을 보관하는 곳이었다. 컨테이너에 들어서자 3명의 여성이 벨트에 붙일 원통 장식을 매만지고 있었다. 취재를 하러 왔다고 하자 따뜻한 커피를 내줬다. 보조출연자들 식사하는 자리에 끼려다 “남는 밥 없다”는 핀잔까지 들은 터라 코끝이 시큰해졌다.

    “저기 놓인 갑옷 보이죠? 갑옷은 다 중국산 써요. 일하다 가끔 화가 날 때가 있어요.(웃음) 이미 피가 묻어 있는 옷을 입은 사람이 칼에 찔리는 장면을 볼 때죠. 시청자들은 모르고 넘어가겠지만 저희 눈에는 쏙 들어오거든요. 내줄 때는 분명 깨끗한 옷이었는데 여러 번 촬영하다 보니 칼에 찔리기도 전에 어디선가 피가 묻은 거예요.”(정문진·26)

    “쪽잠 고생, 시청률 高高로 보상받죠”

    보조출연진과 스태프들은 “밤낮 없이 촬영하느라 쪽잠을 자면서도 좋아하는 일을 해 행복하다”고 했다.

    드라마가 시작되면 컨테이너에서 쪽잠을 자기 일쑤. 왜 그런 고생을 사서 하냐고 물었다.

    “재미있으니까요. 현대극에선 배우들이 각자 의상을 준비해오기 때문에 저희가 할 일이 별로 없지만, 사극에선 출연자 모두의 옷을 저희가 입히니까 보람이 크죠. 배우, 제작팀과도 끈끈한 관계죠. 미실 언니(고현정)는 ‘닌텐도’ 게임기, 유신랑(엄태웅)과 덕만(이요원)은 따뜻한 파카, 비담(김남길)은 바람막이 재킷을 선물했어요. 귀여운 춘추(유승호)도 지금 제가 입은 이 옷을 선물로 줬고요.(웃음) 미실은 정말 놀라워요. 옷을 입을 때마다 새로운 자태가 나오고 카리스마도 느껴지죠.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도 옷이 구겨진다며 외투를 걸치지 않는 것을 보니 정말 미실답더군요.”(장윤혜·39)

    진행 상황을 물어보기 위해 조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후 2시가 지났지만 도통 받지를 않는다. 지나가던 이가 “오늘은 덕만이 왕 되는 장면을 찍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수시로 당일 촬영분이 바뀌기 때문에 ‘긴급상황’이 자주 발생하는 모양이었다. 아까 오전에 덕만을 대신해 말을 탄 여성 액션배우를 찾아냈다. 용인대 체육복을 입고 차에 시동을 건 채 잠을 청하고 있었다.

    “오전에는 말 타는 장면만 찍었으니 밤에 또 다른 촬영을 해야 해요. 언제 어떤 장면을 찍게 될지는 모르니 늘 차에 대기하고 있죠. 어떤 때는 2주 내내 차 안에서 쪽잠을 잡니다. 하지만 드라마가 나오면 뿌듯해져요. 소화가 사막에서 모래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장면을 찍기도 했는데 ‘이러다 죽겠다’ 싶을 만큼 위험한 장면이었죠. 하지만 언제 또 그런 경험을 해보겠나 싶어 열심히 찍었어요.”(김태야·27)

    덕만이 도망치거나 싸울 때마다 대역을 맡는다는 그는 “배우가 하지 못한 부분을 내가 하는 것이니 TV에 얼굴이 안 나와도 전혀 섭섭하지 않다”고 했다.

    “쪽잠 고생, 시청률 高高로 보상받죠”
    “미실 죽었어도 할 얘기 많아요”

    발길을 돌리다 메이크업실을 발견했다. 닌텐도 게임을 하거나 뭔가를 끼적거리던 이들에게 인터뷰를 청했더니 막내에게 등을 떠밀었다.

    “현대극과의 차이는 배우들의 눈썹을 좀더 짙게 그린다는 점이에요. 그리고 다른 분들은 대개 숍(미용실)에서 메이크업을 받고 오시는데, 미실 언니는 꼭 여기서 화장을 하세요. 그만큼 저희를 신뢰한다는 뜻이겠죠.”(김해인·22)

    산자락에 설치된 궁궐 세트에선 마이크를 사용하는지, 담벼락 뒤에서도 들릴 만큼 쩌렁쩌렁한 덕만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궁궐 세트에서 50m쯤 떨어진 성벽에서 처량한 표정의 몇몇 ‘병사’를 만났다. 보조출연자의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밥값 5000원 빼고 나면 일당이 4만원이에요. 철야 촬영해서 많이 받아도 6만원이고요. 제대로 잠도 못 자며 밤낮이고 차례를 기다려야 하니 쉽지 않은 일이죠. 지금은 원래 낮 촬영으로 계획된 장면을 밤 촬영으로 바꿨다고 해서 대기하는 중이에요. 대기하면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광경을 지켜보면 미실, 덕만 할 것 없이 다들 서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고 애쓰는 게 눈에 보여요. 세상 사는 게 다 그렇잖아요. 자기한테 관심이 집중되길 바라니까.”

    그가 맡은 역할은 ‘시체’ ‘장애인’ ‘백성’. 그중에서 의상도 가볍고 움직임도 적은 백성 역할이 가장 편하다고 했다. 성벽을 내려오니 어느새 등장한 조명 크레인 기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삶은 어떨까.

    “보름에 한 번 집에 들어가고, 낮 3시부터 아침 7시까진 현장에 있어요. 시간만 나면 인터넷에서 ‘선덕여왕’ 기사를 검색하죠. 제가 참여하는 작품이니 주인의식을 가져야죠. ‘다모’ 찍을 때는 6kg짜리 ‘다마’(백열등)를 썼지만 ‘태왕사신기’와 ‘선덕여왕’에서는 18kg짜리를 써요.”(김민환·58)

    컨테이너 근처에서 이번엔 무대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시청률이 높게 나와 힘든지 모르고 일한다”는 그는 쉼없이 대패질을 해댔다. 대본이 늦게 나와 다음 주에 방영될 장면을 바로 그 전주에 찍다 보니 시간이 촉박하단다.

    세트장 곳곳을 누비며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벌써 저녁 6시. 짧은 겨울 해는 이미 자취를 감추려 하고 있었다. 그제야 연락이 닿은 조감독은 “라면 한 그릇 하고 가라”며 호의를 베풀었다. 끓는 물 기다리는 김세홍(47) 촬영감독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아달라고 청했다.

    “그 장면 봤어요? 미실이 ‘남의 사람은 (실수)할 수 있지만 내 사람은 할 수 없다’고 하면서 두 병사의 목을 베는 장면인데, 정말 아찔했죠.”

    미실이 죽은 뒤에도 이 드라마의 인기는 계속될 수 있을까.

    “앞으로 할 얘기가 많아요. 칠숙의 난, 비담과 유신의 관계, 춘추와 비담, 덕만과의 관계까지…. 결말이요? 우리도 대본 받아봐야 알죠, 하하.”

    인터뷰/ ‘선덕여왕’ 박홍균 PD

    “개연성 있는 성장 스토리가 ‘대박’의 힘”


    “쪽잠 고생, 시청률 高高로 보상받죠”
    올해 최고의 화제를 낳은 드라마 ‘선덕여왕’을 연출한 MBC 박홍균(39·사진) PD는 사극 PD라는 선입견과 달리 무척 젊었다. 푸석푸석하게 달뜬 얼굴을 하고도, 쉬는 시간 짬짬이 동료들과 야구를 즐기는 모습에서 활력이 느껴졌다. 그와 나눈 일문일답.

    ‘선덕여왕’의 인기 비결은 뭘까.

    “작가의 힘이다. ‘여성 사극’이라 불릴 정도로 내용이 무겁지 않은 MBC 사극의 전통을 살리되 여성이 하는 정치 얘기를 그리고 싶었고, 이 의도가 주효했다. 또 ‘허준’ ‘대장금’ ‘이산’ 등으로 계승된 주인공의 성장 스토리가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것 같다. 미술에 공을 들여 화려한 색감을 많이 쓴 것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소품으로 촛불을 많이 사용한 것도 미술적 장치로 쓰기 위해서였다.”

    이 드라마만의 특징을 꼽는다면.

    “주인공이 사람의 마음을 얻어가는 과정을 컴퓨터 게임처럼 즐길 수 있다는 점. 시청자들은 미실이 인재를 취하고 또 제거하며 신라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꼈을 것이다. 선덕은 앞으로 더 나아가 김춘추, 비담, 알천을 활용하면서 진일보한 인재 전략을 보여줄 것이다.”

    미실의 죽음 후에는 어떤 스토리로 꾸며나갈 생각인가.

    “애초부터 드라마 후반부에는 덕만이 리더십을 발휘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과정을 그리려 했다. 신라라는 약소국이 삼한통일의 기틀을 어떻게 실현해갔는지를 얘기하면서 동북아에서 한국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볼 기회를 만들고 싶다. 앞으로도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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